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인사이드ㅣ전북] “함께 성장” vs “정치 야욕”… 전주·완주 통합 갈등

2025-07-09     김동현 기자

주민 반대에 삭발 투쟁까지

통합 논의, 주민투표로 번져

상생 방안 불신과 반발 여전

 

지사 “통합은 전북의 미래”

군의회 “일방 추진 결사 반대” 

[천지일보 전북=김동현 기자] 전주·완주 통합을 두고 역사 복원과 지역 발전을 주장하는 찬성 측과 삶터를 지키려는 반대 측의 갈등이 깊어지는 가운데 이번 논의가 전북의 미래를 여는 길이 될지 또 다른 상처를 남길지 주목된다. 사진은 지난달 25일 김관영 전북지사의 완주군민과의 대화가 예정된 가운데 완주군민들이 완주·전주 통합을 반대하는 집회를 벌이고 있는 모습. ⓒ천지일보 2025.07.08.

[천지일보 전북=김동현 기자] 전북 전주와 완주의 통합 추진이 주민과 지방정부, 시민단체 간 갈등을 격화시키고 있다. 30년 넘게 실패를 거듭해온 통합 논의가 이번엔 주민투표로 불붙었다. 찬성 측은 지역 경쟁력 강화와 경제적 시너지 효과를 강조하지만 반대 측은 지역 정체성 훼손과 불공정 발전, 민주적 정당성 부족을 우려한다. 의견 대립이 깊어지면서 두 지역의 통합이 ‘함께 성장’으로 이어질지, 아니면 또 다른 상처만 남길지 전북은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우리 잘 살고 있는데 굳이 통합해야 하나.”

지난달 25일 김관영 전북도지사 방문을 앞두고 본지가 찾은 완주군청 앞 광장은 이른 아침부터 긴장감으로 가득 찼다. 대형 스피커 앞에 모인 수백명의 군민들은 “통합 반대”를 외치며 꽹과리를 울렸고 완주군의회 의원 10명은 삭발을 감행했다.

◆“통합해봤자 우리만 손해”

군청 앞 현장은 그야말로 전쟁터 같았다. 수백명의 군민들이 꽹과리를 치며 “통합 반대”를 외쳤다. 붉은 머리띠를 두르고 팻말을 든 사람들, 경찰과 몸을 맞댄 사람들, 손팻말을 흔들며 목이 터져라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 그들의 얼굴에는 ‘완주를 지킨다’는 절박함이 서려 있었다.

서남용 완주·전주 통합반대특별위원장은 “김관영 도지사는 자신의 정치적 야욕 때문에 우리 완주군민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통합을 추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주민투표가 아니라 그보다 더한 것이라도 반드시 압도적으로 부결될 것”이라며 “9번의 여론조사를 숨기고 발표하지 않는 것은 완주군민의 반대 의지가 높다는 증거 아니겠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경애 의원은 “완주를 사랑하기 때문에 삭발을 시도했다. 여러분과 함께 완주를 지키겠다”고 외쳤고 심부건 의원도 “김관영 단 한 사람이 우리 완주를 뺏을 수 없다. 우리는 반드시 완주를 지킬 것”이라고 소리쳤다. 성중기 의원은 “우리가 완주를 지키지 않으면 누가 지키겠느냐. 오늘 힘을 보여주고 앞으로도 똘똘 뭉치자”고 호소했다.

현장에 모인 군민들은 머리띠를 고쳐 매며 “통합은 필요 없다”고 입을 모았다. 유점순(가명, 65)씨는 “우리 잘 살고 있는데 통합해봤자 우리 좋을 거 하나도 없다”며 “쓰레기 소각장 같은 안 좋은 것만 다 몰려오고 빚만 꽉 차 있는 전주와 통합하면 우리만 손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절대 통합 안 한다”며 “이대로 살게 그냥 놔두라”고 덧붙였다.

이순자(60대)씨는 “군을 지키고 자손을 지키기 위해 나왔다”며 “시골 마을 곳곳에 혐오시설만 다 들어올 판이다. 익산도 통합해서 좋은 게 뭐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이돈승 김대중재단 완주군지회장(66, 남)은 “설득하러 오는 거다. 이건 대화가 아니다”며 “우리는 근본적으로 막아야 한다는 차원에서 집회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사는 중재자,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하는데 통합을 주도하는 건 정치적 욕심”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전주 부채가 6000억인데 1년 새 2000억 늘었다. 자기들 빚도 못 갚는 사람들이 우리를 뭘 도와주냐”며 “완주는 10만명을 돌파했고 블루오션인데 전주랑 합치자는 건 전주가 완주를 무시하는 것”이라고 했다. 또 “통합은 소모적이고 군민 분열만 낳는다. 당장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김관영 도지사의 군민과의 대화는 끝내 성사되지 않았다. 기자간담회 후 차량으로 복귀하는 과정에서도 군민들과 군의원들의 거센 반발이 이어졌다. 김 지사가 탑승한 차량을 둘러싼 군의원과 군민들은 차량의 이동을 막고 ‘완주를 지키자! 통합반대!’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항의를 지속했다. 김 지사가 탑승한 차량은 경찰력이 출동해 현장을 정리한 뒤에야 현장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

