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포커스] 김태환 한국스카우트 전 훈육위원장 “입시 벗어나 인성 키우는 교육, 스카우트가 답이다”

김태환 한국스카우트 충남·세종연맹 전 훈육위원장 60여년간 스카우트·교직 헌신 대통령근정포장 등 수상 다수 정직함·인내·협력·상호존중 등 스카우트 정신 신앙처럼 여겨 “학교, 인성 교육 기회 부족” “스카우트 활동 다시 살려야”

2025-08-20     김빛이나 기자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스스로에 대해 “스카우트에 미쳤다”고 할 정도로 열정적인 김태환 한국스카우트 충남·세종연맹 전 훈육위원장이 지난 8일 서울 용산구 만리시장 인근 자신의 사무실에서 스카우트와 자신의 인생스토리를 담은 책 ‘미치광이 人生(인생)’을 들고 기념촬영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5.08.20.

[천지일보=김빛이나 기자] “스카우트는 단순한 취미 활동이 아니라 사람을 키우는 정신이자 삶의 태도입니다. 스카우트를 통해 정직과 봉사, 서로를 존중하는 습관이 몸에 배면 어떤 환경에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습니다.”

김태환(76) 한국스카우트 충남·세종연맹 전 훈육위원장(2004~2012)의 첫마디는 단호했다. 나지막하지만 힘이 실린 그의 목소리에는 수십년간 청소년들과 함께 보낸 시간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제13대 대통령 표창(서울올림픽대회 공로표창), 제17대 대통령 근정포장, 무궁화 금장, 전국 스카우트 대상 수상, 범스카우트 3명 배출, 한국교육자 대상 등 화려한 기록은 현재까지도 한국스카우트연맹 훈련교수회 평생회원으로 활동하는 김 전 위원장이 한국 스카우트 운동의 산증인임을 입증했다.

하지만 김 전 위원장의 이야기는 이러한 ‘이력’이 아니라 자신의 ‘신념과 가치, 교육 철학’에 더 무게가 실려 있었다. 본지는 지난 8일 서울 용산구 만리시장 인근 김 전 위원장의 사무실에서 그를 만나 스카우트 정신과 그가 걸어온 여정을 살펴봤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지난 8일 서울 용산구 만리시장 인근 김태환 한국스카우트 충남·세종연맹 전 훈육위원장의 사무실에 표창장이 걸려 있다. ⓒ천지일보 2025.08.20.

◆스카우트와의 첫 만남

그의 스카우트 여정은 1966년 고등학교 1학년 교실에서 시작됐다. 당시 충남고 스카우트 반은 매주 토요일이면 강당에서 기초 제식 훈련과 캠핑 기술을 익혔다.

“처음엔 친구를 따라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스카우트 활동을 통해 모험을 즐기고 새로운 것을 배우며 친구들과 함께 역경을 극복해 가면서 스카우트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됐습니다.”

전국 잼버리와 캠퍼리 현장은 그에게 잊을 수 없는 훈련장이었다. 폭우 속 침수된 텐트를 지키느라 밤을 꼬박 새우던 경험은 훗날 교육 현장에서 아이들에게 “준비는 불편함을 이기는 첫걸음”이라고 말하게 한 원천이 됐다.

또 하나의 기억은 고등학교 2학년 시절 한국 잼버리에 참가했을 때다. 당시 그는 퍼레이드를 하루 앞두고 돌연 맹장염이 터지면서 몸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한 채 태릉 육군사관학교 야영장에 남아야 했다. 동료 대원들이 서울 시내로 행진에 나설 때 그는 홀로 텐트에 남아 장비와 짐을 지켰다.

그는 “정말 힘들었지만 고난을 극복하는 과정 자체가 ‘스카우트의 길’이라는 걸 절실하게 느끼게 됐다. 힘든 과정이 오히려 성장의 발판이 됐다”며 “그 시절의 경험 덕분에 지금까지 어떤 어려움 앞에서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김태환 한국스카우트 충남·세종연맹 전 훈육위원장이 지난 8일 서울 용산구 만리시장 인근 자신의 사무실에서 스카우트 정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5.08.20.

◆교단서 꽃피운 스카우트 정신

대학 졸업 이후 1978년 ‘김영구(2014년 2월, 김태환으로 개명)’라는 이름으로 경기 안성 죽산중학교에 과학·화학교사로 부임한 김 전 위원장은 스카우트 기본 교육이 있다는 소식을 듣자 “내가 가겠다”며 자원해 참가했다. 희생과 봉사가 따르는 길이었기에 다른 교사들은 망설였으나 김 전 위원장은 “나는 스카우트를 했던 사람이라 꼭 하고 싶다”고 말하며 참가했고 이후 스카우트 지도교사 역할을 담당하게 됐다.

서산농림고 재직 시절에는 스카우트 정신을 기반으로 한 독창적인 풍물 교육을 시도했다. 김 전 위원장은 지역 민속놀이 ‘서산 볏가리’를 접목한 풍물 동아리를 창단해 학생들의 예술성과 협동심을 함께 길렀다.

“풍물은 혼자 빛날 수 없습니다. 북, 장구, 꽹과리, 징이 서로를 받쳐줄 때만 전체가 살아납니다. 스카우트가 말하는 ‘팀워크’와 똑같죠.”

스카우트 정신이 담긴 김 전 위원장의 풍물 동아리는 단순히 한 학교의 동아리 활동 수준에 머무르지 않았다.

