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인사이드|전북] 한 생활권, 엇갈린 제도… 지원 격차가 키운 통합 갈등
도로 경계 따라 달라진 지원금
군청 방문 시 반나절이나 소요
조사 결과 통합 반대 여론 커
공론장 부재로 갈등이 더 격화
상생사업 지연에 신뢰 무너져
[천지일보 전북=김동현 기자] 전주와 완주 통합 논의가 주민 생활 현장에서 갈등으로 드러나고 있다. 완주는 출산축하금과 민생지원금 등 각종 지원이 있지만 전주는 체감할 만한 혜택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불과 몇 걸음 떨어진 아파트 단지에서 지원금 지급 여부가 갈리고 소비쿠폰 사용처도 달라 주민들은 혼란을 겪는다. 완주군 행정 중심지와 동떨어진 상관면 주민들은 군청 민원을 보려면 반나절을 소비해야 하고 보건소는 예약제로 운영되며 일부 약품이 없어 전주 병원으로 향하는 경우가 잦다. 상인들은 소비쿠폰 덕분에 장사가 유지되지만 통합되면 혜택이 줄어들 것을 우려한다. 제도와 생활의 격차가 그대로 노출되면서 통합은 ‘더 큰 발전’이냐 ‘기존 혜택 축소’냐를 두고 주민사회의 갈등을 키우고 있다.
◆같은 생활권 도로 사이로 갈린 지원
주민 불만의 핵심은 지원 격차다. 같은 생활권임에도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발생하는 출산·양육과 민생지원금 혜택 차이는 통합 반대 논리로 이어지고 있다. 전주시는 첫째 30만원, 둘째 50만원, 셋째 이상 100만원을 출생축하금으로 지급하지만 완주군은 첫째 200만원, 둘째 300만원, 셋째 이상 600만원을 출산장려금으로 지원한다. 또 군은 올해 1월 설 명절을 앞두고 군민 1인당 30만원의 민생안정지원금을 지급했다.
전북 전주완주 혁신도시는 하나의 생활권을 이루고 있지만 도로를 경계로 완주와 전주가 나뉘어 있어 주민들은 지원 격차를 피부로 느끼고 있다. 이곳에서 옷가게를 운영하는 권수미(가명, 48, 여)씨는 최근 민생지원 소비쿠폰 지급으로 생활에 도움이 됐다고 했다. 권씨는 “지난번 설에 완주는 30만원씩 민생지원금이 나왔는데 전주는 그런 게 전혀 없었다”며 “완주 이서면 사람들은 지원받을 금액도 지원 못 받게 되고 본인들이 누려야 될 것들을 못 누리게 된다고 통합을 싫어한다”고 말했다. 이어 “8월은 옷가게 비수기이지만 옷을 구매하기 위해 찾아온 완주지역 손님들 덕분에 가게를 유지할 수 있었다”며 “전주 사람이지만 통합에 반대한다”고 덧붙였다.
세탁소를 운영하는 김은주(가명, 40)씨는 “지난번에 완주에서는 돈이 나오고 전주에서는 돈이 안 나왔는데 이쪽 아파트는 지원금이 나오고 저쪽은 안 나왔다”며 “불과 몇 걸음 차이인데도 돈을 못 받으니 아파트 주민들이 울분을 토했다”고 설명했다. 또 “출생장려금 같은 경우에도 완전히 다르다 보니 아기 엄마들이 금액 차이가 많이 난다고 말을 한다”며 “집값이 비슷해서 이사왔다가 완주 쪽으로 이사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부연했다.
완주 봉동에 거주하는 주민도 같은 맥락에서 불만을 드러냈다. 그는 “처음에 전주에서 봉동으로 이사 온 젊은 엄마들은 대부분 통합이 되면 전주시 봉동읍이 돼 아파트값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에 통합을 찬성했다”며 “하지만 완주군에서 제공된 복지 혜택이 전주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걸 알고 다 돌아섰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발전 긍정… 찬반 위주 지역 감정 키워
지원 격차 못지않게 생활 현장에서 체감하는 불편도 통합 논란을 키우고 있다. 완주군 산서면에 거주하는 김필순(73)씨는 “군청을 가려면 버스를 갈아타고 반나절은 잡아야 한다”며 “보건소도 예약제로 운영돼 차라리 전주 병원을 찾는다”고 말했다. 그는 “큰 도시에 편입되면 발전이 있을 것 같아 통합을 긍정적으로 보지만 땅을 소유했거나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반대가 많다”며 세대·계층별로 엇갈린 민심을 전했다.
혁신도시 주민들 역시 경계에 놓인 생활권 특수성을 지적한다. 전주시 호반 아파트에 거주하는 조치흥(41, 남, 전주시 덕진구)씨는 “혁신도시에 6년째 살고 있었지만 최근에 집에서 가까운 편의점은 완주 쓰레기봉투만 팔고 다른 곳에서는 전주 쓰레기봉투만 파는 것을 보고 여기가 전주와 완주로 구획이 나뉘는 걸 알게 됐다”며 “쓰레기봉투 판매가 달라서 불편했던 적은 있었지만 작은 규모도 아니고 이미 같은 생활 문화권에 산 지 오래됐고 생활 전반에서 큰 차별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처럼 찬반만 묻는 방식이라면 지역 감정만 키울 수 있다”며 “통합을 논의하려면 장단점을 명확히 알리고 토론을 거쳐야 한다”고 덧붙였다.
◆갈라진 민심… 신뢰 확보 우선
지난달 1~2일 실시된 데일리리서치(완주신문 의뢰) 조사에 따르면 완주군민의 71.0%가 통합에 ‘반대’한다고 응답했으며 찬성은 25.9%에 그쳤다. 찬성 이유로는 지역 발전(73.7%)이 가장 많았고 반대 이유로는 복지혜택 감소(26.8%)와 혐오시설 이전(21.2%)이 꼽혔다. 찬성과 반대가 뚜렷이 갈리는 가운데 유보적 입장도 적지 않다.
전북 전주완주 혁신도시 아파트에 사는 한 주민은 “찬반 단체가 각자 주장만 내세우고 있어 객관적인 정보가 부족하다”며 “주민들이 차분히 논의할 수 있는 공론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광역화가 장기적으로는 필요할 수 있지만 주민 입장에서는 당장의 불이익이 우려된다”며 “정치권이 감정 대립을 부추기지 말고 합리적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노년층을 중심으로는 ‘발전’을 이유로 한 찬성 여론도 적지 않다. 전주에 거주하는 한 노부부는 “세금이 얼마나 된다고 통합을 안 하느냐”며 “통합되면 집값도 오르고 혜택이 늘어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전주가 빚이 많아 현실성이 떨어진다”며 “결국 완주를 설득하지 못하면 불가능하다”고 지적해 가족 내에서도 시각이 갈렸다.
현장에서 드러난 불만과 기대는 결국 정치적 해법을 요구한다. 상관면에서 카센터를 운영하는 주민자치위원장은 “전주가 상생사업 약속조차 제때 이행하지 않아 신뢰가 무너졌다”며 “준비 없는 통합 추진은 주민들의 반발을 키울 뿐”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통합이 무산되더라도 그다음 날부터 상생사업을 다시 가동해 신뢰를 쌓아야 한다. 그래야만 장기적으로 통합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통합 논의 과정에서 주민들은 기대보다 불안과 불신을 먼저 호소하고 있다. 갈등의 중심에는 지원 격차와 생활 불편, 신뢰 확보가 자리하고 있다. 통합 여부를 떠나 주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 상생 방안이 먼저 제시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