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칼럼] 지방의회 의원, 어떤 기준으로 평가하면 될까
이문성 전 명지전문대 겸임교수/법학박사
필자가 서울시의회 보건복지위원회 전문위원으로 재직하던 시절, 인연을 맺었던 장애인 분야 활동가 윤삼호님의 연락을 최근 받았다. 거의 10년 만의 통화였다.
서울에서 활동하다가 최근 ‘부산 장애인자립생활센터총연합회’로 옮겨 전략기획본부장으로서 활동하고 있다는 소식에 반가움이 앞섰다. 윤 본부장은 과거 서울시의회 연구용역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장애인 인권 보호와 권리 신장에 큰 기여를 한 바 있다. 오랜만에 안부를 서로 주고받던 중, 그는 하나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장애인복지에 기여한 부산광역시의회 의원을 평가해 감사패를 수여하는 행사를 매년 연말 개최해 왔는데, 이번에도 같은 방식으로 진행할 예정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이라 해당 의원들의 관심과 민감도가 어느 때보다 높아진 상황. 어떻게 하면 잡음 없이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을지를 두고 고심 중이라는 내용이었다.
그간 어떤 기준으로 평가했느냐는 질문에, 주로 ‘장애인복지 관련 조례안 제·개정 건수’를 주요 지표로 삼아왔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이 과연 타당한지 의문이 든다는 것이 그의 고민의 핵심이었다.
사실, 지방의회 의원의 의정활동을 평가하는 기준을 세우는 일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지역사회라는 독특한 정치 환경에서 활동하는 그들의 모습은 다양하며, 상당한 경우 비공식적이거나 비가시적인 행위로 드러나기도 하기 때문이다.
기능적으로 볼 때 지방의회는 집행기관, 시민단체, 그리고 지방의회라는 세 축이 얽힌 ‘삼각 구도’ 속에서 움직인다. 집행기관은 시민단체에 보조금과 행정적 지원을 통해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려 하고, 지방의회는 입법권과 예산심의권을 바탕으로 시민단체와 협력관계를 모색한다.
물론 지방의회는 시민단체를 비롯한 여러 이해관계자의 정치적 욕구를 반영하기 위해 집행기관과 대립·갈등하거나 타협·조정해 나간다.
이런 구조 속에서 ‘조례안 제·개정 발의 건수’만으로 의원의 역량이나 기여도를 평가하기란 한계가 뚜렷하다. 실제로 지방의회에 상정되는 조례안의 다수는 집행기관이 주도적으로 제출하는 경우가 많고, 의원들이 발의한 조례안 가운데서도 단순히 문구 몇 줄 수정하거나, 심지어는 집행기관으로부터 초안을 받아 의원 이름만 올리는 방식도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예산이 수반되지 않는 조례는 선언적 의미에 그치기 쉬우며, 실효성을 담보하기도 어렵다. 의회 직원이나 집행기관 공무원이 기획한 조례안에 의원이 서명만 해서 발의한 경우라면, 이를 근거로 평가점수를 부여하는 방식은 합리적이라 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어떤 기준이 타당할까? 첫째, 본회의와 상임위원회에서의 발언 건수와 내용, 특히 행정사무감사에서의 활동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장애인’이라는 단어가 의원의 발언 중 얼마나 자주 등장했는지를 분석하면, 해당 분야에 대한 집중도와 관심도를 보다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다.
둘째,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의 활동이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다. 예산은 집행기관이 편성해 의회에 제출하지만, 의원이 해당 분야 시민단체와 긴밀한 교류를 해왔다면, 예산안에 대한 실질적 논의나 수정 제안이 자연스럽게 뒤따르기 마련이다.
특히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축적한 연도별 의원 예산안 수정발의 자료를 분석하면, 해당 의원이 장애인 관련 예산에 대해 얼마나 많은 실질적인 대안을 제시했는지 손쉽게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가성비 높은 유의미한 평가 기준이 될 수 있다.
셋째, 시민단체와 (공무원을 제외한) 행정사무감사 피감기관, 지방공공기관 임직원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도 효과적인 방법이다. 의원의 정책 지향성, 민원처리 방식, 부당한 영향력 행사 여부, 언행 태도 등을 종합적으로 묻는 방식을 통해 지방의회의 압력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민간단체의 평가를 생생한 시각으로 반영할 수 있다.
지방의회 의원은 고립된 존재가 아니라 공무원, 시민단체, 지역 주민 등과 함께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서 활동한다. 그들의 의정활동을 조례 발의라는 숫자만으로 파악될 수 없다. 오히려 숫자만 쫓다 보면 소극적인 활동이나 존재감 없는 의원이 과대 평가될 우려마저 있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국회뿐만 아니라 지방의회 의원 공천 과정이 하향식 구조, 즉 중앙 권력자 중심의 결정 구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공천권을 휘두르는 정당의 상위 집단에만 눈치를 보는 자들이 국회와 지방의회와 같은 제도권 정치로 계속해서 들어온다면, 저질스러운 자들의 통치에서 벗어나기 힘들 수 있다는 점에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민과 평당원의 지지가 밑바탕을 이루는 상향식 공천 구조를 이루기 위한 정치에 대한 관심과 감시는 우리 시민사회가 보다 나은 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밑바탕이라고 할 수 있다.
정교하고 전문적인 평가 기준을 정립하고 이를 꾸준히 개선해 간다면, 정당의 권력자들도 지금처럼 후안무치한 수준의 공천권을 자의적으로 행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시민단체의 지방의회 의원 의정활동에 대한 평가의 공정성이 곧 정치의 수준을 결정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때다. 부산 장애인자립생활센터총연합회의 노고가 보다 실력 있고 책임 있는 정치인을 선별하는 데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올해 연말, 과연 부산광역시의회에서 장애인 복지 분야 감사패를 받게 될 의원은 누구일까. 그 결과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