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만국회의 11주년] IWPG·여성지도자들 “여성 리더십이 평화 만든다”
2025 세계여성평화 콘퍼런스 영부인·장관·단체장 등 여성리더 44개국 800여명, 세계 평화 논의 ‘분쟁 지역’ 여성 정치인 발제 “여성의 리더십 ‘정의·포용·화해’”
[천지일보=홍보영 기자] 갈등과 분쟁으로 고통받는 지구촌에 여성들의 연대와 리더십이 평화의 해법으로 제시됐다.
㈔세계여성평화그룹(IWPG, 대표 전나영)이 주최한 ‘2025 세계여성평화 콘퍼런스’가 19일 충북 청주 엔포드호텔에서 열렸다.
‘갈등을 넘어: 희망과 회복을 향한 여성의 평화 리더십’이라는 주제 아래 44개국 800여명의 평화 가족들이 참석한 이번 콘퍼런스는 여성 리더들의 목소리를 통해 평화의 실현과 지속가능성을 모색하는 뜻 깊은 자리였다.
특히 말리 전 여성·아동·가족진흥부 장관, 리비아 국회의원 등 현재 분쟁 중이거나 분쟁을 겪은 지역의 핵심 여성 정치인들이 대거 참석해 주목을 끌었다.
전나영 IWPG 대표는 개회사에서 “지구촌을 아프게 하는 수많은 고통과 분쟁 속에서도 IWPG는 평화의 행보를 멈추지 않았다”며 “여성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평화를 이루는 리더가 돼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고 크고 작은 평화의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러한 변화들이 모여 국제사회의 지속가능한 평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우리는 ‘지구촌 전쟁종식 평화 선언문(DPCW)’을 통한 평화의 제도화를 촉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앤티가바부다의 산드라 윌리엄스 영부인은 “여성은 언제나 갈등의 한가운데 있으면서도 회복의 중심에 서 있다”며 “여성의 적극적인 참여 없이는 평화가 이뤄질 수도, 지속될 수도 없다는 사실을 오늘 이 자리가 증명한다”고 축사를 보냈다.
글로리아 앤 토머스 그레나다 사회·공동체개발·주택성평등부 장관은 “여성은 희망, 회복, 그리고 화해의 필수적인 힘으로서 부상하고 있다”며 “평화 구축에서의 여성 리더십은 체계적으로 제도화되고 세계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아 오렐라나 과렐로 칠레 여성 및 성평등부 장관은 칠레 정부의 여성·평화·안보 국가행동계획을 소개하며 “여성이 배제된 평화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아이샤 알 마흐디 샬라비 리비아 국회의원은 통합정부 여성부 장관의 기조연설을 대독했다. 그는 “평화는 용기와 끈기, 그리고 새로운 형태의 리더십을 요구하며 여성들이야말로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서 고유하고도 강력한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존재”라고 강조했다. 이어 “평화란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정의와 존엄, 기회가 존재하는 상태이며, 여성의 리더십은 갈등의 악순환을 희망의 길로 바꾸는 열쇠”라고 말했다.
◆여성 리더십이 이끄는 평화의 길
첫 번째 세션에서는 ‘회복을 향한 전환점 여성의 평화 리더십’을 주제로 다양한 발제가 이어졌다. 말리 과도정부 여성아동가족 진흥부 전(前) 장관 빈투 푸네 사마케는 2012년부터 다차원적 위기를 겪는 조국 말리의 상황을 소개하며 평화 협상 테이블에서 여성의 자리가 없었던 현실을 지적했다.
그는 “위기 상황 속에서 말리 여성들은 탁월한 회복력과 저력을 보여줬다”고 강조했다. 특히 WILDAF 말리가 ‘평화의 원(Peace Circle)’ 프로그램을 통해 3500명 이상의 여성을 교육하고 ‘평화의 장인’으로 성장시키는 데 기여했다고 설명했다.
사마케 전 장관은 국제 평화 메커니즘의 한계를 꼬집으며, DPCW를 널리 확산하고 갈등 관리 및 평화 구축에 있어 여성의 기여를 높이 평가해 고위급 중재 과정과 연계할 것을 촉구했다.
킴 심플리스 배로 벨리즈 전 영부인은 “여성이 함께 리더십을 발휘할 때 우리는 인식을 넘어 정책을 움직이고 문화를 바꾸며 희망을 심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성폭행 피해를 겪은 한 소녀를 위해 법 개정을 추진하고, 불의에 맞서기 위한 2만명의 여성 행진을 기획했던 사례를 소개했다.
