뉴욕 첫 무슬림 시장 탄생… 세대교체 상징된 맘다니

트럼프 2기 첫 ‘민심 평가전’ 美 지방선거서 민주당 선전 진보 인도계 무슬림 맘다니 임대료·생활비 공약 내걸어

2025-11-05     이솜 기자
조란 맘다니가 4일(현지시간) 뉴욕에서 열린 시장 선거 파티에서 연설하기 위해 무대에 오르고 있다. (출처: 뉴시스)

[천지일보=이솜 기자] 미국 전역에서 지방정부 수장과 지방의회 의원 등 선출직 대표를 뽑는 일반선거 본투표가 치러진 가운데 주요 지역에서 민주당이 승기를 잡았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처음 열린 이번 선거는 임기 초반 국정 운영에 대한 유권자들의 평가전 성격을 띠었다.

진보 정치인이자 인도계 무슬림인 조란 맘다니 뉴욕주 의원이 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시장으로 당선됐다. 그는 뉴욕시 최초의 무슬림 시장이라는 역사를 세웠으며 34세의 나이로 100년 만에 가장 젊은 시장이 됐다.

그는 민주당 전 뉴욕주지사 앤드루 쿠오모(67세)를 꺾었다. 이번 선거는 민주당 내부의 이념·세대적 대결로 향후 전국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로이터통신, NPR 등에 따르면 이날 오후 10시 기준 맘다니는 1969년 이래 가장 높은 투표율 속에서 100만표 이상을 얻었다. 이는 쿠오모와 공화당 후보인 커티스 슬리워의 득표를 합친 것보다 많은 수다.

퀸즈 지역구를 대표하는 비교적 무명의 주 하원의원이었던 맘다니는 지난해 치열했던 시장 선거에 뛰어들었다. 이후 6월 민주당 예비선거에서 12%포인트 차로 승리하며 전국적으로 가장 인기 있고 동시에 논쟁적인 정치인 중 한 명으로 급부상했다.

맘다니의 주요 공약에는 시내버스 무료화, 임대료 동결, 보편적 보육 제공, 2030년까지 최저임금 인상, 그리고 대기업과 상위 1% 부유층에 대한 증세를 통해 생활비를 낮추겠다는 계획이 포함돼 있다.

그는 또한 자신이 당선될 경우 연방정부의 뉴욕시 지원금을 삭감하겠다고 위협하며 자신을 공산주의자라고 비난해온 트럼프 대통령에 맞서겠다고 밝혔다.

SSRS 출구조사에 따르면 뉴욕시 유권자의 절반 이상이 생활비를 가장 중요한 이슈로 꼽았으며 그중 63%가 맘다니를 지지했다. 반면 범죄나 이민 문제를 도시의 최대 우려로 언급한 유권자 다수는 쿠오모를 선택했다.

비평가들은 맘다니의 상대적으로 짧은 정치 경력과, 매우 진보적인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마주할 정치적 장벽을 지적한다. 또 그가 여러 차례 반유대주의를 부인했음에도 이스라엘 정부와 가자지구 내 행동을 지속적으로 비판해온 그의 입장은 이스라엘 밖에서 가장 큰 유대인 공동체가 있는 뉴욕시의 일부 유권자들을 멀어지게 했다.

그러나 맘다니의 ‘더 살기 좋은 도시’라는 비전은 감각적인 SNS 영상과 활기찬 대면 유세를 통해 젊은층과 첫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이는 뉴욕 밖에서도 공감을 얻었다.

그는 다수의 유명 진보 인사들로부터 지지를 받았고 자원봉사자 수만명을 조직했으며, 선거일 직전 여론조사에서 두 자릿수 격차로 앞섰다. 젊은 유권자들이 높은 조기투표율을 주도한 것으로 평가되며 이날 투표 종료 후 그의 전략은 명확히 성공으로 이어졌다.

