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창] ‘달아나는 돈’ 세계 도난 자산의 비밀 경로(下)
상편이 ‘돈이 사라지는 경로’를 추적했다면, 하편은 그 돈이 돌아오지 않는 이유를 묻는다.
아프리카연합(AU) 보고서가 밝힌 결론은 단순하다. 문제는 탐욕이 아니라 제도적 비대칭이다. 부유한 국가들의 법원과 은행, 그리고 그들이 지배하는 규제 체계가 자산 회수를 늦추거나 막고 있다는 것이다.
아프리카 뉴스채널의 아옐레 아디스 암베루 편집장은 이 구조를 “불평등한 협조의 정치경제”로 규정한다. 불법 자금의 회수는 국제 협조가 아니라 ‘허락’에 의존하고, 투명성의 비용은 언제나 가난한 쪽이 치른다. 그는 자산 환수와 제도 개혁이 동시에 이루어지지 않으면 세계는 다시 같은 순환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경고한다.
하편에서는 아프리카연합이 제시한 실질적 개혁안, 즉 실소유자 정보 공개, 자산 환수 패스트트랙, 국제 투명성 규범의 의무화 등을 다룬다. 결론은 냉정하다.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도둑질은 계속된다.”
불법자금유출 유도시키는 시스템
부국의 법·금융이 자산 환수를 막아
불투명성은 이익·투명성은 위험 취급
국제 협약 느리고, 공조는 간청 필요
실소유자 공개·자산 환수 자동화해야
협조 없는 개혁은 공허하고 위선적
부유한 국가들과 금융 허브들은 왜 개혁을 거부하며, 그 이유가 왜 모두에게 중요한가?
아프리카연합(AU)의 평가는 명확하다. 자산 환수는 비대칭적이다. 부유한 관할권의 법원과 사법 집행기관들이 ‘병목’ 위치에 앉아 있다.
자산을 동결하고 송환하기 위해서는, 바로 그 부패 자금이 숨겨진 은행·부동산·법률 서비스가 위치한 국가들의 협조와 정치적 의지가 필요하다. 이는 해당 관할권에 영향력을 부여하며 때로는 그것을 지연 수단으로 활용한다.
정치경제학적으로 현실은 냉혹하다. 불투명성은 은행과 서비스 제공자들에게 이익을 낳는다. 반면, 완전한 투명성을 위한 규제 비용은 권력자들에게 ‘사업 리스크’로 보인다.
이 때문에 국제 협약은 여전히 불완전하고 국가 간 법적 공조 절차는 느리며, 아프리카(와 다른 청구국들)는 권리로서 환수를 요구하기보다는 협조를 ‘빌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보고서는 이 비대칭적 종속이 반드시 끝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프리카는 단발적인 협조에 의존하지 않고도 스스로 자산을 추적하고 회수할 수 있는 권한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글로벌 개혁안은 대담하고, 구체적이며, 실행 가능하다.
AU와 협력하는 글로벌 패널들은 문제를 진단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실용적인 도구상자를 제시한다. 가장 효과적으로 ‘누수’를 줄일 수 있는 방안들은 다음과 같다.
▲실소유자 정보 자동·상호 교환 ▲국가별 기업 보고 의무화와 공격적 이전가격 조정 단속 ▲실시간에 가까운 무역 데이터 대조 프로그램을 통한 허위 인보이스 탐지 ▲공급망 전반의 추적성을 강화한 고위험 상품 통제 ▲신속한 자산 동결을 위한 국제 기준의 통일 ▲반환된 자금이 압류되지 않도록 보호하면서 송환을 가속화하는 유엔 또는 지역 기관이 보증하는 지역 자산 회수 플랫폼.
이들 중 상당수 개혁은 이미 FACTI, StAR,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세원 잠식(Base Erosion) 프로그램 등에서 일부 시범적으로 시행되고 있지만 아직 협조가 자동적이거나 구속력 있는 체계로 전환된 것은 없다.
◆측정, 과잉 적용, 그리고 ‘비난의 정치’
‘불법’의 정의를 확대하려는 시도에 대해 비판자들은 두 가지 위험을 제기한다.
첫째, 측정 오류다. 가격 변동에 따른 정상적 무역 차이를 허위 송장 발급과 구분하지 못하면 피해 규모를 과대평가할 수 있다.
둘째, 정치화의 위험이다. ‘불법’이라는 정의가 지나치게 탄력적으로 적용될 경우, 비자유주의 정부들이 내부 실패를 외부 세력 탓으로 돌리는 ‘희생양 만들기’에 악용될 수 있다.
