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인사이드ㅣ전북–탄소] 인프라는 최고, 연결은 최저… 전북 탄소산업의 기회와 위기
시험·실증·인증 갖춘 산업 기반
방산·항공·모빌리티 연계 확대
소재 국산화·재활용 핵심 과제
산단 입지 협소, 통합 논의 절실
기업 유치, 신뢰 확보가 관건
“공기같이 중요… 재설계 시급”
[천지일보 전북=김동현 기자] 탄소소재 산업이 전북에서 출발한 지 20년이 흘렀다. 시험·실증·인증까지 가능한 국내 유일의 전주기 인프라를 구축하고도 아직 전북의 탄소산업은 대중에게 낯설고 지역경제에 체감될 만큼의 성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전북은 이제 ‘보이지 않는 산업’을 어떻게 가시화하고 산업화의 결실로 전환할 것인지라는 과제와 마주했다.
탄소소재는 방위산업, 우주항공, 이차전지, 수소모빌리티 등 미래 전략산업과의 연계 가능성이 높고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핵심 소재다. 전북은 이 산업을 지역 생태계로 정착시키기 위해 기업 유치, 재활용 기술 고도화, 산단 통합 논의 등 구조적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
탄소는 전북이 가장 먼저 씨앗을 뿌린 산업이지만 이제는 축적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지역이 짊어진 ‘보이지 않는 짐’을 풀어야 할 시간이 도래했다.
◆20년 쌓은 기반, 성과는 여전히 물음표
탄소산업은 전북이 가장 먼저 시작하고 가장 오래 투자해온 미래소재 산업이다. 전주시는 지난 20여년간 탄소소재의 국산화를 목표로 공공 연구기관과 인프라를 집적하며 ‘국가탄소산업허브’ 기반을 구축해왔다.
전북은 현재 원료부터 소재 가공, 시험·실증·인증, 부품 적용까지 가능한 국내 유일의 전주기 체계를 갖췄다. 기업이 한 지역 안에서 기술 개발부터 상용화, 인증까지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구조다.
하지만 이렇게 오랜 시간에 걸쳐 쌓아온 기반에도 불구하고 실제 산업 성과는 여전히 제한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관련 예산과 연구는 지속돼 왔지만 완성품 생산과 글로벌 공급망 연결이 미흡해 기업의 투자로 이어지는 데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중소기업 위주의 산업 구조 속에서 기업 유치와 고용 확대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점은 지역경제 차원에서도 숙제로 남는다.
최재길 도 이차전지탄소산업과장은 “시험·인증·실증 장비 등 전주기 인프라를 20년 넘게 쌓아 왔지만 완성형 산업 구조로 연결되지 않으면 공공 투자만 누적되고 산업 효과는 떨어진다”고 말했다.
◆전략산업 연결 ‘탄소 확장성’ 시험대
전북이 구축한 탄소소재 기반을 실질적인 산업 생태계로 확장하기 위한 핵심 전략은 ‘연계’다. 단순 소재 개발을 넘어 방위산업과 우주항공, 이차전지, 수소모빌리티 등 고부가가치 전방산업과의 연결 고리를 형성하는 것이 과제로 떠올랐다.
전주시는 국방 분야 진출을 위해 탄소복합재 부품 시험·인증 체계를 고도화하고 탄소방산클러스터를 중심으로 기업 유치와 납품 구조 설계에 나섰다.
이와 함께 전라북도는 군산·새만금권역의 우주항공 및 전기차 산업과의 융합을 통해 권역 간 연계 모델을 구상 중이다. 그러나 방산·항공 등 완성품 산업 기반이 지역 내 충분히 자리 잡지 못한 현실은 연계 효과를 제한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조은주 전주시 탄소산업과 팀장은 “완제품 제조기업이 주변에 부족하다 보니 전북에서 만든 부품이 최종 제품으로 연결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앞으로는 인프라에 더해 실질적 수요를 발생시킬 수 있는 전방산업 유치와 구조 조정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벼운 소재’가 만든 무거운 기술 과제
탄소소재 산업이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핵심 원천기술 확보와 재활용 기술 개발이 동시에 뒷받침돼야 한다.
탄소섬유는 철보다 가볍고 강도는 수 배에 달해 항공·모빌리티 산업의 핵심 경량소재로 주목받지만 대부분 수입 원료에 의존하고 있으며 폐자원 순환 시스템도 미비한 상황이다.