선거일 이전부터 높은 열기와 참여율은 뚜렷했다. 뉴욕시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조기투표 기간 동안 73만 5317명이 투표했으며 이는 2021년의 다섯 배가 넘는 수치였다.

민주당 소속의 애비게일 스팬버거가 4일(현지시간) 버지니아주 리치먼드에서 열린 선거 밤 파티에서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의 승자로 선언된 후 무대에서 연설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버지니아서 첫 여성 주지자 선출

뉴욕시장 선거는 일련의 극적인 반전, 충돌, 그리고 예상치 못한 연합으로 전개됐다.

현직 민주당 시장 에릭 애덤스는 스캔들과 사상 최저 지지율에도 2선에 도전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그의 부패 의혹 사건을 공식적으로 각하한 뒤인 6월, 그는 이번에는 무소속으로 재출마를 선언했다. 이로 인해 애덤스는 민주당 예비선거를 건너뛰게 됐고 그 자리에서 맘다니가 쿠오모를 꺾었다. 맘다니의 승리는 기성 정치 질서에 대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쿠오모는 세 차례 뉴욕주지사를 지낸 마리오 쿠오모의 아들이며, 2011년부터 10년간 뉴욕주지사를 역임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쿠오모는 2021년 다수의 여성으로부터 성추행 의혹이 제기되고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요양시설 운영 실태를 둘러싼 논란이 확산되면서 탄핵 재판을 피하려 사임했다. 그는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예비선거에서 패배한 뒤 쿠오모는 중도층 유권자들에게 호소하기 위해 무소속으로 재출마했으며 9월 말 애덤스가 사퇴하자 그의 지지를 얻었다. 이에 선거는 맘다니, 쿠오모, 라디오 진행자이자 ‘가디언 엔젤스’ 지하철 순찰대 창립자인 커티스 슬리워 간의 3파전으로 좁혀졌다.

한편 트럼프가 대통령에 복귀한 이후 처음으로 치러진 주요 선거에서 민주당이 성과를 얻으며 활력을 불어넣었다. 이날 버지니아에서는 민주당의 애비게일 스팬버거가 손쉽게 주지사 선거에서 승리해 버지니아의 첫 여성 주지사로 기록됐다. 뉴저지에서는 민주당의 미키 셰릴이 주지사로 당선됐다.

캘리포니아 유권자들은 내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하원 의석 5석을 더 확보할 수 있도록 설계된 선거구 임시조정안을 승인했다.

이번 선거는 민주당이 권력을 되찾기 위한 다양한 전략을 시험하는 무대가 됐다. 내년 2026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의회 권력 구도가 걸려 있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 이후 워싱턴에서 밀려난 민주당은 정치적 방황에서 벗어날 돌파구를 찾고 있다.

세 후보 모두 경제, 특히 생활비 문제를 핵심 의제로 내세웠지만 스팬버거와 셰릴이 민주당의 중도파인 반면 맘다니는 거침없는 진보파이자 새로운 세대의 목소리로 자신을 부각시켰다.

공화당에게 이번 선거는 작년 트럼프의 승리를 이끌었던 유권자들이 트럼프가 직접 후보로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도 여전히 투표장에 나타날지를 시험하는 자리였다.

그러나 민주당 성향이 강한 두 주에서 공화당 후보 잭 치아타렐리(뉴저지)와 얼-시어스(버지니아)는 난관에 봉착했다.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하면 그의 핵심 지지층을 잃을 위험이 있었고 반대로 그에게 너무 밀착하면 중도와 무당층 유권자들이 등을 돌릴 수 있었다.

로이터·입소스 여론조사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대한 부정 평가는 57%에 달했다. 그러나 민주당이 그 반사이익을 얻고 있지는 않았다. 민주당 지지율 역시 상승하지 않고 있으며 2026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과 공화당 중 어느 당을 지지할지에 대한 응답자의 의견은 팽팽하게 갈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