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포커스] “혼자 먹기 딱 좋네”… 고물가 시대가 만든 ‘컵빙수 열풍’
‘명품빙수’ 대신 5000원대 컵빙수 선택한 소비자들 1인용·저렴함·휴대성 삼박자에 500만개 이상 판매 베이커리·막걸리 업계도 가세… 업종 넘나들며 확산 “같이 먹는 빙수 부담”… 개인화된 소비 욕구 반영
[천지일보=정다준 기자] 무더위를 식혀주는 여름 디저트의 왕좌 빙수가 또 한번 진화하고 있다. 1인 컵빙수가 올여름 디저트 시장을 강타하며 소비자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수십만원대의 호텔 빙수 열풍이 한때 여름철 SNS를 달궜다면, 지금은 가성비와 편의성을 무기로 한 컵빙수가 폭염 속 트렌드를 주도 중이다. 커피전문점에서 시작된 컵빙수 열풍은 베이커리, 주류 업계로까지 확산되며 여름 디저트 시장의 주인공으로 부상했다.
◆평범→고급→호화→가성비… 빙수 변천사
빙수는 원래 단순한 간식이었다. 얼음을 곱게 갈고 팥과 연유를 얹은 평범한 형태로 오랜 세월 사랑받았다. 그러다 2010년대 중반 설빙의 등장 이후 변화가 시작됐다. 과일, 인절미, 아이스크림 등 다양한 토핑을 얹은 ‘한 그릇 디저트’로 자리잡으면서 외식 프랜차이즈 업계의 여름철 효자 메뉴가 됐다.
◆가성비 ‘컵빙수’… 고물가 시대의 해답
하지만 최근 빙수 시장의 흐름은 다시 작고 실속 있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외식 물가 상승과 개인화 소비 트렌드가 맞물리면서 가성비와 휴대성을 갖춘 1인 컵빙수가 주류로 부상한 것이다.
컵빙수 트렌드에 불을 지핀 주인공은 메가MGC커피다. 메가MGC커피가 지난 4월 30일 출시한 여름 한정 메뉴 ‘팥빙 젤라또 파르페’와 ‘망빙 파르페’는 불과 한 달도 되지 않아 누적 판매량 50만개를 기록했다. 이후 ‘팥빙팥빙 파르페’와 ‘팥빙 초코 젤라또 파르페’ 등 신제품을 출시해 라인업을 확대했다. 지난달 중순 기준 컵빙수 시리즈의 판매량은 500만개를 돌파하며 컵빙수 열풍의 정점을 찍었다.
실제로 컵빙수 인기에 품절 현상도 발생했다. 이제 컵빙수 구매를 위해 여러 매장을 순례하는 ‘컵빙수 순례족’, 오픈 시간에 맞춰 매장을 찾는 ‘오픈런’ 현상까지 등장하며 그 인기를 입증했다.
이처럼 다양한 업체들이 앞다퉈 컵빙수를 출시하는 데에는 고물가 속 가성비를 중시하는 소비자의 수요를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외식 부문 소비자물가지수는 2020년을 100으로 기준할 때 지난해 124.56을 기록하며 25% 가까이 상승했다. 같은 기간 전체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약 16%)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외식 비용이 빠르게 오르면서 합리적인 가격에 부담은 줄이고 만족은 높일 수 있는 ‘컵빙수’가 하나의 위로가 되고 있는 셈이다.
컵빙수의 ‘1인 전용 디저트’로서의 속성도 트렌드를 키운 요인 중 하나다. 혼밥족이나 소확행을 중시하는 MZ세대 사이에서는 고가 호텔빙수보다 5000원 이하로 가볍게 즐기는 컵빙수에 대한 선호가 뚜렷하다.
◆빵집·주류 업계도 컵빙수 인기 ‘탑승’
컵빙수 인기에 힘입어 빽다방, 이디야, 컴포즈커피, 더벤티 등 커피 프랜차이즈들이 경쟁적으로 컵빙수를 선보였다. 빽다방은 단팥 쉐이크와 아이스크림 시리즈를, 이디야는 팥 인절미·초당옥수수·망고 그래놀라 맛의 1인 빙수 4종을 출시했다. 컴포즈커피는 팥절미 밀크쉐이크로, 더벤티는 여름 시즌 컵빙수를 시그니처 메뉴로 내세웠다.
