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인사이드ㅣ전북] 6200억 빚 뇌관… 불신 속에 흔들리는 통합
전주시 부채 부담 논란 확산
완주 주민 “혜택보다 손실 커”
전주 브랜드 효과 엇갈린 시선
“자리 보전 급급, 진정성 없어”
[천지일보 전북=김동현 기자] 전주시의 6200억원 채무가 전주–완주 통합의 뇌관이 되고 있다. 완주 주민들은 세금 부담과 혜택 축소, 생활권 소외 우려를 나타내며 “빚을 떠안을 수 없다”고 반발한다. 전북도와 전주시는 상생 방안과 인센티브를 내세우지만 주민 불신의 벽은 여전히 높다.
김관영 전북지사와 정동영·이성윤 국회의원, 우범기 전주시장은 지난 7월 합동 기자회견을 열고 전주·완주 통합 찬성 단체들이 제안한 105개 상생방안을 통합시 설치법에 명문화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전북도는 지난 2월 도의회와 함께 ‘통합시군 상생발전 조례’를 제정해 시·군 간 세출 예산 비율을 12년간 유지하고 교육·복지·농업 예산은 확대하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
그러나 현장의 공기는 냉랭하다. 주민들은 “실제로 지켜질지 의문”이라며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6200억 채무… “빚 왜 떠안나”
전주–완주 통합 논란의 중심에는 전주시 채무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2024년까지 발행된 전주시의 지방채는 4600여억원이며 여기에 발행 예정분 1600억원을 합하면 총 6200억원에 이른다. 반면 같은 시기 완주군의 채무 규모는 332억원에 불과하다.
우범기 전주시장은 민선 8기 3주년 기자회견에서 시 재정 상태와 관련해 “발행한 지방채의 절반은 도시 공원과 도로 부지를 매입한 비용이다. 쓰고 없어지는 부채가 아닌 전주의 자산이 늘어나는 부채”라며 “5~10년을 내다보는 시각에서 보면 우려해야 될 문제는 아니다”고 밝혔다.
그러나 주민들 사이에서는 “전주의 빚을 완주가 왜 져야 하냐”는 목소리가 높다. 택시기사 김창섭(가명, 50대)씨는 “봉동 일대는 90% 가까이가 반대한다”며 “통합되면 세금 부담은 늘고 혜택은 줄어들 것이라는 불안이 크다. 전주는 필요할지 몰라도 완주는 굳이 통합할 이유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혜택 감소와 지역 소외 우려
통합 반대 논리의 또 다른 축은 혜택 감소와 지역 소외 우려다. 전주시 지방재정공시에 따르면 올해 회계별 예산 규모는 2조 8037억원(일반회계 2억 4489억원)으로 분야별 세출현황(일반회계)은 사회복지 1조 988억원(44.87%), 농림해양수산 754억원(3.08%), 산업·중소기업 및 에너지 674억원(2.75%) 등을 차지했다. 반면 완주군의 예산 규모는 1조 74억원(일반회계 8499억원)이다. 사회복지 2535억원(29.8%), 농림해양수산 1219억워(14.3%), 산업·중소기업 및 에너지 307억원(3.6%) 등으로 농촌 지원과 산업 기반 지출 비중이 상대적으로 크다.
식당을 운영하는 박휘수(가명, 60대)씨는 “찬성한다는 소리는 거의 들어본 적이 없다”며 “외진 곳에 사는 주민들은 통합되면 더 소외될 것이라는 걱정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산단 근로자들은 대부분 외지인이라 주말이면 빠져나가고 지역 상권 효과도 크지 않다”고 덧붙였다.
익명을 요구한 한 주민은 “대의적 차원에서는 통합이 필요하지만 실제 주민 정서는 강한 반대”라며 “현대차 세수와 각종 혜택을 전주와 나눠야 하는 것에 민감하다”고 말했다. 그는 “통합 찬성 의견을 내면 ‘지역 이익을 해친다’는 낙인이 찍히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전주’ 브랜드 효과?
김관영 전북지사는 지난 7월 민선 8기 3주년 기자회견에서 “미완의 과제 전주·완주 통합을 풀어나가겠다”며 “두 지역이 하나로 통합되면 전주는 세계적인 도시로 도약하고 완주는 도시 브랜드와 인프라를 함께 누릴 것”이라고 말했다. 도시 브랜드와 관련해 도 관계자는 “완주에 입지한 기업들 가운데 ‘전주공장’ 명칭을 쓰는 곳이 많고 앞으로 들어올 기업들도 전주 명칭 사용을 고민하고 있다”며 “기업 유치에 긍정적인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완주 봉동읍에 자리한 현대자동차 전주공장, LS엠트론 전주사업장, KCC 전주1·3공장 등은 행정구역상 완주군에 있으면서도 ‘전주’ 명칭을 사용한다.
그러나 주민 체감은 다르다. 권혁진(가명, 20대)씨는 “KCC 같은 대기업은 어디서든 이름이 알려져 있어 ‘전주공장’이라고 해도 차이가 없다”며 “오히려 전주가 이득을 보는 구조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김인철(가명, 60대)씨도 “대기업일수록 ‘전주공장’ 명칭을 선호하지만 주민들은 크게 개의치 않는다”며 “기업이 브랜드를 활용해도 결국 지역에 남는 건 혐오시설과 부담이라는 인식이 많다”고 말했다.
◆주민 불신, 신뢰 없는 통합 논의
정치권에 대한 불신은 주민 인터뷰에서도 뚜렷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주민은 “통합이 필요하지만 실제 생활 속 이익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지도자들이 명분만 내세우고 자기 자리 보전에 급급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김인철(가명, 60대)씨 역시 “통합은 전라북도 전체 발전을 위한 길일 수 있지만 주민들이 믿을 수 있는 설명과 책임 있는 태도가 전제되지 않는 한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며 “정치인의 진정성이 주민들에게 확인되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은 최근 완주를 방문해 “주민투표는 찬·반 양측이 절차적으로 합의해야 가능하다”며 “6자 회담 역시 합의 여지가 있다면 열 수 있다”고 밝혔다.
도 관계자는 “6자 회담을 모두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며 “일정 문제로 현재 조율 중”이라고 말했다.
전주·완주 통합 논의는 ‘대의와 현실의 충돌’로 요약된다. 행정과 정치권은 지역 발전, 기업 유치, 국가 경쟁력을 내세워 통합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주민들은 세금, 혜택, 생활권, 혐오시설 문제로 반대한다.
“미완의 과제를 풀겠다”는 도지사의 의지와 “채무는 자산 투자”라는 전주시장의 설명이 현장에서 설득력을 얻지 못하는 이유는 생활 속 체감의 괴리 때문이다. 신뢰 없는 상생은 공허한 약속에 불과하다. 통합 논의가 진전되려면 정치권과 행정은 먼저 주민 신뢰부터 회복해야 한다. 그 과정 없이 대의만 내세운 통합은 또다시 갈등만 키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