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온플법 겹악재… 유통업계 전방위 ‘삼중 리스크’

배송기사·물류 인력 등 원청 교섭·손배 제한 혼란 가중 美 “온플법=디지털 장벽”… 농축산물 개방 압박까지 소비자 피해·투자 위축·물가 불안 현실화… 보완책 시급

2025-08-25     양효선 기자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환노위 야당간사인 국민의힘 김형동 의원과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이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 수정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과 함께 이동근 한국경영자총협회 상근부회장, 박일준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김창범 한국경제인협회 상근부회장, 이인호 한국무역협회 상근부회장, 오기웅 중소기업중앙회 상근부회장 등이 참석했다.ⓒ천지일보 2025.08.18.

[천지일보=양효선 기자] 노란봉투법 통과와 온라인플랫폼법(온플법) 논란이 동시에 불거지면서 유통업계가 전방위 리스크에 직면했다. 교섭 범위 확대와 손해배상 제한으로 물류·매장 운영 불확실성이 커진 가운데 미국은 온플법을 ‘디지털 무역 장벽’으로 규정하며 압박에 나섰다. 여기에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농축산물 개방 요구까지 거론되며 생활물가 불안까지 겹쳤다.

국회는 지난 24일 본회의에서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정안은 사용자 범위를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자’로 넓히고 파업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에 따라 쿠팡 배송기사, CJ대한통운 지입기사, SPC 제빵·물류 인력, 대형마트·백화점 외주 근로자까지 모두 원청 본사와 직접 교섭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다.

업계는 즉각 긴장하고 있다. 쿠팡은 배송기사와 특수고용 인력인 퀵플렉서까지 교섭 대상이 될 경우 로켓배송 신뢰가 흔들릴 수 있다고 본다. 하루 수십만 건 배송이 지연되면 대규모 환불과 클레임이 발생하고 투자자 신뢰도에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CJ대한통운은 지입기사 수만 명이 본사 교섭을 요구할 수 있는 구조가 열리면서 장기 파업 가능성이 다시 부각됐다. 지난 2021~2022년 전국택배노조 장기 파업 당시 배송 차질과 소비자 불만이 폭증했던 기억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다.

제빵업계도 직격탄을 우려한다. SPC그룹은 전국 가맹망을 통해 매일 수천 개 매장에 빵과 원부재료를 공급하는데 물류센터나 협력사 인력이 집단행동에 나서면 하루 만에 ‘빵 품절’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백화점 업계는 청소·보안·판매 인력이 외주 중심인 만큼 성수기 파업 시 매장 서비스 붕괴 위험이 크다. 대형마트는 물류 하역과 진열까지 외주 비중이 높아 공급망이 멈추면 빈 진열대와 생활물가 불안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

25일 서울 종로구 국정기획위원회가 입주한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 앞에서 온플법 제정 촉구 공동행동 관계자들이 배달앱 총수수료 상한제 국정과제 반영을 촉구하며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2025.6.25 (출처: 연합뉴스)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유통업계와 직결되는 농축산물·비관세 장벽 문제가 핵심 현안으로 부각됐다. 미국은 쌀·소고기 등 농축산물 시장 개방을 압박하며 국내 유통·식품업계에 직격탄을 예고했다. 과채류 검역 절차 간소화 요구 역시 수입 확대를 통한 가격 경쟁 심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더해 우리 정부가 추진하는 온플법까지 ‘디지털 무역 장벽’으로 지목되면서 미국은 규제 완화와 철회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농축산물 개방은 국내 농가와 대형마트 가격 체계에 직접적인 파급을 미치고, 온플법 압박은 글로벌 플랫폼과의 경쟁 구도를 흔드는 요인”이라며 “유통산업은 사실상 내수·통상 양면에서 동시에 압박을 받는 셈”이라고 말했다.

대외적으로는 온플법을 둘러싼 미국의 압박이 더욱 노골화됐다. 미국 하원의원 43명은 지난달 공동서한을 통해 “한국 공정위의 온플법은 EU식 디지털시장법(DMA)과 유사하며 미국 기업을 과도하게 규제한다”고 지적했다. 미 상공회의소와 컴퓨터통신산업협회(CCIA) 등도 상무부 장관에 “한·미 정상회담에서 디지털 무역장벽 완화가 논의돼야 한다”는 서한을 전달했다.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도 “세계 최강 패권국과 무역협상을 앞둔 상황에서 독자적 온플법 추진은 쉽지 않다”며 행정적 규율 체계로 방향을 선회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실제로 이재명 정부의 국정 5개년 계획에서도 온플법은 빠지고 ‘규율체계 마련’이라는 행정 조치만 남았다.

유통업계는 노란봉투법과 온플법에 더해 중대재해처벌법 부담까지 떠안고 있다. 대형 물류센터·제조공장·매장 등에서 산재 사고가 발생할 경우 경영진이 형사 책임을 지는 구조여서 본사 리스크가 한층 확대된다. 업계 관계자는 “파업에 따른 물류 혼란, 규제에 따른 투자 위축에 더해 안전관리 의무까지 강화돼 사실상 ‘삼중 압박’ 상황”이라며 “안전 인력·설비 투자가 불가피하지만 결국 비용은 소비자 가격으로 전가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결국 유통업계는 내우외환에 직면했다. 국내에서는 노란봉투법으로 교섭 범위와 파업 리스크가 확대되고 국외에서는 농축산물 개방과 온플법이 통상 마찰로 비화하며 외국인 투자 심리를 위축시키고 있다. 업계는 “소비자 피해와 투자 위축이 동시에 발생할 수 있다”며 “정부와 국회가 유예기간 동안 업종별 보완책과 국제 정합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