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양손 북채로 만든 흥을 다음 세대에 온전히 물려주고 싶다”

진도북놀이 예능보유자 김병천 명인 1983년 진도서 북과 첫 인연 곽덕한 선생 타법 사사 받아 33년 공직과 예술 생활 병행 관객과 눈맞춤이 흥의 비결 기량보다 예의로 후학 양성 전통 우수성 젊은층에 전파

2025-10-24     천성현 기자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18호로 지정된 진도북놀이 예능보유자 김병천 명인이 무대에서 장성천류의 투박하면서도 자연스러운 흥을 선보이고 있다. (제공: 김병천 진도북놀이 예능보유자)ⓒ천지일보 2025.10.24.

[천지일보=천성현 기자] “장구는 한 손으로 치면 그냥 ‘덕’ 소리가 나오지만, 북은 ‘쿵 덕’ 이렇게 나와요. 앞에 예비음을 주고 ‘쿵 덕’ 할 때 ‘덕’이 원박이거든요. 그게 진도북의 특징입니다.”

본지가 최근 전남 진도군 무형문화재전수관에서 만난 김병천 진도북놀이 예능보유자는 진도북만의 독특한 타법을 이렇게 설명했다. 1987년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18호로 지정된 진도북놀이는 북을 어깨에 비스듬히 메고 양손에 북채를 쥐어 연주하는 국내 유일의 형태다. 김 명인은 진도북놀이 장성천류의 맥을 잇는 대표주자로 1983년부터 42년간 이 예술을 지켜왔다.

◆1983년 겨울, 행랑채에서 시작된 인연

1983년 겨울 인천에서 살다 아버지 별세로 진도에 내려온 김병천 명인은 동네 어른들이 집 행랑채에서 북을 연습하는 모습을 보며 자연스럽게 시작했다.

“방이 좁다고 해서 우리 집 행랑채를 빌려드렸어요. 어머니 혼자 계셔서 밖에 놀러 안 가고 어른들 속에서 북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어린 나이였지만 배움은 일상이 됐다. 그는 나무를 하러 갈 때마다 통발을 두드리며 저녁에 배운 가락을 연습했다. 1985년 남도문화제 출연으로 한국민속촌 농악단에 스카우트됐고 1987년 전라남도 도립국악단에 합류하며 본격적인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천지일보 진도=천성현 기자]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18호로 지정된 진도북놀이 예능보유자 김병천 명인이 전남 진도군 무형문화재전수관에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다.ⓒ천지일보 2025.10.24.

김 명인의 스승인 고(故) 곽덕한 선생에게 배운 가르침은 진도북놀이만의 독특한 타법이다. 양손이 각자 따로 움직여야 제대로 된 소리가 난다는 것이 핵심이다. “양손이 각자 놀아야 진도북놀이가 되는데 제자들을 가르쳐 보면 그걸 잘 못해요. 두 손을 함께 치는 거랑은 완전히 다르죠.” 타법 하나하나를 신경 써서 가르쳐준 곽 선생의 모습은 지금도 선명하다. 

곽 선생이 문화재 보유자가 되지 못한 것에 대해 그는 여전히 아쉬움을 갖고 있다. “문화재는 곽 선생님이 돼야 했었는데 못 됐어요. 그게 한이 됐지만 그 이후로 제가 진도북을 계속 이어왔습니다.”

◆‘장성천류’의 투박한 맛과 자연스러운 흥

일각에서는 그의 북놀이를 ‘김병천류’라 부른다. 장성천류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독창성을 더한 결과로 장구, 소리, 사물놀이까지 다양한 악기를 다뤄온 경험이 그 기반이 됐다.

“흥이라는 건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몸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맛이죠. 손만 들어도 이렇게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 다른 사람보다 더 있다고 들어요. 저는 장구부터 소리, 사물까지 다 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보다 더 자연스러운 끼나 멋이 더 있다고 자부합니다.”

1987년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18호로 지정된 진도북놀이는 북을 어깨에 비스듬히 메고 양손에 북채를 쥐어 연주하는 국내 유일의 형태다. 사진은 진도북놀이 예능보유자 김병천 명인. (제공: 김병천 진도북놀이 예능보유자)ⓒ천지일보 2025.10.24.

