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 GMO 공약 지킬까… “올해 수입 늘고 표시는 제자리”

트럼프 지시 후 美, 韓에 GMO 수입절차 간소화 압박 국회, ‘GMO 완전표시제’ 추진… “선택은 소비자 몫” “소비자 먹는 음식, 원재료조차 모른다” 불신 커져

2025-07-15     양효선 기자
[천지일보=김지헌 기자] GMO 완전표시제 시민청원단이 서울 종로구 광화문 교보문고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GMO 사용식품, 예외 없이 표시하라”는 피켓을 들고 GMO 완전표시제 도입을 촉구하고 있다. 이들은 학교급식에서의 GMO 퇴출과 소비자 알 권리 보장을 위한 국민청원 캠페인을 선포했다. ⓒ천지일보DB

[천지일보=양효선 기자] 이재명 정부가 대선 공약으로 제시한 GMO(유전자변형생물체) 완전표시제 도입을 둘러싸고 찬반 논란이 뜨겁다. 식품 전문가들은 막대한 사회적 비용에 비해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경고하는 반면, 국회는 소비자 알 권리 보장을 위한 입법을 추진하고 있어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반면 국회는 표시 확대를 의무화하는 입법을 시도 중이며 미국은 한국 정부에 수입 승인 절차를 단축하라고 공개 압박하고 있다.

이 가운데 국내 식품기업은 급망 혼란과 제조단가 상승이 우려된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어 공약 이행과 산업계 대응 사이에서 정부가 어떤 선택을 내릴지 주목된다.

한국식품산업협회가 지난 2일 광주에서 개최한 '2025년 한국식품과학회 국제학술대회'에서 식품 전문가들은 GMO 완전표시제의 문제점을 집중 제기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는 “GMO 완전표시제를 시행하면 현재 우리가 먹는 식품의 대부분이 표시 대상이 된다”며 “간장, 식용유, 전분당이 안 들어간 식품이 없어 시중 모든 제품에 GMO 표시를 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특히 이 교수는 “유럽식 완전표시제를 제대로 운영하려면 ‘고유식별번호’ 시스템이 필수인데, 이 시스템을 도입하는 데 드는 비용은 미국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지적했다. 고유식별번호 시스템은 모든 GMO에 국제 표준화된 식별 코드를 부여하고 농장에서 소매점까지 전 과정을 추적 관리하는 체계다.

이철호 고려대 명예교수도 “완전표시제가 소비자단체 요구대로 정해지면 미국산 소고기 광우병 사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사회적 동요가 일어날 것”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GMO 수입 승인 품목 262개 증가… 대형 로펌까지 가세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GMO 식품용 승인 품목은 262개에 달한다. 지난해 말보다 8개 늘었으며 옥수수·콩·카놀라 등이 주를 이룬다. 이는 지난해 12월 기준 254개보다 증가한 수치로, 국내 GMO 수입 승인 흐름이 해마다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이한 점은 승인 신청 대리인으로 대형 로펌 ‘법무법인 광장’이 참여했다는 점이다. 바이엘, 신젠타 등 글로벌 농화학기업을 대리해온 광장은 이번에도 카놀라 GMO의 승인을 맡았다. 이제는 식품이나 농업의 문제가 아니라 법률과 무역의 싸움으로 번지고 있는 셈이다.

◆현행 표시제 한계… 소비자, ‘모른 채 섭취’

현행 표시제는 최종 제품에 GMO DNA나 단백질이 남아있지 않으면 표시 의무가 없다. 때문에 간장, 옥수수시럽, 포도당, 식용유 등은 GMO를 썼더라도 ‘표시 없음’ 상태로 유통되고 있다.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는 최근 식품과학회 학술대회에서 “GMO는 과학보다 정책의 문제”라며 “소비자의 알 권리는 당연히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희대 김해영 교수도 “검출 기술은 이미 발전한 만큼 표시 기준도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지연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사무총장(오른쪽)이 3월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GMO 감자 수입 승인 반대 기자회견’에서 정부의 GMO 수입 확대 움직임을 비판하며 발언하고 있다. 함께 참석한 시민단체 활동가들도 “GMO 감자 승인 절차 중단하라”는 손피켓을 들고 정부에 강력한 대응을 요구했다. (출처: 뉴시스) 

◆美 압박 vs 국회 입법 추진

미국은 한국 정부에 GMO 수입 절차 간소화를 압박하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 측은 “수년이 걸리는 한국의 승인 절차가 비관세 장벽 역할을 한다”며 최근 GMO 감자(SPS-Y9) 수입 승인과 관련해 속도 조절을 공개 요청했다. 미국의 다국적 농업 기업들은 한국 시장 진입을 확대하려는 입장이며 이에 따라 환경 위해성 심사나 유통허가 절차의 신속화를 촉구하고 있다.

이는 한국만의 일이 아니다. 인도 또한 GM 사료용 대두박 등 미국산 농산물의 수입 완화를 요구받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은 무역협상 전반에서 다수 국가를 상대로 GMO 승인 기준 완화를 압박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반면 국내에서는 GMO 표시 확대를 골자로 한 입법이 추진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송옥주 의원은 DNA 잔류 여부와 무관하게 GMO 사용 사실 자체를 표시하고 외식업체 식재료까지 확대 적용하는 식품위생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위반 시 과태료 부과도 포함된다.

송 의원 측은 “미국산 GMO 감자 수입이 임박한 상황에서 최소한의 소비자 보호 장치는 필요하다”고 밝혔다. 

같은 당 남인순 의원도 올해 1월 GMO 완전표시제를 품목별·단계적으로 도입하고 Non-GMO 표시제를 함께 도입하는 ‘식품위생법 개정안’과 ‘건강기능식품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남 의원은 “우리나라는 세계 2위 GMO 수입국으로 2023년 대두 77.3%, 옥수수 14.3%, 유채 28.0%가 GMO인 상황에서 현행 표시제는 소비자의 알권리와 선택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식약처가 2018년 국민청원 이후 28회에 걸쳐 실무협의회를 운영했으나 비의도적 혼입치 ‘0.9% 이하’ 인정 외에는 합의에 이르지 못해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법 개정을 추진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당시 SNS를 통해 ‘농업은 국가 안보의 최전선’이라며 ▲GMO 완전표시제 ▲친환경 유기농업 및 저탄소 농업 확대 ▲양곡관리법 개정 등을 공약한 바 있다. 특히 ‘소비자의 알 권리 보장을 위해 GMO 완전표시제를 단계적으로 확대하겠다’고 약속했으며 이 공약은 현행 식품표시제 개혁의 핵심으로 꼽혀왔다. 하지만 아직까지 제도화 움직임은 본격화되지 않았다.

GMO 식품 수입은 계속 늘고 있고 글로벌 기업들은 법무법인을 통해 보다 정교한 전략으로 접근하고 있다. 반면 소비자는 여전히 ‘무엇을 먹는지’ 모른 채 제품을 고른다. 공약 이행과 소비자 권리, 산업계 부담 사이의 복잡한 줄다리기 속에서 이재명 정부의 선택이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