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유대·기독교 연구회서 던진 화두
유대·기독교사상 연구회 심포지엄 성경 속 '성전' 의미 모색하고 나눠 韓교회 성경 원문 연구 부족 지적도
[천지일보=임혜지 기자] 유대교와 기독교의 관계는 불편했다. 같은 구약 성경을 공유하면서도 오랜 세월 종교 관습과 신학적 차이 속에서 반감과 오해를 키워왔고, 갈등하고 분리됐다.
하지만 최근 해외와 국내 신학계를 중심으로 유대-기독교 사상을 비교 연구하려는 노력이 활발하다. ‘종교 간 대화와 소통’ ‘종교 간 교류와 화합’ 같은 가치들이 주목받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최근 미국 뉴욕 예시바대 유대학대학원(BGRS)이 주최한 ‘제3차 유대 기독교사상 연구회 심포지엄’의 주제도 성전 개념을 통한 유대-기독교 ‘대화’다. 이 행사는 유대학과 한국 기독교학의 학제 간 연구를 도모하는 학술모임으로 유대 기독교 사상에 관해 그 의견과 견해를 듣고 올바른 방향성을 논의할 기회를 갖기 위해 마련된 모임이다.
여기엔 두 종교 내에 은연중 뿌리내린 편견을 더이상 외면해선 안 된다는 학계의 자각이 담긴 동시에 유대인의 역사·철학·교육 전통에 대한 이해가 한국 기독교의 교리적 경직과 교육문화 부족을 해결하는 데 해법이 될 수 있다는 기대도 담겨있다.
환영사에 나선 허정문 예시바대 객원교수는 “한국 학계는 구약과 신약으로 나뉘어 유대-기독교 비교 연구가 부족하다”며 “교부와 랍비, 철학자, 신비주의자 간에도 활발한 교류가 있었던 만큼 이제 한국 학계도 더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또 “양쪽 전통 안에 남아 있는 반유대주의·반기독교적 편견을 걷어내고 열린 자세로 교류할 때 한국교회가 직면한 교리적 경직과 교육 문화의 한계에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이날 ‘하나님은 어디에 계신가’를 주제로 발표에 나선 김경식 감신대 교수는 먼저 유대교와 기독교가 성전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서로 오해를 품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독교인들은 유대교가 성전의 물리적 재건을 중시한다고 여기고 유대교인들은 기독교가 율법을 폐하려고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며 “그러나 실제로 유대교는 성전 재건보다 메시아 신앙과 관련된 종말론적·상징적 의미를 더 중시하고, 기독교 역시 율법을 폐기하기보다 예수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완성을 강조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성전은 돌이나 건물이 아닌 하나님과의 만날 수 있는 공동체와 삶”이라고 정의했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발표 내내 ‘성소(聖所)’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다. 성전이 건물 중심의 개념이라면 성소는 하나님 임재 자체를 가리키는 더 큰 개념이라는 이유에서다.
김 교수는 구약과 신약 성서를 관통하는 성소의 흐름을 창세기의 성막에서부터 예루살렘 성전, 포로기, 제2성전, 랍비 유대교와 초기 기독교까지 짚으며 “성서는 처음부터 가시적 신상을 거부하고 초월적·보편적 성소 개념을 강조해왔다”고 말했다.
그는 모세 시대 등장한 성막은 하나님이 잠시 거하시는 장막이자 백성과의 만남의 장막이었다며 “구름이 떠오르면 성막과 백성도 함께 움직였다. 하나님은 특정한 장소에 묶이지 않고 백성과 동행하시는 분”이라고 설명했다. 예루살렘 성전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이름’을 둔 곳일 뿐 하나님을 가두는 건물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고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던 에스겔 선지자에게 하나님께서 “열방에서 내가 그들에게 성소가 되리라(겔 11:16)”고 하신 점도 이를 보여준다. 김 교수는 “성전이 무너졌지만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임재하신다. 하나님이 함께하는 곳이 곧 성소임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성소의 본질은 제사가 아니라 정의와 공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에 있다고 봤다.
“선지자들이 제사보다 정의와 공의를 외친 것 역시 성소의 본질이 실천에 있음을 드러낸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김 교수는 “성소의 핵심은 돌로 지은 건물이 아니라 말씀을 따르고 사랑을 실천하는 공동체”라며 “서로의 차이를 줄이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곧 성소를 다시 세우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심포지엄에서는 한국교회 담론이 성전을 건물 중심으로만 이해해 원문 연구와 토론 문화가 부족하다는 진단도 나왔다. 번역에 의존하다 보니 히브리어 본래의 뉘앙스가 왜곡되고 신학적 논의와 신앙적 실천을 따로 떼어 보는 풍토가 성전 이해를 단순화시킨다는 것이다.
이 같은 문제의식 속에서 예시바대는 한국인과 유대인의 학술 교류를 위한 인증 학위 프로그램 ‘헤브라이카 베리타스(Hebraica Veritas)’를 소개하기도 했다.
‘헤브라이카 베리타스’는 석·박사 진학 전 단계인 고급 인증 학위(Pre-MA) 과정으로 ‘성경에서 탈무드까지’ ‘성경 히브리어’ 등 과목이 포함된다.
주최 측은 “성경 히브리어 원문 학습과 토론 문화 생활 속 실천을 함께 추구하는 것이 오해를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길”이라며 “향후 한국 학계와 교계가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공동 번역·토론 프로젝트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