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푸드 수출 26개월 만에 감소… 라면·김치 직격탄, 美 관세·정부 압박 이중고

7월 대미 농식품 수출 6.7%↓… 2023년 5월 이후 첫 감소 삼양·오뚜기 ‘관세 직격탄’ vs 농심 ‘현지 생산’으로 방어 “지원 없는 가격 인하 요구, 수출 경쟁력 약화 불가피”

2025-08-20     양효선 기자
외국인 관광객이 프랑스 파리 시내 메종 드 라 시미에 열린 코리아하우스에서 K푸드를 체험하고 있다. (제공: 대한체육) ⓒ천지일보 2024.08.01.

[천지일보=양효선 기자] K푸드 수출이 26개월 만에 처음으로 감소세로 돌아섰다. 지난달 대미(對美) 농식품 수출액은 1억 39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7% 줄었다. 라면(-17.8%), 과자(-25.9%) 등 대표 품목이 직격탄을 맞으면서 ‘K푸드 성장 신화’에도 제동이 걸린 것이다. 여기에 트럼프 행정부의 고율 관세 부과와 정부의 ‘가격 인하’ 압박까지 겹치며 식품업계는 글로벌·내수 시장 모두에서 이중고를 호소하고 있다.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에서 현지 소비자들이 농심 신라면을 즐기고 있다. 미국 내 현지 생산 기반을 갖춘 농심은 관세 여파를 일부 회피하고 있지만, 소비 둔화에 따른 실적 압박은 여전하다. (제공: 농심)

20일 한국무역통계진흥원에 따르면 7월 라면·과자 등 가공식품을 포함한 대미 농식품 수출액은 1억3900만달러로 전년 동월 대비 1000만달러(6.7%) 감소했다. 대미 농식품 수출이 줄어든 것은 2023년 5월 이후 2년 2개월 만이다. 품목별로는 라면이 1400만달러로 17.8%, 과자류가 2000만달러로 25.9%, 소스류가 700만달러로 7.2%, 인삼류가 13.4% 각각 감소했다.

특히 라면은 올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전년 대비 40.8% 증가세를 보였지만, 7월 들어 급감세로 돌아섰다. 업계는 “상호관세가 예고된 상황에서 5~6월에 물량을 앞당겨 수출한 영향도 있지만, 소비 둔화와 발주 축소라는 구조적 요인이 더 크다”고 분석했다.

미국에서 열린 한류 행사장에서 현지 소비자들이 삼양식품의 불닭볶음면과 소스를 들고 기념촬영하고 있다. 삼양식품은 미국 수출의존도가 높지만 현지 생산기반이 없어 관세 직격탄을 맞고 있다. (제공: 삼양식품)

기업별로는 현지 생산 여부에 따라 희비가 엇갈렸다. 삼양식품은 지난해 미국 법인 매출이 2억 8000만달러로 전년 대비 127% 성장했지만 현지 공장이 없어 수출 전량이 관세 부담을 떠안고 있다. 불닭볶음면 인기에 힘입어 급성장했으나 이제는 ‘가격 인상’ 또는 ‘수익성 포기’라는 선택지 앞에 놓였다.

오뚜기도 상황은 비슷하다. 오뚜기는 캘리포니아 라미라다 지역에 현지 식품 공장을 착공할 계획이지만 인허가 지연으로 일정이 늦어지고 있다. 2027년 완공을 목표로 하지만 그 전까지는 관세 영향을 고스란히 받을 수밖에 없다. 오뚜기 미국 법인의 순이익은 2023년 123억원에서 2024년 10억원대로 급감했고 올해 1분기 매출도 전년 동기 대비 1.3% 감소했다.

반면 농심은 미국 캘리포니아 제1·제2공장에서 연간 10억개 규모의 라면을 직접 생산하며 비교적 충격을 줄이고 있다. 현지 생산품은 미국산으로 분류돼 상호관세 적용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소비 둔화가 걸림돌이다. 강은지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농심의 2분기 미국 사업 매출은 환율 효과를 제외하면 성장세가 제한적”이라고 지적했다.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소비자가 오뚜기와 삼양식품 제품을 구매하고 있다. 두 회사 모두 미국 수출을 국내 생산에 의존하고 있어 고율 상호관세의 영향권에 놓여 있다. (출처: 연합뉴스)

미국 내 소비심리 둔화도 한국 식품업계에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최근 AP-NORC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7%가 “식료품비 지출이 주요 스트레스 요인”이라고 답했다. 유통업체들이 재고 부담을 피하기 위해 발주량을 줄이는 이유다.

수출 타격은 식품에 국한되지 않고 있다. 미 상무부는 최근 알루미늄·철강 파생상품 407개 품목에 50% 고율 관세를 적용한다고 발표하면서 통조림·화장품 용기 등도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이 커졌다. 동원F&B 관계자는 “통조림 비중은 아직 크지 않지만 수출 확대를 추진하고 있는 만큼, 향후 관세 영향이 불가피할 수 있다”고 전했다.

온라인 유통과 관련해선 “대형 플랫폼 기업의 과도한 수수료 구조가 중소 식품기업들의 마진을 악화시키고 있다”며 “온라인플랫폼법을 통해 거래 투명성과 공정성을 제도적으로 확보해 달라”는 요청이 집중됐다. 민주당은 이에 대해 “온플법을 국내 소비자 보호 중심에서 불공정 거래 규제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수출이 흔들리는 와중에도 정부와 여당은 식품업계에 가공식품 가격 인하를 요청하고 있다. 지난 11일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물가대책TF 간담회에서 유동수 의원은 “민생경제 회복을 위해 식품 가격 안정이 필요하다”며 자발적 가격 인하를 요구했다.

이에 대해 업계는 “국제 원자재·물류·환율 부담이 커지는 상황에서 정부 지원 없는 가격 억제는 현실성이 없다”며 ▲해외 공동물류센터 건립 지원 ▲R&D 투자 확대 ▲온라인 유통 공정성 강화를 위한 ‘온플법’ 제정을 건의했다. 업계는 “이미 식품산업은 연평균 7.6% 성장, 수출도 5.6% 증가한 국가 핵심 산업”이라며, 가격 통제 대신 산업 육성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지난 2월 ‘K-FOOD+ 수출 확대 추진본부 CEO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농식품부는 고율 상호관세와 미국 소비 둔화 등 대외 여건 악화 속에서 K푸드 수출을 뒷받침하기 위한 민관 합동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제공: 농림푹산식품부)

올해 2월 농림축산식품부는 송미령 장관 주재로 ‘K푸드 플러스 수출 확대 추진본부’ 제3차 간담회를 열고 수출 목표 140억달러 달성을 위한 기업 애로 청취와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하지만 7월 전체 농식품 수출액은 8억 4000만달러로 5.3% 감소하며 목표 달성이 쉽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단순한 물가 압박보다는 산업 보호 관점에서의 접근을 강조한다. 정철 한국경제연구원장은 “고율 관세는 위험이자 기회”라며 “지금이야말로 민관이 원팀으로 전략적 협상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민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장도 “미국이 원하는 협상 프레임이 이미 드러난 만큼, 한국도 이에 상응하는 대응 구조를 갖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내수 가격 인하와 대외 수출 둔화 사이에서 K푸드 산업은 중대한 시험대에 서 있다. 관세 장벽을 넘는 수출 경쟁력 확보와 시장 기반을 지키기 위한 정부의 전략적 개입이 시급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