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포커스] ‘한국 과학계 큰 어른’ 조완규 박사 “백신 보급, 생명과학의 미래”
서울대총장·교육부장관 역임 인류 보건의 길 연 생물학자 국제백신연구소 韓유치 주역 97세에도 매일 출퇴근 열정 “봉사하는 삶이 ‘진짜 성공’”
[천지일보=김빛이나 기자] “개발도상국 어린이들이 전염병으로 매년 800만명씩 죽어나간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값싸고 안전한 백신을 만들어 보급하는 게 국제백신연구소(IVI)의 목적인데 그건 인도주의이자 생명과학의 미래였지요.”
대한민국에 본부를 둔 최초의 국제기구인 IVI 유치 주역이자 올해 97세에도 현역으로 봉사 중인 조완규 박사는 지난 14일 IVI 내 자신의 연구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제18대 서울대 총장과 제32대 교육부 장관을 지낸 그는 생물학 박사이자 대한민국 과학기술 발전의 산증인으로 불린다. IVI 한국후원회 상임고문을 맡은 그는 여전히 매일 출퇴근하며 활발히 활동 중이다. 100세를 앞둔 나이에도 열정이 가득한 삶을 사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현재 조 박사가 가장 많은 시간을 쏟는 일은 IVI에 관한 일이다. IVI는 세계 공중보건을 위해 안전하며 효과적이고 저렴한 백신의 발굴 개발 보급에 전념하는 비영리 국제기구이자 대한민국에 본부를 둔 최초의 국제기구다.
조 박사는 1990년대 IVI 본부를 한국에 유치하기 위해 직접 대통령과 국무총리, 국회의장까지 찾아다니며 설득했다. 6개국과의 경쟁과 조 박사의 끈질긴 노력 끝에 IVI는 1997년 서울대학교 연구공원에 본부를 세우게 됐다. 조 박사는 연구소 후원회 이사장을 맡아 기금을 모았다.
그는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가 빌 게이츠가 운영하는 게이츠 재단과 협력하게 됐다”면서 “게이츠 재단에서 지금까지 IVI에 후원한 금액은 3억 달러(4255억 5천만원)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후원 속에 IVI는 세계 최초의 저가 경구용 콜레라 백신을 개발해 WHO 사전승인을 받았으며, 차세대 장티푸스 접합백신도 개발했다. 현재는 콜레라, 장티푸스, 치쿤구니아, 살모넬라, 코로나19 등에 대한 백신 연구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좌우명, ‘지족안분(知足安分)’”
조 박사의 좌우명은 ‘지족안분(知足安分)’이다. 그는 “자기 분수를 알고 주어진 여건에 만족하며 사는 게 중요하다”며 “욕심을 낸다고 해서 뜻대로 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스트레스만 커진다”고 말했다. 여기서 그가 말한 ‘만족’은 현실에 안주하는 것을 말하거나 의욕이 없이 사는 것을 의미하지 않았다.
그는 “욕심 없이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내 인생철학”이라며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다”고 말했다. 이어 “목표를 세울 때도 ‘실현 가능한 선에서’ 정해야 한다”고 했다.
“하루에 1만보를 걷는 게 목표라면 저는 충분합니다. 저에게 하루에 2만보를 걷겠다는 건 가능하지 않아요. 너무 높은 목표를 세우면 고통만 남지요. 지금 이 사무실에 나와 글을 읽고, 사람을 만나며 시간을 보내는 게 제겐 가장 보람된 일입니다.”
◆6.25전쟁에도 놓지 않은 연구자의 길
어려움 없이 탄탄대로를 걸어왔을 것 같은 그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조 박사가 서울대에 진학한 1948년 당시 생물학과 교수는 단 2명뿐이었고, 학생들은 15명에 불과했다. 실험장비라고는 ‘현미경’이 유일했고, 그마저도 보유량이 3대에 불과해 15명의 학생들이 함께 쓰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2년 뒤인 1950년엔 6.25전쟁이 터졌고 교육 환경은 더 열악해졌다.
하지만 조 박사는 포기하지 않았다.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한다’는 그의 인생모토대로 할 수 있는 연구부터 최선을 다해 이뤄나갔다. 1952년 서울대 생물학과 졸업 후 대학원으로 진학한 그는 열악한 실험실 환경 속에서도 항생제의 생쥐 백혈구 운동에 미치는 영향을 관찰하고 그 결과를 종합해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또한 1957년 서울대 교수로 부임한 이후 그는 포유동물 난자의 성숙과정에 대한 연구에 몰두했다. 특히 배양액 내 ‘cAMP’가 존재할 때 난자 성숙이 가역적으로 억제된다는 사실을 밝혀내며 세계 발생생물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조 박사는 국가 과학기술 행정의 체계를 세우는 데도 이바지했다. 1980년대 초 유전공학이 국내에 도입될 무렵 그는 유전공학학술협의회를 창립하고 ‘유전공학육성법’을 제정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이후 한국생물과학협회장,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과총) 회장,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초대 원장을 맡으며 과학자 조직의 제도적 기반을 닦았다.
◆“교육의 목적, 사람 만드는 일”
이러한 많은 업적을 남긴 조 박사는 우리나라 국민이 가진 성실성과 현재 큰 발전을 이루고 있는 ‘K-문화’에 대해 높이 평가했다. 또한 앞으로의 발전도 기대된다고 했다. 다만 그는 우리나라 교육에 대해서만큼은 우려를 표했다.
그것은 바로 ‘인성교육 부족’이었다. 조 박사는 “교육의 첫째 목적은 인성이 돼야 한다”면서 “그런데 요즘은 대학 입학이 교육의 목적이 돼버린 것 같아 안타깝다. 대학은 수단이지 목표가 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경쟁만을 중요하게 여기는 한국 교육의 풍토를 안타깝게 바라봤다. 그는 “부모들이 아이를 어렵게 대학에 넣으려 애쓰지만 그게 꼭 행복으로 이어지진 않는다고 본다”며 “자기가 갈 만한 대학에 가서 편히 배우는 게 오히려 낫다. 교육은 성적이 아니라 사람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미국은 꼭 ‘명문대’를 가려 하지 않는다”며 “우리도 경쟁보다 성장 중심의 교육으로 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봉사하며 사는 삶이 진짜 성공”
조 박사는 “너무 조급해하지 말라”는 조언도 남겼다. 그는 “남보다 빨리 가려고 하면 결국 자신을 잃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내가 맡은 자리에서 충실히 하는 것, 그게 인생”이라며 “결국 행복은 욕심이 없을 때 온다. 봉사하고 감사하며 사는 것, 그게 진짜 성공”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 박사도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한마디로 ‘봉사하는 삶’이라 했다. 그는 “내가 잘 살 수 있었던 건 나를 도와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나도 누군가를 도와야 한다. 그것이 봉사”라고 설명했다.
그는 봉사를 거창한 일로 보지 않았다. 조 박사는 “사회생활이라는 게 결국은 봉사하는 생활”이라며 “내가 (살아가면서) 사회에서 받은 걸 다시 돌려주는 것이다. 그게 가장 가치 있는 삶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울대 총장과 교육부 장관을 지낸 그가 인생의 마지막 장에서도 연구소에 남아 있는 이유도 이와 같았다. 그는 “IVI를 통해 개발도상국 어린이들에게 백신을 보급하는 일, 그게 내 마지막 봉사”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