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인사이드|전북] 전주·완주 통합, 주민투표 절차 두고 찬반 갈등 격화
법적근거 없어 ‘주민투표’ 제안
군민반대 확인 여론조사 파장
소외와 불균형 발전 우려 확산
내년 지방선거 활용 논란 불신
6자회담서 향후절차 논의 집중
“주민 의견 반영해 신중히 결정”
[천지일보 전북=김동현 기자] 전주와 완주의 행정 통합 논의가 수년째 답보 상태를 이어가며 지역사회 갈등이 한층 고조되고 있다. 통합을 통한 성장 동력 확보와 경쟁력 강화라는 기대와 함께 자치권 침해·재정 불균형·농촌 소외에 대한 우려가 맞서면서 양측의 간극은 좁혀지지 않고 있다. 최근 열린 토론회와 정치권 논의에서는 찬반 논리를 넘어 절차와 대안을 둘러싼 공방이 이어졌다.
◆첫 공론의 장, 찬반 논리 충돌
전북도당이 마련한 공론의 장에서는 찬반 주장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행사장은 시작부터 긴장감이 팽팽했고 발언자들은 통합의 필요성과 위험성을 두고 상반된 해법을 쏟아냈다.
찬성 측은 통합을 1935년 일제에 의해 분리된 전주와 완주를 다시 하나로 묶는 ‘역사 복원’이라 규정했다. 생활권이 이미 사실상 일치한 만큼 행정체계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민투표를 통한 정당성 확보 없이는 논란이 끝나지 않는다고 지적하며 법적 근거 없는 여론조사에 기댈 경우 사회적 후유증만 남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한 전국 90여개 통합 사례를 분석하고 상생 발전방안 100여개를 토론하는 추진위 구성을 제안해 실질적 검증 절차 필요성을 부각했다.
반대 측은 과거 세 차례의 무산 전례를 거론하며 이번에도 성급한 추진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반박했다. 완주 인구가 전주의 1/6에 불과한 상황에서 권한과 재정이 도심에 집중되면 농촌 낙후가 심화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행안부 차원의 공식 여론조사로 민심을 확인하고 반대가 우세하다면 주민투표 절차 없이 논의를 종결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정치적 이해득실에 따라 논의가 왜곡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결국 찬성 측은 ‘역사·미래·성장’을 내세우고 반대 측은 ‘자치·소외·후유증’을 경계하며 선명한 대립 구도를 형성했다.
◆주민 질문에 드러난 불신과 우려
주민 질문이 이어지자 쟁점은 더욱 선명해졌다. 한 주민은 “산업 유치를 통합의 조건처럼 내세우는 것은 협박으로 들릴 수 있다”고 지적하며 상생과 설득의 논리를 먼저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용진읍에서 분할된 외곽 지역이 이미 소외되고 있다는 사례도 제시하며 통합 이후 불균형이 더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해서도 이견이 제기됐다. 금리·인구·정부 정책 등 외부 요인이 더 크게 작용하는 만큼 단순히 통합 효과와 연결 짓는 것은 무리라는 반론이었다. 또 통합 효과를 주민들이 실제 체감하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았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공론화가 추진되는 것에 대해서는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것 아니냐”는 불신이 제기됐다. 청년층과 다양한 계층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뒤따랐다. 과거 여론조사에서 찬성이 높을 때만 주민투표를 진행했던 전례가 다시 언급되며 공정성 논란도 불거졌다. 일부 주민은 전주·완주를 넘어 익산·군산까지 아우르는 광역 메가시티 구상을 내놓으며 논의를 확장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전북도, 갈등 차단 시도
전북도는 잇따른 갈등을 진화하기 위해 설명자료를 배포하며 대응에 나섰다. 도는 교통·생활 인프라 확충, 통합지원금 확보 등 통합의 이익을 강조했다. 특히 통합 추진 과정에서 제기된 ‘세금 폭탄·부채 전가·혐오시설 이전’ 등 이른바 ‘3대 폭탄설’에 대해서는 법적 근거를 들어 조목조목 반박했다.
세금은 특별법상 새로운 부담을 추가할 수 없고 전주시의 부채도 통합 전 각 지역의 세출 비율에 따라 배정된 재원 범위 안에서만 상환된다고 설명했다. 혐오시설 또한 주민 협의 없이는 신설이 불가능하다고 못 박았다. 전북도 관계자는 “사실과 다른 우려가 확산되면서 통합 논의가 왜곡돼선 안 된다”며 주민 불안을 불식시키려는 데 집중했다.
◆행안부 장관까지 나선 6자 회담
정치권도 통합 문제에 직접 뛰어들었다. 국회에서는 행정안전부 장관과 전북지사, 전주시장, 완주군수, 지역 의원들이 함께하는 6자 회담이 열려 향후 절차와 방향을 논의했다.
참석자들은 절차 방식에 대해서는 의견이 달랐지만 주민 불편과 혼란을 조속히 매듭지어야 한다는 데에는 공감했다. 윤호중 행안부 장관은 “세 주체가 행안부 결정에 따르기로 한 만큼 충분히 의견을 반영해 신중히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김관영 전북지사는 “논의의 종착지는 결국 주민의 선택이라는 점을 다시 확인했다”며 주민투표가 가장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방식이라고 강조했다. 이성윤 의원은 “극심한 대립은 이제 끝내야 한다”며 주민투표 실시를 촉구했다. 안호영 의원은 “전북의 미래는 갈등이 아니라 협력으로 열어가야 한다”며 통합이 무산될 경우 특별지방자치단체 논의도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전주·완주 통합 논의는 여전히 답보 상태에 놓여 있지만 ‘주민이 최종 결정권자’라는 원칙은 다시 확인됐다. 역사적 명분과 성장 동력, 자치권 보장과 소외 방지라는 상반된 가치가 충돌하는 가운데 앞으로의 절차는 법적 근거와 충분한 공론화를 거쳐야 한다. 지역사회가 신뢰할 수 있는 방식으로 논의가 진행돼야만 현실적인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통합 논의는 전북의 미래를 좌우할 중대한 분수령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