AU는 이 두 위험을 인정하면서도, 기술적 안전장치를 제시한다.
즉, 명확한 통계 기준, 신뢰할 수 있는 제3자 무역 데이터 대조, 그리고 일반적인 무역이 아니라 가치 은닉이나 국내 의무 회피를 목적으로 한 행위만을 겨냥하는 법적 한계를 명시하자는 것이다.
이 정의 논쟁은 단순한 학술적 토론이 아니다. 이는 세계가 공공 재정을 보호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지정학적 갈등의 층위를 만들 것인지를 결정짓는 문제다.
◆글로벌 지도자들과 국제기구의 목소리
도덕적·정치적 논거는 이미 공공연히 제기되고 있다.
유엔은 개발도상국의 자금 유출을 거대한 개발 장벽으로 규정해 왔다.
유엔 사무국과 고위 관계자들은 반복적으로 도난 자산의 신속한 환수와 부패 및 불법 자금 유출을 가능케 하는 국제 규범의 강화를 촉구해 왔다.
세계은행–유엔마약범죄사무소의 스타(StAR·Stolen Asset Recovery, 도둑맞은 자산 회복)는 “자산 환수는 가능하다. 그러나 대규모로 이뤄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정책 실패다”라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한편, AU 보고서는 AU 관계자와 지도자들의 발언을 인용한다. “아프리카 국가들과 비(非)아프리카 국가들이 불법자금유출(IFFs)을 억제하기 위해 합의한 노력을 글로벌 차원에서 일관되게 통합할 필요가 있다.” 사무국은 이를 기록하며, 고상한 결의가 아니라 구속력 있는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진정한 글로벌 책임체계란 무엇인가
만약 정책 결정자들이 내일이라도 진지하게 움직인다면, 그 순서는 명확하되 정치적으로는 고통스러울 것이다.
(1) 유엔총회 또는 안전보장이사회가 ‘불법’의 정의를 확대해 조세 회피나 허위 무역 신고로 인한 체계적 재정 피해를 포함하는 구속력 있는 기준을 채택한다. (2) 각국은 실소유자 및 무역 거래 데이터의 자동 교환 체계를 도입한다. (3) 주요 원자재 허브들은 고위험 상품에 대한 추적 가능성 기준을 수용한다. (4) 특별 법정, 지역 조사관, 증거 기준을 갖춘 국제 자산 환수 패스트트랙을 설치한다. (5) 환수된 자금은 시민사회가 감독하는 투명하고 독립된 개발 계좌에 예치한다.
각 단계의 세부 내용은 협상 가능하지만 논리적으로 선택 사항이 아니다. 보호 없는 환수는 재탈취를 부르고 환수 없는 개혁은 도덕적 제스처에 불과하다. 보고서는 이 두 가지가 반드시 동시에 추진돼야 한다고 단언한다.
◆세계의 선택, 평범한 사람들의 운명
이것은 부유한 자선가와 가난한 국가들 간의 논쟁이 아니다. 세계 경제의 규칙을 ‘사적 비밀’을 위한 구조로 유지할 것인가, ‘공적 책임’을 위한 구조로 바꿀 것인가의 문제다.
저소득 국가의 사람들에게 그 차이는 잔혹하다.
아프리카 대륙에 연간 300억~600억 달러만 더 확보돼도 혹은 범죄 관련 자산의 일부만 돌려받아도 교육, 의료, 상수도, 공공투자가 원조로는 결코 이루지 못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정부는 더 많은 부채를 지고, 공공 서비스를 줄이며, 폭력과 부패를 낳는 불만의 순환은 더욱 깊어진다.
AU의 메시지는 시급하고도 단호하다. 구조적 개혁이 곧 개발정책이다.
마지막 도발적 질문. 만약 이 문제가 ‘설계된 도둑질(theft by design)’이라면?
AU 보고서의 가장 불편한 주장은 이것이다. 비밀과 자본 이동성을 중시하던 시대에 만들어진 현행 국제법과 제도는 지금은 사실상 대규모 절도를 가능하게 하는 관대한 구조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규칙을 다시 쓰는 일은 정치적으로 험난할 것이다. 은행, 로펌, 금융중개기관, 불투명성에서 이익을 얻는 국가들을 정면으로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안은 명확하고도 암울하다. 유출을 계속 허용하고, 그로 인한 정치적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AU의 새로운 보고서가 유엔과 전 세계 앞에 던지는 냉혹한 선택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