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화가, 머릿속 생각을 캔버스에 풀어내는 ‘번역가’”
그림 그리기 좋아한 유년기 평생 교직에 몸담으며 작업 84세, 지역 대표 작가로 성장 30여년 화업 발자취 회고전 남다른 호기심·관찰력 주효 상상이 실현되는 ‘쾌감’ 중독 생활과 경험이 영감의 원천 그림 재미있어서 놓지 못해
[천지일보 여수=이봉화 기자] 주일남 작가는 1941년생으로 올해 84세의 여수 지역을 대표하는 원로작가다. 주 작가는 머릿속 생각을 시각적인 언어인 손과 붓으로 캔버스에 회화적 요소를 가미해 나타내는 것이 그림이라며 이번 회고전에 대한 책임과 화가로서의 생각을 풀어냈다.
◆흩어지고 없어진 그림들 안타까워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를 기념하며 세워진 여수세계박람회장 한 켠, 여수엑스포아트갤러리에서는 오는 12월 7일까지 지역 원로작가 주일남의 회고전 ‘찬란한 고독의 여정-맥을 찾아서’가 열리고 있다.
주 작가는 이번 회고전을 통해 30여년 화업의 발자취를 조명하며 “꼭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젊어서부터 같이 그림을 그리고 방학이면 캔버스 하나 메고 여기저기 다녔던 동료들 얘기를 들어보면 그림들이 다 흩어지고 없어졌다며 화집 하나도 없이 보관된 그림도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나라도 그림을 모아서 관리를 해놓아야겠다 싶어 이번 전시를 꼭 하고 싶었다”며 “내가 해놓으면 다른 후배 화가들도 따라서 하지 않겠냐”고 했다.
◆굵직한 화단 이력, 지역 화가 명맥 이어
이번 전시는 지역 작가와 활동 기록을 아우르는 지역 미술사 정립을 목표로 마련된 전시로 주 작가의 이런 의중과 맞닿아 있다. 전시에서는 정물·인물화 등 초기작부터 최근의 ‘맥(脈) 시리즈’까지 그의 작품세계를 통합적으로 조명한다.
주 작가는 1961년 전국 미술실기대회 특선으로 화업에 입문한 뒤 순천사범학교를 졸업하고 2003년 돌산중학교(교장)에서 정년퇴직했다. 평생 교직에 몸 담으며 해방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는 지역 원로작가로서 전우회, 황토회, 토상회 등 지역 미술단체에서 꾸준히 활동했다.
전라남도미술대전 특선·입선 8회, 대한민국미술대전 입선 4회, 전국무등미술대전 입선 3회와 더불어 1987년 전라남도미술대전에서 문공부장관상을 받는 등 굵직한 화단 이력을 쌓았다. 2023년 ‘응축된 도시(달빛갤러리)’ 유화 작품전 등 가장 최근까지도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또한 순천, 통영 등 인근 지역과의 교류 전시를 통해 지역 간 예술교류 활성화에도 힘써왔고 많은 후학을 길러내며 지역미술계의 맥을 이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천부적인 자질과 ‘쾌감’없이는 힘들어
주 작가는 “이번 회고전을 준비하며 체중이 6㎏ 이상 준 후 회복이 안 되고 있다”며 그만큼 나이가 든 것이 실감이 난다고 했다. 그는 작품 하나하나 완성한다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라며 그간의 작품 활동을 회상했다.
과거는 일본 물감을 썼는데 교사의 박봉으로 유지하기 힘들어 보너스를 받는 달에야 여유가 생겼다고 그림을 그리기 어려웠던 시절을 떠올렸다. 그리고 체육이나 음악처럼 예체능계는 훈련이나 노력만으로는 힘들다고 생각한다며 천부적인 자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동일 선상의 학생 중에서 뚫고 나오는 것이 천부적인 자질이라며 어려서부터 그림을 좋아하고 관심 갖게 해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다고 했다.
심리학자 매슬로가 인간 욕구 단계를 분류하며 자아실현이 절정의 쾌감이라고 정의했는데 원하는 그림을 캔버스에 구현해 내는 그 순간의 ‘쾌감’은 일종의 중독이라며 그 순간을 못 잊어서 그림을 계속 그리고 재미가 있으니까 하는 것이라고 했다.
