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창] 트럼프-푸틴 회담과 우크라이나 전쟁의 미래

2025-09-10     이솜 기자
편집자 주

우크라이나 전쟁은 단순한 전장의 충돌을 넘어 국제질서의 향방을 가늠하는 시험대가 되고 있다. 지난달 알래스카에서 열린 미·러 정상회담은 휴전의 가능성을 열었다는 기대와 동시에 그 한계를 드러냈다.

필리핀 아테네오 데 다바오 대학 철학과 부교수 크리스토퍼 라이언 마볼록은 ‘위대한 인물’의 결단이 역사를 바꾼다는 시각과 시대적 조건이 인물을 만든다는 논쟁을 통해 오늘의 전쟁을 비춘다.

동시에 푸틴의 계산, 젤렌스키의 고뇌, 트럼프의 구상은 결국 평범한 이들의 희생 위에 놓여 있다는 점이 강조된다. 그는 국제정치 석학 존 미어샤이머의 분석을 통해 나토 확장과 대리전이라는 구조적 요인도 짚어낸다. 더불어 칼럼은 전쟁의 해법이 미·러 정상 간의 거래가 아니라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마주해야 할 현실임을 일깨운다.

 

크리스토퍼 라이언 마볼록 필리핀 아테네오 데 다바오 대학 철학과 부교수. ⓒ천지일보

알래스카에서 미·러 정상 전쟁 논의

우크라 동부 영토 가지려는 푸틴

젤렌스키, 영토 양보 거부하며 방어

 

푸틴, 칼라일의 ‘위대한 인물’ 인식

시대와 환경의 역할 크다는 반박도

 

‘세계 경찰’ 美, 사실은 전쟁 가담해

종전은 우크라·러가 직접 합의해야

도널드 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지난달 15일 알래스카 앵커리지에서 만나 우크라이나 전쟁을 논의했다. 앞서 트럼프는 이번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에 대해 “아직 아무것도 확정된 것은 없다(Nothing is set in stone)”라며 확답을 피했다. 무엇을 성공으로 보겠느냐는 질문에 그는 확실한 것은 없으며 유럽이 자신에게 지시할 수 없다고 답했다.

트럼프는 휴전을 원한다고 밝히며 러시아가 2022년 이웃 국가를 침공한 이후 수많은 인명이 희생됐다고 지적했다. ABC뉴스에 따르면 푸틴은 도네츠크와 자포리자 나머지 지역 그리고 광물과 농업 자원이 풍부한 산업 중심지인 돈바스 전체를 원한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해당 영토를 단 한 치도 양보할 생각이 없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연설에서 어떤 것도 기대하기는 이르다고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트럼프는 단지 살육을 끝내고 싶다고 말하면서 미국이 지금까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나토) 군에 장비와 자원을 제공하는 데 3500억 달러를 지출했다고 언급했다. 현재 우크라이나 영토의 약 20%가 러시아의 통제 하에 있으며 여기에 루한스크도 포함된다. 푸틴은 루한스크가 필요하다고 보는데 이는 나토가 동쪽으로 확장하려 할 경우 존재적 위협으로부터 자국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완충지대라고 보기 때문이다.

역사학자 토머스 칼라일은 “역사는 위대한 인물들의 천재성이 만들어낸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생각은 ‘재능은 타고난 것’ 혹은 ‘일부 개인이 위대함을 위해 운명지어졌다’는 가정에 기반한다. 푸틴도 그런 방식으로 생각한다. 러시아는 진격했고 푸틴은 자신의 국민을 지키기 위해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는 결정을 옹호한다. 우크라이나는 어떤 땅도 내주려 하지 않으며 국민은 영토를 지키기 위해 혹독한 희생을 치르고 있다.