최근에는 커피 프랜차이즈 외에도 베이커리, 막걸리 업계까지 시장 진입에 나섰다.
SPC그룹이 운영하는 파리바게뜨는 ‘밀크컵빙수’와 ‘밀크쉐이크’ 등 2종의 여름 음료를 내놨고, CJ푸드빌의 뚜레쥬르도 지난달 업그레이드된 컵빙수 2종(말차·밀크 팥절미)을 출시했다. 얼음과 쉐이크를 섞은 베이스에 팥, 떡, 아이스크림 등을 풍성히 얹은 구성이 특징이다. 프랜차이즈 카페 메뉴 못지않은 맛과 비주얼을 강조하며 베이커리의 ‘디저트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이다.
흥미롭게도 주류 업계도 컵빙수 트렌드에 합류했다. 서울장수막걸리는 최근 공식 SNS를 통해 얼음과 막걸리를 섞어 만든 ‘막걸리 컵빙수’ 레시피를 공개했다. 이 콘텐츠는 누적 조회수 14만회를 넘기며 화제를 모았고, ‘혼술+디저트’라는 이색 트렌드로 주목받았다. 술을 디저트처럼, 디저트를 술처럼 즐기는 소비문화가 새로운 시장을 열고 있는 것이다.
◆“나야 컵밥”… 원조 계보 잇는 ‘컵빙수’
컵빙수의 인기에는 1인 가구의 증가와 맞물린 ‘소포장·미니화 트렌드’도 한몫하고 있다. 테이크아웃 형태로 가볍게 먹을 수 있고, 식사나 간식 대용으로도 적절한 포만감을 주는 점이 특징이다. 실제로 컵빙수 외에도 컵냉면, 컵육회 등 ‘혼자서 즐기는 한 끼’ 제품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는 2000년대 초 등장한 ‘컵밥’의 계보를 잇는 흐름으로, 다양한 맛과 구성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브랜드별 개성도 두드러진다. ‘토핑 경제’ 시대에 맞춰 젤라또, 떡, 시리얼, 연유, 과일 등을 조합한 개별화된 맛도 인기 요소다.
◆“혼자 먹는 게 더 편하고 위생적”
실제로 컵빙수를 이용하는 소비자들은 ‘혼자 먹기 좋아서’ ‘편리해서’라는 이유를 꼽았다.
소비자 A(30대, 남)씨는 “평소 빙수는 양도 많고 매장에 앉아서 먹어야 해서 별로 선호하지 않았는데 컵빙수는 혼자 먹기에 양도 적당하고 이동 중에도 간편하게 즐길 수 있다”며 “더위를 많이 타는데 시원함이 오래가 자주 사 먹는다”고 밝혔다.
20대 직장인 여성 소비자 B씨는 “빙수를 여럿이 나눠 먹다 보면 위생 문제도 신경 쓰이고, 괜히 더 많이 먹으려는 눈치 싸움도 생긴다”며 “컵빙수는 오롯이 혼자 즐길 수 있어 그런 불편함이 없어 좋다”고 웃으며 말했다.
◆디저트도 ‘개인화 시대’
컵빙수 유행과 관련해 최근 가성비와 간편함, 개인화된 소비 경험을 중시하는 소비자들의 니즈가 실용적인 방향으로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홍주 숙명여자대학교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컵빙수는 간편하게 혼자서도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며 “기존 빙수는 사이즈가 커서 혼자 먹기엔 부담스러운 소비자층도 있었는데 컵빙수는 저렴하고 부담 없는 가격으로 개인화된 소비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개성 있는 소비 경험’도 컵빙수 인기 요인으로 꼽았다. 그는 “MZ세대 소비자층은 비주얼에도 민감한데, 컵빙수는 예쁘고 모양이 좋은 제품을 다양하게 연출할 수 있어 소위 ‘인스타 감성’을 충족시켜줄 수 있다고 본다”며 “귀엽고 간편하면서도 감성적인 소비 욕구를 만족시키는 동시에 개성 있는 소비 경험까지 가능한 점이 컵빙수가 주목받는 이유”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