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인사이드ㅣ전북] 통합 논의, 지도자 리더십 시험대… 주민 신뢰는 회의적
복지 축소·재정 부담 우려 여전
상권 기대와 지역 불안 교차
상생안에도 주민 불신 가시화
정치권 리더십에 회의감 확산
주민 신뢰 회복 관건으로 부상
[천지일보 전북=김동현 기자] 전주·완주 통합 논의가 재점화되면서 전북도와 전주시의 수습·설득 능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통합 추진 단체가 제시한 ‘105개 상생발전 방안’을 전북도와 전주시가 수용하고 법제화 추진을 약속했지만 현장에서는 혜택 축소와 책임 회피에 대한 불신이 좀처럼 누그러지지 않고 있다. 주민 인터뷰와 최근 지역 여론조사 결과는 갈라진 민심과 엇갈린 리더십 평가를 함께 보여주고 있다.
◆“복지 줄고 빚만 떠안나”
완주군민 다수는 통합이 현실적 이익보다 손실을 키울 수 있다고 우려한다. 생활 지원과 복지 혜택 등 현 체제를 유지하는 편이 낫다는 인식이 강하고 전주시 재정 부채 부담을 떠안을 수 있다는 점에서 불안감이 적지 않다.
봉동에서 의류·이불을 판매하는 송점례(가명, 77)씨는 “완주는 혜택이 많다. 아이를 낳아도 지원이 많고 수해 피해도 적어 살기가 좋다. 그러니 사람들이 통합을 싫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송씨는 “봉동 발전을 위해 통합이 필요하다고 보지만 실제 마음은 안 했으면 하는 쪽이 더 크다”며 “우리 가게 손님들은 대체로 통합을 안 했으면 한다”고 밝혔다.
의류매장을 운영하는 김갑산(가명, 70대)씨는 “언젠가는 전북을 위해 통합해야 한다는 건 사실”이라면서도 “사람들이 전주가 빚이 많다고 걱정한다. 통합하면 지금 혜택을 못 받을까 두렵다는 반응이 많다”고 말했다.
삼례의 한 농약사 상인은 재정·복지와 관련한 반감을 드러냈다. 그는 “전주는 코로나때 지원금 준 이후 10원 한 푼도 안 주는데 완주는 민생지원금을 잘 준다”며 “저번에도 30만원을 줬고 이번에도 100만원씩 준다는 말이 있다. 합치면 그런 게 안 나온다”고 말했다. 이어 “완주는 빚이 없고 전주는 빚잔치다. 완주 돈으로 빚을 갚으려고 한다”며 “완주 사람 90%가 반대한다”고 못 박았다.
◆발전 기대 vs 변두리 우려
통합을 바라보는 주민 시선은 생활 기반과 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라 갈렸다. 상권 종사자 중 일부는 전주와 연결된 발전 가능성을 이유로 찬성을 내세웠지만 지역 변두리화와 혐오시설 우려를 들어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삼례에서 전파상을 운영하는 박장일(가명, 72)씨는 상권 입장에서 찬성 의견을 밝혔다. 박씨는 “나는 찬성이다. 삼례에서 상가하는 사람들은 다 찬성”이라며 “학생들도 전부 전주로 학교를 간다. 부모들은 애들 학군 때문에 삼례로 출퇴근을 하는 실정이니 합쳐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전주가 완주군에 둘러싸여 커지지 못한다. 통합을 하려면 완주군에도 플러스가 있어야 한다. 무조건 통합만 하자는 건 아니다”고 했다. 또 “반대하는 사람들이 찬성하는 사람들을 못 들어오게 하는 것 같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삼례에서 옷가게를 운영하는 송강혁(가명, 39)씨는 장기적 관점에서 찬성했다. 송씨는 “장기적인 비전으로는 찬성하는 게 맞다. 여기가 100% 완주 상권이 아니다. 전주 손님도 많이 온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에는 통합돼야 한다는 분위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반대가 늘었다. 봉동에서 반대 홍보물을 나눠주며 ‘반대해야 한다’고 말하는 모습을 봤다”며 “지역주민을 설득해야 된다”고 덧붙였다.
