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인사이드|전북] “천덕꾸러기 신세”… 상생은 멈추고 불신만 쌓였다
생활권 불편, 통합 필요성 제기
대중교통 개선·지역발전 기대
편입 경험 남김 불신과 상실감
상생·행정 신회 약화 등 지적
“지역 정체성 갖춘 대책 필요”
[천지일보 전북=김동현 기자] 전주·완주 통합 논의는 행정 효율과 발전 논리를 넘어 주민들의 생활 터전과 정체성을 흔드는 쟁점으로 번지고 있다. 완주 주민들 사이에서는 “전주에 편입되면 천덕꾸러기 신세”라는 불신이 팽배하고 “전주가 준비조차 안 됐다”는 냉소가 뒤따른다. 반면 일부 주민들은 버스 불편과 생활권 현실을 이유로 “언젠가는 합쳐야 한다”는 기대를 내놓기도 한다. 생활권은 이미 얽혀 있지만 상생 사업과 행정에 대한 불신이 겹치면서 통합은 행정 문제가 아닌 ‘지역적 불평등 경험’과 ‘정치·행정에 대한 불신’ ‘절차적 불투명성’을 둘러싼 대립으로 비화하고 있다.
◆불신의 뿌리… “천덕꾸러기 될라”
전주 편입 경험은 주민 불신의 뿌리가 됐다. 도로·사업 배치에서 소외를 겪으며 생긴 상실감은 ‘천덕꾸러기 신세’라는 인식으로 자리 잡았다. 김영수(가명, 72, 남, 전주시 금상동)씨는 “완주 용진면에서 살다 전주로 편입된 뒤 변화를 직접 체감했다”고 말했다. 그는 “완주 용진면일 때는 도로 포장 같은 사업도 우리 동네가 일번이었는데 전주로 들어오고 나서는 늘 마지막”이라며 “이젠 천덕꾸러기가 돼 버렸다”고 토로했다.
김씨는 이러한 경험이 다른 완주 주민들의 정서에도 영향을 끼쳤다고 설명했다. 그는 “인근 완주 주민들도 다 똑같이 본다”며 “전주로 가면 결국 천덕꾸러기 된다는 걸 아는데 합병을 왜 하겠느냐. 적극 반대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생활권 현실과 ‘찬성’ 논리
노년층 주민은 장기적 필요성에 공감하는 목소리를 냈고 일부 주민은 대중교통 문제를 이유로 통합을 지지했다. 최순자(가명, 85, 여, 완주군 이서면)씨는 “합쳐야 뭉쳐야 산다”며 통합 필요성을 언급했다. 그는 “젊은 사람들은 여러 의견을 내지만 우리는 나이 들어서 잘 모른다. 전주에서도 찌라시 같은 걸 우체통에 넣고 합쳐야 한다고 홍보하더라”며 “좋게 될 거라면 얼른 합쳐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정희(가명, 52, 여, 완주군 이서면)씨는 교통 문제를 핵심 이유로 꼽았다. 그는 “버스가 두 시간 간격으로 다닌다. 차가 없으면 반나절을 정류장에서 보낸다”며 “적어도 전주대까지만 직행이 되면 생활이 훨씬 편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서에서는 찬성이 꽤 있지만 봉동은 반대가 심하다”며 “군의원들이 세뇌시킨다는 말까지 나온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함승호(가명, 55, 남, 완주군 이서면)씨는 “지역 발전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그는 “통합 찬반이 문제가 아니라 지역 발전이 먼저다. 유리한 것을 택해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함씨는 “찬성하는 사람들은 개인 의견에 머물고 반대 단체는 조직적으로 움직인다”며 여론의 비대칭을 지적했다. 또 그는 “완주 농산물은 전주에서 소비되고 완주공단 근로자도 전주 사람”이라며 “혁신도시만 봐도 어디가 전주고 어디가 완주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주민들 역시 생활권을 구분하지 않는다. 이것이 통합의 사례”라고 말했다. 이어 “도지사를 쫓아내거나 시장에게 물세례를 퍼붓는 식의 과격한 충돌은 득이 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준비 부족과 상생 불신
변두리 주민들의 체감은 ‘준비 부족’과 ‘상생 불신’으로 나타났다. 초기에는 통합에 찬성했지만 상생 사업의 지연과 행정의 변화는 여론을 반대로 기울게 만들었다. 정상훈(가명, 58, 남, 완주군 상관면)씨는 “예전에는 ‘차라리 전주로 가자’는 말도 나왔고 나도 초반에는 찬성이었다”며 “그러나 전주가 준비가 안 됐다는 걸 보고 지금은 반대로 돌아섰다”고 말했다.