이어 “고통을 정책으로 바꾸는 것이 바로 리더십”이라고 정의하며, 여성의 리더십은 편안한 길이 아닌 저항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불 속으로 들어가는 용기라고 말했다. 또한 “여성이 힘을 가질 때 사회는 강해지고, 여성이 리드할 때 정의가 가능해지며, 여성이 연합할 때 평화는 지속된다”고 강조했다.
암리타 카푸어 여성국제평화자유연맹(WILPF) 사무총장은 영상 발제를 통해 ‘유엔 안보리 결의 1325호’ 채택 이후 여성·평화·안보(WPS) 아젠다가 확산됐음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는 여전히 깊은 간극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여성의 참여에 대해 “형식적이고 상징적인 수준에 머물러 실질적 영향력이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카푸어 사무총장은 “WPS 아젠다는 군사화된 안보가 아니라 군축·정의·평등·권리에 기반한 페미니스트적 평화로 나아가야 한다”며 WILPF의 ‘예산을 전환하라(Move the Money)’ 캠페인을 소개하고 “전쟁에 자원을 쓰는 대신 평화를 세워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여성이 리더십을 발휘할 때 위기는 지속가능한 평화를 가능케 하는 기회로 바뀔 수 있다”며 여성 리더십이 평화의 근본적 기반임을 증명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현장에서 증명된 여성 주도 평화 모델
이어진 세션에서는 현장에서 여성들이 공동체를 변화시킨 구체적인 사례들이 소개됐다. 마리아 테레사 로요 팀볼 필리핀 다바오 델 노르테 카팔롱 부시장은 “평화로 가는 길은 합의로 끝나지 않고 거기서부터 시작된다”며 민다나오 지역을 갈등의 땅에서 평화의 터전으로 바꾼 경험을 공유했다.
그는 “여성이 힘을 얻으면 평화는 가능해지고 여성이 함께 서면 평화는 흔들리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부조 락슈미 몽골 환경기후변화부 성평등 자문관은 여성의 리더십이 평화 협정의 지속력을 향상시키고 공동체를 강화시킨다며 “평화, 성 평등, 기후 변화는 서로 맞물려 삼각형을 형성한다”고 설명했다.
루스 알메다 리차드슨 국제자유주의여성네트워크(INLW) 사무총장은 기후 위기와 물 문제 등 글로벌 이슈에서 여성의 참여와 리더십이 어떻게 지속가능하고 포용적인 정책을 만드는지 분석했다.
◆평화의 제도화와 여성의 역할
마지막 세션에서는 평화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제도화와 교육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맘푸라네 캐론 크고모 남아프리카공화국 국제관계협력부 성별다양성관리부 부국장은 “평화의 제도화는 단기적인 프로젝트가 아닌 법을 통해 평화 노력을 보호하고 사회의 근간으로 만드는 것”이라며 DPCW를 중심으로 여성의 참여가 평화 법제화 과정에서 핵심 주체로 기능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
IWPG 평화위원장인 이해령 탈북민 희망클럽 재무이사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우리 모든 여성들이 하나가 돼 DPCW 10조38항을 실천하는 것이 지속가능한 평화의 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한의 평화 방향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함께 통일에 대한 문제의식을 끊임없이 제기하고 실질적인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우리 모두 행동하는 여성으로서 평화의 역사에 동참해 가정과 사회, 그리고 지역 커뮤니티에서부터 공감과 포용의 리더십을 발휘하며 강력하게 연대하자”고 덧붙였다.
시몬 양키 우아타라 아프리카연합 국제 소녀 및 여성 교육센터 (AU CIEFFA) 코디네이터는 “여성과 여아 교육은 갈등 해결과 평화 구축에 필수적”이라며 “교육은 여성들이 사회·경제·문화·정치 전반에 평등하게 참여할 수 있게 하며, 평화 중재자와 협상가로서의 역할도 가능하게 한다”고 했다. 이어 여성의 거버넌스 참여 확대와 성인지적 교육 체계를 우선적으로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평화 교육에 대한 민관 협력 투자가 필요하다”며 “지속 가능한 평화는 지속 가능한 교육, 특히 여아 교육에 대한 투자가 있어야만 가능하다”고 언급해 제도화와 지원의 필요성을 제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