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관세 전쟁’ 대법원 재판… 세계 무역 파장 예고

대법원, 5일 관세 심리 착수 “미국 역사상 가장 중요 사건” 헌법 질서·통상 질서 시험대 패소 시 환급액 최대 1조 달러

2025-11-03     이솜 기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4월 2일 워싱턴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열린 새로운 관세 발표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천지일보=이솜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정책에 대한 미국 대법원의 심리가 오는 5일(현지시간) 시작된다.

트럼프 행정부가 부과한 전 세계적 관세가 헌법상 대통령 권한 범위를 벗어났는지 그리고 국가 비상사태법을 근거로 한 통상 조치가 정당한지에 대한 판결은 향후 미국 무역 전략뿐 아니라 글로벌 통상질서 전반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연방대법원은 5일 구두변론기일을 열고 트럼프 행정부가 1977년 제정된 ‘국제비상경제권법(IEEPA)’을 근거로 부과한 일련의 관세 조치가 합헌인지 심리한다. 이는 트럼프 2기 정부의 핵심 경제 정책이자 외교 수단의 근간으로 사용돼온 조치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법원 심리를 앞두고 2일(현지시간) 자신의 SNS에 “다음 주에 있을 관세 재판은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라며 “만약 우리가 진다면 우리나라는 사실상 제3세계 수준으로 추락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초 대법원 공개 변론에 직접 참석하겠다고 했으나 이후 “사건의 중요성을 흐리지 않기 위해 참석하지 않겠다”고 입장을 바꿨다.

이 법적 공방은 트럼프 대통령이 ‘비상사태’를 선포해 전 세계 상품에 10~50%의 관세를 부과한 데서 비롯됐다. 그는 올해 2월 중국·멕시코·캐나다산 제품에 마약 밀매를 명분으로 4월에는 ‘무역적자’를 비정상적이고 이례적인 위협으로 규정하며 전 세계 수입품에 관세를 매겼다.

이에 대해 중소기업, 주 정부, 그리고 초당적 의원들은 대통령이 ‘세금’을 부과할 권한은 헌법상 의회에 있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의원 200여명과 공화당의 리사 머코스키 상원의원은 대법원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IEEPA는 무역을 규제할 수 있는 권한은 주지만 관세를 부과할 권한은 명시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세 차례의 하급심은 모두 행정부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올해 초, 두 개의 하급 법원과 미국 연방 순회 항소법원 판사는 트럼프 대통령이 IEEPA에 따라 관세를 설정할 권한이 없다고 판결했다.

기업들은 이미 타격을 받고 있다. 해외 생산 장난감을 수입해 판매하는 ‘러닝리소시스’의 릭 월덴버그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BBC에 “관세로 올해만 1400만 달러를 부담했다. 지난해의 7배”라며 “사업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혼란에 빠졌다”고 호소했다.

미 관세국경보호청(CBP)에 따르면 9월 23일 기준, 미국 기업들이 IEEPA 관세로 낸 금액은 약 900억 달러에 달한다. 이는 9월 30일로 끝난 2025 회계연도 동안 미국이 거둔 전체 관세 수입의 절반 이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달 초 폭스비즈니스 인터뷰에서 “대법원이 우리에게 불리한 판결을 내리면 우리는 돈을 되돌려줘야 한다”며 “이미 수십억 달러를 낸 기업들에게 환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소송이 수개월간 이어질 수 있는 만큼 그 기간에도 기업들은 계속 IEEPA 관세를 납부해야 한다. 만약 판결이 내년 6월까지 지연될 경우 환급액은 1조 달러에 이를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패소해도 다른 수단 사용 가능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은 미국 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비판을 불러왔다. 스위스의 초콜릿 제조업체 ‘카미유 블로크’의 CEO 다니엘 블로크는 “미국 수출용 코셔 초콜릿에 새로 부과된 39%의 관세를 감내하며 가격 인상을 막고 있지만 이는 수익을 완전히 없애는 조치”라고 밝혔다. 그는 “법원이 관세를 무효로 하면 환영하겠지만 그것이 진정한 해결책이 될지는 확신하지 않는다”고 BBC에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는 경제 정책을 넘어 외교 수단으로까지 확장됐다. 그는 브라질 사법부가 자신과 가까운 정치인을 기소하자 브라질산 제품에 보복 관세를 부과했고 캐나다 온타리오주 정부가 반(反)관세 광고를 내보내자 보복 조치를 예고했다. 또 유럽연합(EU)에도 15% 수준의 관세 합의를 끌어냈다.

법원이 어떻게 판결을 내릴지는 불투명하다. 9명의 대법관 중 6명은 공화당 대통령이 임명했으며, 이 중 3명은 트럼프 대통령이 임명했다. 그들은 최근 다른 사안들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일정 부분 우호적인 태도를 보여왔고 역사적으로도 국가 안보 사안에서는 행정부에 폭넓은 재량을 인정해 왔다.

미국기업연구소(AEI)의 선임연구원 애덤 화이트는 대법원이 이번 사건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를 위헌으로 판단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면서도 “무엇이 국가 비상사태로 간주되는지 같은 근본적 질문에는 선을 긋고 회피할 것”이라고 BBC에 전망했다.

백악관은 만약 이번 소송에서 패소하더라도 대통령이 최대 150일간 15%의 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한 다른 법률을 활용해 새로운 방식으로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그 경우라도 기업들은 약간의 숨통이 트일 수 있다. 새 법은 행정부가 공식 고지와 같은 절차를 거치도록 요구하기 때문에 시간과 검토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대법원의 판결과 관계없이 트럼프 대통령이 다른 법적 수단을 활용해 관세를 부과할 권한을 유지할 수 있다고 CNN은 이날 전했다. 미국 대통령은 전통적으로 다양한 관세 부과 수단을 보유해 왔다. 그러나 트럼프는 2기 집권 이후 주로 IEEPA 관세와 무역확장법 232조를 사용했다. 232조는 대통령이 ‘국가 안보’를 이유로 특정 산업에 높은 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다만 이 조항은 반드시 상무부의 조사를 거쳐야 하며 특정 산업군에 한정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자동차, 자동차 부품, 철강, 알루미늄, 구리, 가구 등 다양한 품목에 대해 232조를 근거로 국경세를 인상했다. 또한 여러 추가 조사도 진행 중으로 향후 다른 품목들에도 추가 관세가 부과될 가능성이 있다. 다만 IEEPA만큼 즉각적으로 관세율을 바꿀 수 있는 도구는 없다고 CNN은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