정씨는 상생 협약의 실행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생 1호라고 했던 상관 저수지 사업이 발표된 지 3년이 지나도 전주가 분담금을 제때 내지 않아 사업이 제자리였다”며 “105개 상생 사업이라 해도 삼례·이서·용진에 공약이 몰리고 상관·구이 같은 변두리는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또 공무원의 태도 변화를 여론 급변의 계기로 꼽았다. 그는 “처음엔 공무원들도 중립이었는데 나중에는 반대로 돌아섰다”며 “공무원 노조가 움직이자 이장협의회·부녀회 같은 단체가 따라가면서 분위기가 급격히 기울었다”고 전했다.
◆정치 불신과 절차 요구
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절차적 요구는 통합 논의 전반에 드리운 공통 과제였다. 주민들은 정치적 유불리 계산을 비판하며 투명한 정보 공개와 주민 의견 수렴 절차를 요구했다.
박종혁(가명, 54, 남, 완주군)씨는 “2013년 주민투표 당시에는 찬성이었지만 지금은 정치 불신 때문에 반대한다”며 “정치인들이 유불리만 따지고 주민 설득은 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는 “통합 장단점을 도표로 공개하고 설명해야 한다”며 “도·시·군과 시민대표, 학계가 참여하는 통합위원회를 만들어 합의를 이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씨는 풀뿌리 설득의 필요성도 지적했다. 그는 “이장협의회·여성단체·노조 같은 지역 조직을 설득하지 못하면 통합은 어렵다”며 “진정성 있는 리더가 나와 장단점을 정확히 설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병수(가명, 82, 남, 완주군 용진면)씨는 “이러쿵저러쿵 말만 하지 말고 주민투표로 끝내야 한다”며 절차적 결정을 촉구했다. 그는 “통합을 하더라도 약속을 지키는 게 첫째다. 편파로 하면 불만만 쌓인다”고 말했다.
이효정(가명, 40, 여, 완주군 용진면)씨는 고향이 전주이지만 수도권 생활을 마치고 완주에 정착했다. 그는 “전주는 겨울철 제설 작업이 충격적일 만큼 미흡했다. 예산이 부족해 제설차를 부를 수 없다는 답을 들었지만 완주는 체계가 잘 돼 불편이 없었다”며 두 지역의 차이를 설명했다. 또 “전주는 코로나 때 외에는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했지만 완주는 민생지원금이 지급됐다”며 “실제로 완주에 집을 얻으려는 전주 사람들이 많다. 복지와 지원이 잘 갖춰져 있기 때문”이라고 부연했다. 다만 그는 “완주 지원금은 사용처가 제한돼 불편했다”며 제도적 보완 필요성도 덧붙였다.
지역 여론 구조에 대해서도 설명을 이어갔다. 그는 “완주에는 토박이 유지들이 많아 기득권을 지키려는 분위기가 있다. 통합되면 자리를 잃을까 두려워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통합 문제를 고민 중이다. 양쪽 모두 주민들에게 통합의 득실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며 “지금은 완주 주민들의 반대 입장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이지만 전주 행정이 달라진다면 찬성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결국 통합 논의의 성패는 주민 감정을 해소하고 지역 정체성을 존중하는 대책 마련에 달려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민들이 호소하는 ‘지역적 불평등 경험’과 ‘행정 신뢰 부족’을 해소하지 않는 한 단순한 투표 일정이나 법적 절차만으로는 갈등을 풀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상생 사업의 신뢰 회복, 생활 기반의 실질적 보장, 정치권의 책임 있는 태도가 선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