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문] 뉴질랜드 뉴브라이턴 해변에서 만난 필리핀 사람들, 그리고 세계로 번지는 K-FOOD의 향기
박춘태 한글세계화운동본부 뉴질랜드 본부장
크라이스트처치의 동쪽 끝, 태평양의 바람을 정면으로 맞이하는 뉴브라이턴(New Brighton)해변. 파도 소리와 갈매기의 울음이 교차하는 그곳에서, 며칠 전 필자는 뜻밖의 만남을 경험했다. 세 명의 필리핀 사람들이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어왔다. 서로 웃으며 인사를 나눈 후, 내가 한국 사람이라고 소개하자 그들은 반갑게 “우리는 필리핀에서 왔습니다”라고 답했다. 그 순간, 우리 사이의 거리는 단순한 국적의 차이를 넘어, 음식이라는 공통의 화제로 단숨에 좁혀졌다.
그들이 가장 먼저 꺼낸 말은 의외였다. “한국 음식, 필리핀에서 정말 인기가 많아요. 특히 삼겹살, 비빔밥, 불고기!”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바닷바람 속에서 전해진 그들의 진심 어린 목소리는 마치 고향의 따뜻한 소식을 들려주는 듯했다.
삼겹살, 비빔밥, 불고기. 이 세 가지 음식은 단순한 요리가 아니다. 그것은 한국인의 일상, 정, 그리고 문화를 담고 있는 그릇이다. 삼겹살은 친구와 가족이 함께 둘러앉아 불판 위에서 구워 나누는 공동체의 상징이다. 비빔밥은 다양한 재료가 어우러져 하나의 맛을 이루듯, 서로 다른 개성이 조화를 이루는 한국 사회의 철학을 담고 있다. 불고기는 달콤하고 부드러운 양념 속에 따뜻한 손길과 정성을 머금고 있다.
이 음식들이 이제는 국경을 넘어, 필리핀 사람들의 입맛과 마음까지 사로잡았다. 뉴브라이턴 비치에서 만난 세 사람의 목소리는 단순한 칭찬이 아니라, 문화의 벽을 뛰어넘어 서로를 이해하고 가까워지게 하는 다리였다.
한류의 물결은 처음에 K-Pop과 K-Drama에서 시작되었지만, 이제는 K-Food를 비롯해 한국의 다양한 문화와 상품으로 확산되고 있다. 양념치킨의 바삭하고 달콤한 맛은 세계인의 야식 문화를 바꿔놓았고, 라면은 간편하면서도 깊은 맛으로 ‘한 번 먹으면 잊을 수 없는 음식’이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한국의 가전제품은 뛰어난 기술력과 세련된 디자인으로 전 세계 가정에 들어와 있으며, 자동차는 품질과 신뢰성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입지를 다지고 있다. 그리고 다시 K-Pop은 음악을 넘어 패션과 언어, 라이프스타일까지 세계 청년들의 문화를 주도하고 있다.
뉴브라이턴의 모래사장에서 만난 필리핀 사람들의 입에서 “삼겹살, 비빔밥, 불고기”가 흘러나왔던 것처럼, 세계 곳곳에서 한국의 양념치킨, 라면, 가전제품, 자동차, 그리고 K-Pop은 이미 친숙한 이름이 되어가고 있다. 한때는 낯설고 이국적인 것으로 여겨졌던 한국 문화가 이제는 일상의 일부가 된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열풍의 시작은 여전히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에 있다. 음악이 귀를 사로잡고, 드라마가 눈을 붙잡았다면, 음식은 혀와 배를 채워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식탁에 함께 앉아 나누는 경험은 다른 어떤 문화보다 강렬한 유대감을 만들어낸다.
뉴질랜드의 바닷가에서 필리핀 사람들과 나눈 대화는 짧았지만, 그 안에는 음식이 가진 힘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만약 내가 “한국 사람입니다”라고 소개했을 때 그들이 아무 반응이 없었다면, 우리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행인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입에서 “삼겹살, 비빔밥, 불고기”라는 단어가 흘러나오는 순간, 우리는 같은 문화를 공유하는 사람들로 연결되었다.
지금 세계 곳곳에서 K-food의 인기는 뜨겁다. 뉴욕의 한복판에서도, 동남아시아의 작은 골목에서도, 유럽의 오래된 광장에서도 한국 음식점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것은 단순히 맛있어서가 아니라, 음식에 담긴 ‘정(情)’과 ‘나눔’의 문화가 세계인들의 마음을 두드리기 때문이다.
필리핀에서 삼겹살을 즐기는 모습은 단순히 고기를 굽는 행위가 아니라, 한국 사람들이 친구·가족과 함께 나누었던 따뜻한 순간을 체험하는 것이다. 비빔밥을 먹는 그들의 모습 속에는 다양성을 존중하고 화합을 이루는 가치가 녹아 있다. 불고기를 맛보며 미소 짓는 얼굴은, 부드럽고 달콤한 양념 속에 스며든 한국인의 따뜻한 정서를 그대로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경험은 다시 양념치킨의 바삭함, 라면의 얼큰함, 한국 전자제품의 편리함, 한국 자동차의 안전함, K-Pop의 뜨거운 리듬으로 이어진다. 결국 한국의 문화와 상품들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맞물려 ‘한국이라는 하나의 브랜드’를 만들어가고 있는 셈이다.
뉴브라이턴의 바닷바람은 차가웠지만, 그날 나누었던 대화는 내 마음을 따뜻하게 덥혔다. 음식 하나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나아가 나라와 나라를 연결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K-Food의 인기는 단순한 경제적 성공이나 유행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 그것은 한국인이 오랜 세월 지켜온 ‘밥상 공동체’의 철학이 세계인의 마음속에 스며든 결과다. 그 진리가 이제 전 세계 곳곳에서 공감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날의 만남을 떠올리며 이런 소망을 품었다. 언젠가 뉴브라이턴 비치 근처에도 작은 한국 음식점이 생겨, 필리핀 사람들뿐 아니라 뉴질랜드 사람들, 그리고 전 세계에서 온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삼겹살을 굽고, 비빔밥을 비비며, 불고기를 나눌 수 있기를. 그 자리에서 사람들은 국적을 잊고, 언어의 차이도 잊고, 오직 음식이 전해주는 따뜻한 정서 속에서 웃음 지을 것이다.
음식은 결국 사람을 향한 것이고, 사람은 또다시 사람을 부른다. 한국의 작은 밥상이 태평양을 건너와 새로운 만남을 만들어내듯, K-Food와 더불어 한국의 가전제품, 자동차, K-Pop까지 세계인들의 일상 속에 깊이 스며들고 있다.
뉴브라이턴의 바다 위로 석양이 물들던 그 순간, 나는 확신했다. 한국의 음식과 문화, 그리고 기술은 단순한 소비재가 아니라, 세상을 이어주는 언어이며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가장 따뜻한 예술이라고. 그리고 그 언어를 통해 우리는 더 가까워지고, 더 깊이 연결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