ABC뉴스에 따르면 양측의 사상자는 100만명 이상이며 20만명이 사망했다. 이는 결국 우크라이나 영토의 20%를 위한 희생이다. 이는 제1차 세계대전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젊은이 수백만명이 단 한 치의 땅을 두고 참호 속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이번 정상회담은 다른 의미를 숨기고 있다. 외형과 수사학 너머 중요한 것은 결국 전쟁의 제단 위에서 모든 희생을 감내하는 것은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영국 철학자 허버트 스펜서는 칼라일을 비판하며 “위대한 사람들은 역사적 상황이나 그들을 둘러싼 환경의 산물”이라고 반박했다.

칼라일은 “위대한 사람들이 그들의 특수한 자질이나 속성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고무시켜 절대적인 영향력으로 사회에서 특정 목표를 이루게 한다”고 봤고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 역시 이를 지지했다. 위대한 사람은 사회 변화나 진화의 결정적 요인이라는 것이다. 아마 트럼프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그는 24시간 안에 전쟁을 끝내겠다고 했으나 실패했다.

사실 트럼프는 이미 회담 성과가 미미하다고 인정했다. 그는 푸틴과 젤렌스키가 모두 참석하는 두 번째 회담이 필요하다고 말했으며 폭스뉴스 진행자 션 해니티와의 인터뷰에서 “합의가 있기 전까지는 합의가 없는 것”이라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8월 15일 미국 알래스카 앵커리지의 엘멘도프-리처드슨 합동기지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위한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악수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푸틴은 아직 휴전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트럼프는 낙관적인 듯 보이려 했다. 그는 푸틴과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나토와 젤렌스키에게 푸틴의 요구를 알리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많은 점에 합의했다”고 주장하며 “결국은 젤렌스키 대통령이 일을 성사시킬 차례”라고 덧붙였다. 현대 국제정치학계의 석학 존 미어샤이머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서방의 잘못이라고 잘 알려진 주장을 했다. 트럼프는 전쟁을 끝내고 싶어하지만 미어샤이머는 트럼프와 푸틴의 만남이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했으며 성과를 낼 수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미어샤이머에 따르면 그 이유는 우크라이나가 영토를 포기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나토 회원국이 될 수 없는 중립국이 되기를 원한다.

미어샤이머는 이를 대리전이라고 지적한다. 트럼프는 양보할 수 있겠지만 우크라이나는 푸틴이 원하는 것을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하다. 사실 미국은 여전히 세계를 통제할 수 있다고 믿고 있으며 이번 경우에는 전쟁을 끝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실제로는 나토와 우크라이나에 무기와 탄약을 공급하면서 전쟁의 주요 당사자가 됐다.

러시아는 나토 확장을 위협으로 보고 있다. 푸틴과 트럼프가 카메라 앞에서는 서로 존경을 표하지만 양국과 양국 국민은 그렇지 않다. 이 경우 우크라이나는 미국이 러시아 제국의 영광 부활을 저지하기 위한 무대에 불과하다.

미국의 십자군식 접근법은 잘못됐다. 미어샤이머에게 이 전쟁의 원인은 나토 확장이다. 트럼프가 추진하는 휴전 합의는 나토가 어떤 안보 보장에도 동의하지 않기 때문에 실현 불가능하다. 사실 트럼프는 유럽이 지금까지 나토를 통해 미국이 제공한 방위에 대해 비용을 지불하기를 원했다.

이 전쟁이 어떻게 끝날지 이해하려면 쟁점들을 해결해야 한다. 합의는 미국과 러시아, 혹은 트럼프와 푸틴 사이가 아니라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맺어야 한다. 그러나 트럼프는 젤렌스키가 합의를 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그렇다면 쟁점은 무엇인가? 우크라이나는 휴전과 안보 보장을 원한다. 그러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권리에 간섭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또한 휴전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러시아에 대한 제재도 원한다.

ABC뉴스에 따르면 전쟁 초기에 우크라이나인의 4분의 3이 끝까지 싸우기를 원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 비율은 줄어들었다. 의지는 여전히 있지만 미어샤이머는 우크라이나가 이 전쟁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본다. 그는 우크라이나 엘리트들이 서방이 계속 지원할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에 매달려 있다고 주장하며 역사적 증거는 전쟁이 끝나지 않으면 국가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을 보여줄 뿐이라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