수선집을 운영하는 권금내(가명, 69)씨는 생활권과 개발 방향을 들어 우려를 제기했다. 권씨는 “전주를 싸고 있는 게 완주이니 전주로서는 통합이 맞다”면서도 “이미 효자동·서신동 쪽으로만 커졌다. 지금 통합되면 완주는 변두리일 뿐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전에는 봉동 코아루 아파트 못 들어가서 난리였는데 송천동에 아파트가 올라가고 지금은 집값이 다 떨어졌다”며 “익산도 통합한 이후에 함열 쪽은 다 죽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완주는 전부 산인데 집을 지을 것이냐. 결국은 혐오시설만 갖다 놓을 것”이라며 “50년 전에도 통합 얘기가 있었는데 이미 커질 대로 커진 상태에서 지금 서두르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상생 방안 법제화 약속… 불신 여전
전북도와 전주시는 통합 추진 단체가 제시한 105개 상생발전 방안을 수용하고 법제화 추진을 약속했다. 방안에는 완주 주민 동의 없는 혐오·기피시설 이전 불가, 완주 주민 혜택 12년 이상 유지·증액, 완주 지역구 의원 정수 최소 11명 12년 유지, 통합시청사·시의회 청사 완주 건립 등이 포함됐다. 그럼에도 주민 불신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여론조사 결과도 반대 기류를 확인시켰다. 지난달 1~2일 실시된 데일리리서치(완주신문 의뢰) 조사에 따르면 반대 71.0%, 찬성 25.9%가 집계됐다. 또 7월 23~24일 실시된 코리아정보리서치(케이저널 의뢰) 조사에서 완주군민은 반대 65.0%, 찬성 30.7%로 응답했다.
◆갈라진 민심, 정치권 신뢰가 변수
통합을 둘러싼 갈등은 정치 지도자들의 역할과 행보에 대한 주민 평가로 이어지고 있다. 도지사와 전주시장의 리더십에 대해선 긍정과 부정이 엇갈렸고 군수의 책임론도 거론됐다.
송점례씨는 “도지사는 열심히 하려고 노력한다. 노력하는 게 보인다. 그런데 전주시장은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권금내씨는 “최근에 도지사가 삼례 교회에 왔었다”며 “그런데 얼마나 실망을 했는지 나와서 인사도 안 하고 가운데서만 보고 갔다. 안쓰럽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책임 문제도 제기했다. 김갑산씨는 “(통합) 위에서만 얘기하지 실상 농민들과 군민들은 피부로 와 닿지 않는 얘기”라며 “실질적으로 말만 하고 나중에 통합하고 아무것도 안 할 것이라는 염려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통합한다고 해서 내년 선거에서 떨어져서 군수, 도지사, 시장이 바뀌면 붕 떠버린다. 그러면 누가 책임을 지냐”며 “지금 흐름이 자꾸 못 믿게 돌아간다. 믿음이 안 간다”고 덧붙였다. 이어 “통합이 되서 재임하면 성공이지만 도지사가 오죽하면 완주로 이사왔겠냐”며 “노력한 만큼 성과가 나와야 하지만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을 줄였다.
또 다른 상인은 “완주는 무조건 반대인데 여론조사에서 찬성이 35%가 나오냐. 여론조사 조작했다”며 “‘전주시장이 빚 잔뜩 지어놓고 완주군 돈 가져다 빚 갚으려고 한다’ ‘전북특별자치도 돼서 글씨만 길어지고 도움 되는 게 뭐가 있냐’ ‘도지사가 본때만 잡고 있다’며 도지사든 전주시장이든 다 싫어한다”고 강조했다.
전주·완주 통합 논의는 주민들의 신뢰를 얻지 못한 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주민들은 혜택 축소와 정치권 불신을 이유로 여전히 회의적이다. 결국 통합 성패는 제도적 보완책이나 정치권의 의지보다도 주민 신뢰 회복에 달려 있다. 주민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면 통합 논의는 또다시 표류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