이 동아리는 1985년 제3회 전국 초·중·고 농악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차지하는 것은 물론 1986년 제4회 한밭제 민속경연대회 농악부문 1등,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 무대 공연, 1990년 일본 NHK 초청 원정 공연 등 화려한 기록을 남겼다.

풍물 동아리의 신명나면서도 절도 있는 대형과 일사불란한 움직임은 스카우트 훈육에서 배운 규율 덕이었다. 그는 “풍물 한 판에도 스카우트의 인내, 규율, 배려가 숨 쉬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김 전 위원장은 이처럼 모든 일에 스카우트의 정신을 담아왔다. 자신의 인생을 걸고 스스로에 대해 “스카우트에 미쳤다”고 할 정도로 열정적인 김 전 위원장은 스카우트와 자신의 인생스토리를 담은 책 ‘미치광이 人生(인생)’을 직접 펴내기도 했다.

김태환 한국스카우트 충남·세종연맹 전 훈육위원장이 소유한 스카우트 물품들. 세계를 돌며 모은 이 물품들은 김 전 위원장이 수십년간 얼마나 많은 스카우트 활동들을 해왔는지 가늠하게 한다. (제공: 김태환 전 훈육위원장) ⓒ천지일보 2025.08.20.

◆보람·아쉬움 남긴 새만금 잼버리

김 전 위원장은 2023년 전북 새만금에서 열린 제25회 세계 잼버리대회에 충남·세종연맹 소속 ‘최고령 지도자’로 참가하기도 했다. 나이와 건강에 대한 부담에도 불구하고 “아이들과 함께 세계 무대에 서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참가를 결정하게 됐다.

현장에서 그는 전 세계 청소년들이 국적과 언어를 넘어 어울리고 협력하는 모습을 보며 “이것이 바로 스카우트 정신”이라고 기뻐했다. 그러나 운영 면에서는 아쉬움이 컸다. 교통 편의도 엉망이었다. 수백명의 참가자들이 몇 시간씩 버스 안에서 대기하는 혼란이 벌어지자, 일부 버스 기사들이 불만을 터뜨리며 추가 운행을 거부하려는 상황이 발생했다.

그때 김 전 위원장은 직접 기사들을 찾아가 일일이 고개 숙여 사과했다. 그는 “참가자들은 모두 우리 아이들”이라며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70대 중반인 그가 낮은 자세로 보여준 진심 어린 태도에 기사들의 마음은 누그러졌다. 결국 운행은 정상화됐다.

김 전 위원장은 “처음엔 나 역시도 당황스러웠지만 곧 평정심을 찾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며 노력했다”며 “스카우트 정신을 평생 신앙처럼 생활화했던 것이 또 한 번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김 전 위원장은 잼버리 운영에 대한 따끔한 지적을 남겼다. 그는 “국제 행사는 보여주기가 아니라 실제 운영이 중요하다”며 “대규모 국제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현장을 제대로 관리할 스카우트 출신 지도자보다 행정 담당자들이 전면에 나서다 보니 실제 운영은 부실할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김태환 한국스카우트 충남·세종연맹 전 훈육위원장이 소유한 스카우트 물품들. 세계를 돌며 모은 이 물품들은 김 전 위원장이 수십년간 얼마나 많은 스카우트 활동들을 해왔는지 가늠하게 한다. (제공: 김태환 전 훈육위원장) ⓒ천지일보 2025.08.20.

◆“스카우트, 살아 있는 교육”

수십년간 훈육위원장을 맡았던 김 전 위원장에게 ‘교육’은 각별한 의미를 지녔다. 그는 교육의 본질에 대해 “시험문제 푸는 사람을 만드는 게 아니라 사람다운 ‘사람’을 키우는 일”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현재 교육이 지식 위주, 입시 중심으로 치우쳐 있다는 점을 우려하면서 인성을 키울 수 있는 스카우트 교육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우리나라 교육은 지식 중심으로만 흘러가다 보니 인성과 공동체 정신을 키울 기회가 부족합니다. 우리 사회에는 혼자 잘하는 사람보다는 함께 해내는 사람을 더 필요합니다. 스카우트 활동은 교실 밖에서 인내, 협력, 배려를 배울 수 있는 살아 있는 교육입니다.”

김 전 위원장은 현재 국내 스카우트 활동이 크게 위축된 현실을 꼬집었다. 과거에는 학교와 지역 사회가 적극적으로 지원했지만 지금은 행사와 모임이 줄어들고 지도자 인력도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그는 “교사가 서류와 행정에 치이고 아이들과 현장에서 부대끼는 시간은 점점 줄어든다”며 “아이들이 직접 뛰고 부딪히며 배우는 기회를 만들어줘야 하는데 요즘은 보여주기식 행사에 치중하는 경향이 커졌다”고 비판했다.

이어 “혹시 있을 사고에 대비하며 다양한 경험을 제공할 생각보다 그러한 일 자체를 만들지 않으려 피하기에만 급급해 학교 내에서도 도전하지 않는 문화가 팽배해졌다”며 “심지어 수학여행도 안 간다고 하니 문제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김 전 위원장은 “스카우트는 교과서 밖에서 인생을 배우는 학교”라며 “지금이야말로 아이들이 공동체 속에서 자라고 세계 속에서 당당하게 설 수 있는 힘을 키울 수 있도록 스카우트를 되살려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