미국영화 벤허(찰턴 헤스턴 주연)의 감독 윌리엄 와일러가 마차경기 장면에서 ‘오 마이 갓, 저 작품을 제가 만들었습니까’ 하며 감동과 희열을 표현했다. 물론 창작의 과정에서 고통스럽기도 하며 주변의 시기와 질투를 사기도 하지만 원하는 결과를 얻었을 때 느끼는 쾌감은 무엇으로도 설명하기가 어렵다.
◆풍부한 감성·예민한 감각·시각 달라
주 작가는 “그림을 그리다가 색깔, 모양이 안 풀리다가도 어느 꿈속에서 ‘짙은 녹색으로 칠해봐’하고 영감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며 “모든 신경과 무의식까지도 그림에 온통 몰입했었다”고 했다. 같은 꽃잎을 보더라도 ‘왜 모양이 저렇지’ ‘색깔은 어떻게 저렇게 나오지’ 하다가 그것을 캔버스에 표현할 때 붓으로 그려진다며 남다른 감성과 시각, 호기심 강한 관찰력을 영감을 얻는데 중요한 요소로 꼽았다. 그는 “화가는 생각의 번역가”라며 “머릿속 상상을 번역해 손을 통해 시각적인 표현으로 회화적 요소를 가미한 것”이라고 그림을 정의했다.
2022년 ‘울 밑에 선 봉선화야’라는 작품이 8살 때 동네에서 직접 겪었던 ‘여순사건’을 주제로 한 그림이라며 예를 들었다. 해가 지면 집 밖으로도 나가선 안 된다고 어른들께 혼났던 엄혹했던 그 시절을 작가의 시선과 감성으로 화폭에 담은 것이다. 그는 “당시 동네 어른, 형, 누나들에게 들었던 이야기들이 그림을 그리자고 마음먹으니 생생하게 떠올라 원혼을 달래준다는 것에서 시작해 완성한 그림”이라고 했다. 싯김굿으로 형상화하고 그것을 종교(불교)적인 어루만짐으로 다뤘다고 말이다. 이렇게 그는 작업을 하면서 또 다른 영감을 받고 그 영감을 그림으로 그려냈다.
◆ ‘금메달’작가, 소품전 꿈꿔
어느 교수가 연간 5천~6천명의 미대생이 생기는데 그중에 60이 넘어서도 작품 활동을 하면 ‘동메달’, 70살이 넘으면 ‘은메달’, 80살이 넘어서도 활동하면 ‘금메달’이라며 국가에서 보호해야 한다고 했다며 주 작가 본인은 ‘금메달’ 작가라고 표현했다.
그는 “그리는 사람은 그림을 그린 후 던져놓는 사람으로 보는 사람이 열이면 느끼는 점은 다 다르다. 다르게 본다고 틀렸다고 말하기 어려우니 보이는 대로 보이길 바란다”고 했다. 감상은 감상하는 사람의 몫이고 감정이라며 슬픔이 보이면 슬프게 익살스럽게 보이면 익살스럽게 느끼길 바란다고 관객에게 당부했다.
그는 그림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생물학자가 됐을 정도로 곤충을 관찰하는 호기심이 왕성했다고 한다. 남다른 호기심과 관찰력이 그의 작품 활동의 원동력이 됐다.
젊은 시절 떠났던 유럽여행에서 봤던 이탈리아, 프랑스의 건물과 외벽의 모양, 색채, 장식 등에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지금의 ‘맥 시리즈’에 반영이 됐다고 한다. 이렇게 영감이 떠오르면 비둘기같이 날아갈까봐 글로 잡아놓고 캔버스에 살찌워 표현해 놓고 순간의 생각을 잘 잡아둘려고 노력한다며 도시의 환상을 작업할때도 머릿속에 저장된 파일에 저장했던 것을 꺼냈다고 한다.
주 작가는 앞으로의 전시에 대해 “기회가 된다면 소품전을 해보고 싶다”고 말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약력
-1961 전국 미술실기대회 특선(홍익대학교)
-제23회 전라남도미술대전 종합대상 문공부장관상
-전라남도미술대전 특선·입선 8회
-대한민국미술대전 입선 4회
-전국무등미술대전 입선 3회
주요 단체전
2005 KAF 2005 코리아아트페스티벌(세종문화회관, 서울)
2013 갤러리 이음 개관 초대전(전남교육척 갤러리 이음, 무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