김 명인은 33년 4개월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도 수련을 멈추지 않았다. 1989년 학교 행정실 공무원이 된 그는 현직에 있으면서 보유자를 받고 두 가지를 겸해왔다. 1996년 진도씻김굿, 2003년 진도북놀이, 2008년 전수교육조교를 거쳐 진도북놀이 예능보유자로 인정받았다.

◆예의 첫째로, 관객과 눈맞춤 중요

제자를 가르칠 때 그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기량이 아닌 예의다. “제자들한테 가장 먼저 가르치는 것은 예의죠. 우리 전통 하는 사람들은 아무리 기량이 좋아도 예의를 모르면 안 돼서 첫째로 하고 있습니다.”

또한 북과 춤의 조화도 중요하게 여긴다. “가락의 강약과 체발림, 춤사위 이런 것들을 제자들한테 심어주고 있어요. 내 멋을 알려주고 반복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자기 것이 나오거든요.”

[천지일보 진도=천성현 기자]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18호로 지정된 진도북놀이 예능보유자 김병천 명인의 제자들이 전남 진도군 무형문화재전수관에서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천지일보 2025.10.24.

김 명인은 무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관객과의 눈맞춤과 교감이라고 강조했다. “관객들하고 흥을 나눌 때는 시선과 미소예요. 항상 눈을 마주쳐야 그 사람과 대화가 돼요. 그 사람이 웃어주면 더 흥이 나고 거기서 자신감도 생기고 같이 대화하면서 호응이 되더라고요.”

서울 국립국악원 공연은 그의 인생에서 전환점이 됐다. 당시 그보다 유명한 동명이인으로 예정됐던 공연에 우연히 서게 됐다. “무대가 800석인데 1000여명은 들어왔을 거예요. 긴장했지만 박수 한번 딱 받으니 나도 모르게 흥이 났고 많은 박수를 받은 기억이 있습니다.”

◆자유로움이 진도북놀이 본질

진도북놀이가 전라남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지 38년이 흘렀다. 그 세월 속에서 김 명인이 느끼는 가장 큰 변화는 자유로움과 개성의 상실이다.

“내가 1980년대 배울 때는 남자 굿과 여자 굿으로 나뉘어 있었어요. 각자 놀았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군무로 똑같이 처음부터 끝까지 하더라고요. 자연미가 없어졌어요.”

[천지일보 진도=천성현 기자]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18호로 지정된 진도북놀이 예능보유자 김병천 명인이 전남 진도군 무형문화재전수관에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다.ⓒ천지일보 2025.10.24.

제자들에게는 자신만의 개성을 가질 수 있도록 가르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제자들한테 춤도 추고 가락을 갖고 놀아라. 똑같이 치지 말고 발 들고 어깨도 흔들며 자유롭고 자연스럽게 제자들이 잘 전승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우리 음악의 우수성을 알아달라”

김병천 명인은 진도 젊은이들이 전통을 이어가기 어려운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서울, 부산 등지에 진도북놀이를 전수하며 장성천류를 널리 알리고 있다.

“진도의 젊은 사람들이 우리 전통을 이어가게끔 하려고 하는데 많이 없어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지금 서울, 부산 등 다른 지역 친구들한테 하나둘씩 전수하고 있다”며 “젊은 사람들이 우리 장성천류를 보면 호감을 갖고 나한테 오지 않을까 싶어서  더 맛깔나는 가락과 춤사위로 전승하고 있어요.”

[천지일보 진도=천성현 기자]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18호로 지정된 진도북놀이 예능보유자 김병천 명인이 전남 진도군 무형문화재전수관에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다.ⓒ천지일보 2025.10.24.

끝으로 김 명인은 우리 전통음악의 우수성을 알아달라고 당부했다. “요즘 젊은이들이 우리 것보다 다른 음악을 좋아하는데 우리 음악의 우수성을 좀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북이 됐든 장구가 됐든 소리가 됐든 취미생활로 끌어나가면서 우리 전통을 좀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1983년 겨울 행랑채에서 시작된 김병천 명인의 북놀이는 이제 진도를 넘어 전국으로 뻗어나가고 있다. 양손 북채에 담긴 42년의 신명은 현재 전수관에서 제자들에게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