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너머] 소비쿠폰의 역설
임창덕 한국농촌희망연구원장
정부는 지난 7월, 1차 민생회복 소비쿠폰(소비쿠폰)을 지급한 데 이어, 2차 지급을 계획 중이다. 이러한 소비쿠폰의 지급 배경은 민생경제 회복을 위한 조치의 일환으로 소비 활성화와 소상공인 및 자영업자 지원이다. 소비쿠폰 지급이 정부의 의도대로 소비 촉진과 전통시장과 골목상권 활성화에 효과가 있다는 의견이 많지만, 재정건전성 훼손과 단기적 경제 활성화와 낮은 효용을 우려하는 목소리 또한 적지 않다.
소비쿠폰 발행은 추경을 통한 국채 발행을 통해 조달된다. 즉 정부의 빚이 늘어나고 미래 세대가 상환해야 할 부담이 커진다는 의미다. 올해 갚아야 할 국채 이자만 해도 최소 30조원을 웃돌 것이라 추산되고 있다. 국채 발행으로 인한 이자 비용 증가는 다른 분야의 재정 지출을 줄여야 하는 등 정부의 재정 부담을 키울 뿐만 아니라 통화량 증가 및 물가 상승을 야기할 수 있다. 실제로 2020년, 코로나19 관련 재난지원금의 영향으로 한우나 돼지고기 가격이 치솟았고, 올해 7월에 지급된 1차 소비쿠폰 지급 이후 소고기·돼지고기 가격이 크게 올랐다. 소비쿠폰과 같은 무상지원금이 인플레이션(inflation)을 초래하는 이른바 ‘쿠폰플레이션’이다.
소비자들은 소비쿠폰을 사용할 때 공짜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정작 오른 물가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공짜가 아니게 되고 물가 상승률을 소득 상승률이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에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이다. 소비쿠폰이 나비효과를 일으켜 물가를 상승시키면 결국 같은 돈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의 양이 줄어들기 때문에 모든 사람의 실질적인 구매력을 하락시킨다.
한편 소비쿠폰 지급은 그 자체로 현금과 같은 구매력을 제공하고, 지역 내에서만 사용 가능하게 설계돼 자영업자 매출 증대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이렇게 소비쿠폰이 ‘새로운’ 소비를 유도하는 효과도 있지만 쿠폰이 없었더라도 언젠가 구매했을 소비를 앞당기거나 쿠폰 금액만큼만 소비를 늘리는 데 그칠 수 있다. 즉 실제 소비 진작 효과가 생각보다 크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발행한 2020년 12월 24일 자 ‘1차 긴급재난지원금 정책의 효과와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코로나19로 인한 재난지원금 같은 현금 지원은 전부 소비로 이어지지 않았고, 전체 투입 예산 대비 26.2~36.1%의 매출 증대 효과가 있었던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 기타 선행연구를 보더라도 재난지원금 지급 후 매출 증대 효과는 한 달 정도에 그쳤다는 결과도 있다.
또한 소비쿠폰 지급 이후 단기적으로는 소비가 많이 늘어나지만, 소비쿠폰이 소진된 후에는 소비가 감소하거나 이전 수준으로 돌아갈 개연성이 높다. 이러한 현상을 미래 소비의 현재화라 할 수 있다. 소비쿠폰은 없던 소비를 창출하기보다 앞으로 쓸 돈을 미리 사용하는 것에 불과하다. 예를 들면 쌀 재고가 늘어나고 소비가 줄면 쌀 소비 촉진 운동을 펼친다. 실제 쌀 재고가 줄기는 하지만 그렇게 구입한 쌀은 모두 소진될 때까지는 추가 구매가 일어나지 않는다. 즉 소비가 이연된 것이지 정작 쌀 소비 촉진 효과성은 미미한 것이다.
소비쿠폰 소비는 소득 착시 현상을 불러오기도 한다. 지원금은 일시적인 소득 증가일 뿐 영구적인 소득 증가는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지원금이 마치 소득이 늘어난 것처럼 느끼고 소비한다. 지원금이 소진되면 이러한 ‘소득 착시’가 사라져서 다시 원래의 소득에 맞춘다. 행동경제학에서 사람들이 돈의 출처나 용도에 따라 돈에 대한 가치를 다르게 평가하고 관리하는 경향인 심리계좌(mental accounting) 이론처럼, 소비쿠폰이라는 무상계정이 준거점(reference point)이 돼 무료라서 소비는 하지만 정작 자신의 급여나 수익계정에서는 지출은 줄일 여지도 있다. 소비쿠폰은 ‘공짜’가 아닌 소비를 왜곡하고 새로운 소비 장벽을 만드는 ‘역설적 도구’일 수 있다.
그리고 정부의 소비쿠폰은 공짜인 것 같지만 다 세금이다. 부족한 세수는 증세를 할 수밖에 없어 결국 국민 세금 부담으로 돌아온다. 정부는 부채가 지속적으로 늘어나면 부족한 재원을 메꾸기 위해 각종 세금을 인상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법인세 인상, 증권 관련 세금, 부동산 관련 세금 강화 등 세제개편 움직임이 있다. 현재 정부가 예산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 또한 국민이 직간접적으로 부담하는 형태다. 세금을 내지 않는 비과세 대상자나 면세점 이하 소득자를 감안하면 추후 세금 부담은 현재 세금을 내는 국민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다. 공짜가 공짜가 아닌 역설이다.
앞으로 2차 소비쿠폰이 지급된다. 한 번 지급한 쿠폰은 습관처럼 계속 이어질 여지가 많다. 정부는 단기적인 효과와 장기적인 부작용을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 소상공인들은 일회성의 소비쿠폰 지급보다 체감할 수 있는 실효성 높은 정책이 지속되길 바라고 있다. 정부는 시혜적이고 인기에 영합하는 정책보다는 경제 전반의 자생력 강화를 통해 경기를 살려, 내수 시장의 근본적인 활성화에 힘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