전북은 국산 탄소섬유 ‘탄섬(TANSOME)’을 기반으로 부품·제품 개발까지 연계하는 구조를 갖췄지만 아직 양산과 품질 경쟁력 면에서 글로벌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평가다.
이에 따라 시험·평가·인증 체계를 활용한 기술 고도화, 폐소재 회수 및 재활용 모델 구축이 전북 탄소산업의 다음 단계로 제시되고 있다.
최 과장은 “앞으로는 원천소재 기술도 중요하지만 제품 사용 이후 회수·재활용까지 포괄하는 전 주기적 기술 확보가 산업 고도화의 관건이 될 것”이라며 “그 과정에서 전북의 시험·실증 기반이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확장 막는 좁은 땅… ‘통합 생태계’ 절실
전북 탄소산업이 정체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선 산업공간의 구조 개편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현재 전주 탄소산업단지는 도심 내 위치한 소규모 부지에 조성돼 있어 입주 기업 수용력과 확장성이 모두 떨어진다는 한계가 있다.
특히 B2B 소재산업 특성상 한 지역에서 부품-가공-적용-완제품까지 유기적으로 연계돼야 하지만 분산된 산업공간 구조로 인해 ‘한 지붕 아래’ 생태계 조성이 어렵다는 구조적 한계가 지적된다. 이에 따라 전주·완주 간 행정 경계를 넘어 탄소기업과 관련 인프라를 아우를 수 있는 통합단지 조성 필요성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최 과장은 “중소기업 위주의 분절된 구조에서 벗어나려면 전주와 완주에 나뉜 인프라를 하나의 산업 생태계로 통합할 수 있는 물리적 공간과 정책 조율이 동시에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선도 기업은 온다, 문제는 ‘지속 가능성’
탄소산업의 고도화를 이끌 민간 기업 유치는 산업 생태계 완성의 결정적 변수다. 최근 효성첨단소재가 전주에 1000억원 규모의 탄소섬유 신규 투자를 결정하면서 전북 탄소산업의 가능성에도 다시 관심이 모이고 있다.
효성은 전북이 축적해온 공공 인프라와 시험·인증 체계를 높이 평가해 신규 부지를 확보했고 올해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생산시설 구축에 나설 계획이다.
하지만 이러한 대형 투자도 신뢰 기반과 중장기 정책 없이는 지속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 팀장은 “이번 투자 유치는 20년간 지역이 구축해온 기반에 대한 신뢰에서 출발한 것이며 지속 가능한 산업으로 만들기 위해선 단순 부지 제공을 넘어 공공성과 기술 기반을 꾸준히 유지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효성과 같은 선도 기업의 진입을 계기로 중소기업과 지역산업을 동반 성장시킬 수 있는 구조를 어떻게 설계할지가 향후 전북 탄소산업의 지속성 여부를 가를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20년 투자 이제 구조를 물을 때
전북은 누구보다 먼저 탄소산업에 투자했고 가장 오래 기반을 다져왔다. 하지만 “산업은 남고 효과는 보이지 않는다”는 회의적 평가가 여전히 존재한다. 그 이유는 공공 중심의 축적에만 머물렀기 때문이다.
김경재 한국탄소산업진흥원 전략실장은 “전북은 탄소소재 산업의 거점이자 인프라의 출발지로 국가산업화의 방향성을 설계할 수 있는 중심에 있다”며 “이제는 지역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방산·항공·모빌리티 등 국가 전략산업과의 유기적 연계를 통해 전북이 가진 기반이 국가적 성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구조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0년간 이어진 인프라 투자와 기술개발이 시장 중심의 산업 구조로 연결되지 못하면서 탄소는 존재하되 실체가 희미한 ‘보이지 않는 산업’이 됐다는 지적도 있다.
최재길 도 이차전지탄소산업과장은 “탄소산업은 전북에서 공기처럼 중요하고 꼭 필요한 기반 산업이지만 지금처럼 흐름을 유지하는 데 그친다면 국민적 공감과 국가 산업으로의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따라서 향후 전북의 탄소 전략은 기술 인프라를 넘어 산업 구조 전반의 리디자인, 즉 ‘국가산업으로서의 재설계’가 필요하다는 데 방점이 찍힌다.
전북이 ‘보이지 않는 산업’의 무게를 짊어지며 다음 10년을 준비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