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비가 와도 북적… 내일 추석이라 더 뜨거운 광장시장
외국인도 반한 ‘서울의 맛’… ‘K-문화’가 된 사람 냄새
[천지일보=양효선 기자] 추석을 하루 앞둔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은 유난히 더 붐볐다. 부슬비가 내렸지만 사람들은 우산을 접고 들고 젖은 골목을 비집고 들어왔다. 김이 오른 빈대떡 냄새와 기름 지글거리는 소리, 상인들의 호객이 뒤섞이며 ‘내일상을 준비하는 시장’의 심박수를 높였다. 요즘 전 세계에서 각광받는 K-푸드·K-여행 열풍과 맞물려 외국인 발길도 이어지며, 광장시장은 말 그대로 ‘살아 있는 서울의 맛’ 현장이 됐다.
◆ 맷돌 소리로 빚는 ‘서울의 맛’
시장 깊숙한 골목, 녹두를 가는 맷돌이 “드르르륵, 드르르륵” 낮게 울린다. 빈대떡 가게 아주머니의 팔뚝엔 힘줄이 선명하고, 맷돌 아래로 흐르는 연두빛 녹두물은 고소한 냄새를 퍼뜨린다. 그 앞에서 DSLR을 든 외국인 남성이 렌즈를 바짝 들이대며 감탄한다. “사운드가 정말 좋아요!” 전을 뒤집는 ‘지익’ 소리, 셔터 소리까지 겹쳐져 시장 전체가 한 편의 사운드트랙이 된다.
긴 벤치에서는 외국인 모녀가 국수를 나눴다. 아이가 후루룩 소리를 내며 웃는다. “엄마, 매워요!” 엄마는 젖은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속삭인다. “괜찮아, 한국은 따뜻해.” 옆 테이블의 외국인 커플은 젓가락을 부딪치며 환호했다. “이게 서울의 맛.” 말은 달라도 표정은 같다. 비 오는 날의 정겨운 풍경이 국적을 넘어 한 장면으로 이어졌다.
◆ 비와 함께 걷는 여행자, K-문화의 현장
아치형 간판의 ‘광장시장’ 글자가 빗물에 젖어 반짝인다. 안쪽엔 서울시 ‘움직이는 관광안내소’가 서 있고, 빨간 유니폼의 안내요원들이 영어와 일본어로 길을 짚어준다. “빈대떡 골목은 저쪽이에요.” 한 외국인 관광객은 우산을 살짝 젖혀 들고 말한다. “서울 시장은 단순한 쇼핑이 아니라 문화 체험의 공간.” 이어 “비 오는 날엔 더 로맨틱하다”고 웃었다.
‘십원빵’ 가게 앞에선 젊은 여성들이 동전 모양의 빵을 들고 인증샷을 남기고, 옆 베이커리에서는 마늘크럼블빵이 막 구워져 고소한 향을 흩뿌린다. 빵집 직원은 “외국인들이 ‘K-디저트’라며 SNS에 올려줘요”라며 웃었다. 드라마와 유튜브로 익숙해진 K-문화의 장면들이, 비에 젖은 시장에서 실제 냄새와 소리로 완성되고 있었다.
◆송편·전·환대… 추석 전날의 온기
떡집 진열대에는 알록달록한 송편이 접시 가득 올랐다. 아이 손을 잡은 외국인 여성이 조심스레 말한다. “이건 송편이래.” 아이가 “핑크색이 예뻐요!”라고 웃자, 상인은 주저 없이 봉지를 다시 열며 한마디를 얹는다. “그럼 이건 서비스!” 짧은 눈인사와 덤 한 조각에 한국 시장의 환대가 스며 있다.
반찬가게 앞에는 양념게장, 오징어무침, 장아찌가 작은 산처럼 쌓였다. 집게를 바삐 놀리던 상인은 말한다. “비 오는 날엔 김치와 전이 제일 잘 나간다”며 “오늘은 외국 손님도 많아 더 바빠요.” 주문이 겹치고 계산대가 분주해질수록 내일 차례상에 오를 먹거리가 봉지마다 묵직해진다.
비는 여전히 부슬부슬 내리지만 시장의 공기는 더 뜨겁다. 빈대떡을 뒤집는 소리, 아이의 웃음, 외국인의 셔터 소리, “서비스 하나 더”라는 상인의 외침이 한데 엮여 리듬을 만든다. 추석을 하루 앞둔 오늘 광장시장의 북적임은 단순한 장보기 풍경을 넘어 K-문화가 자라는 생활의 현장임을 사람의 온기가야말로 ‘서울의 진짜 맛’임을 다시 확인시켜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