송병주 완주·전주통합반대대책위원회 선임대표는 “김관영 도지사가 물러나는 것 자체가 작은 승리지만 아직 끝난 것은 아니다”며 “주민투표에서 반드시 승리하기 위해 가족과 이웃에게도 반대 의지를 전달해 달라”고 당부했다.

전주·완주 통합을 두고 역사 복원과 지역 발전을 주장하는 찬성 측과 삶터를 지키려는 반대 측의 갈등이 깊어지는 가운데 이번 논의가 전북의 미래를 여는 길이 될지 또 다른 상처를 남길지 주목된다. 사진은 지난 2일 완주군민현의회와 전주시민협의윈원회가 완주·전주 상생발전방안 합의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제공: 전주시청) ⓒ천지일보 2025.07.08.

◆상생발전 방안, 해결책 될지

완주군민협의회와 전주시민협의회는 최근 완주·전주 통합 추진을 위한 105개 상생발전 방안에 최종 합의했다. 양 협의회는 지난 2일 전북도의회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북도, 전주시, 완주군에 상생발전 방안을 수용할 것을 건의했다.

상생 방안에는 ▲통합시청사·시의회청사 완주지역 건립 ▲통합 인센티브 완주지역 전액 투자 ▲완주군민 동의 없는 혐오·기피 시설 이전 불가 ▲완주군 의원수 최소 11명 지역구 12년 유지 ▲농정국 신규 설치 및 농정국장 완주군 출신 보직 등 완주군민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이 포함됐다.

또 ▲백화점·쇼핑몰 등 대형 상업시설 유치 ▲에코시티~삼봉지구 구간 BRT 노선 연장 ▲행정구 4개 설치 행정안전부 협의 ▲공정한 공무원 인사기준 마련 등 새로운 지역발전 동력을 얻기 위한 방안도 담겼다.

박진상 전주시민협의회 위원장은 “지난 수개월간 통합을 위해 한마음 한뜻으로 힘을 모아주신 분께 감사드린다”며 “시·군의 상생발전을 위한 방안과 완주군민의 마음을 열기 위한 다양한 사업들에 대해서 법령개정 등 절차와 주민 요구를 모두 고려해 적극적으로 수용해달라”고 말했다.

나유인 완주군민협의회 공동대표는 “완주·전주 통합은 어느 한쪽이 작아지는 것이 아닌 함께 커지는 과정”이라며 “행정구역의 경계를 허물고 하나의 공동체로서 잘 사는 길로 나아가자”고 밝혔다.

전주·완주 통합을 두고 역사 복원과 지역 발전을 주장하는 찬성 측과 삶터를 지키려는 반대 측의 갈등이 깊어지는 가운데 이번 논의가 전북의 미래를 여는 길이 될지 또 다른 상처를 남길지 주목된다. 사진은 지난 3일 우범기 전주시장이 시청 회의실에서 민선 8기 3주년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제공: 전주시청) ⓒ천지일보 2025.07.08.

◆“통합, 전북 미래 위한 과제”

김관영 도지사와 우범기 전주시장은 완주·전주 통합을 전북의 미래를 위한 과제이자 지방소멸 대응의 마지막 기회로 규정하며 주민 뜻을 존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지사는 3주년 기자회견에서 “전북은 새로운 기회를 맞고 있으며 완주·전주 통합은 반드시 풀어나가야 할 미완의 과제”라며 “2036 전주올림픽 유치, 대광법 통과, 새 정부 출범과 맞물려 통합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전주·완주 통합에 따른 완주군의 이익을 강조하며 “전주와 완주가 어떤 미래를 선택할지 서로 묻고 답해야 한다. 주민 뜻을 최우선으로 존중하고 역지사지의 자세로 소통하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최근 완주군민과의 대화가 무산된 것과 관련해서는 “앞으로는 개별·소그룹 중심의 자연스러운 소통 기회를 만들어가겠다”고 설명했다.

우범기 전주시장도 최근 3주년 기자회견에서 “완주와 전주는 다시 하나가 돼야 한다”며 “지방소멸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전주의 생존이 달린 문제이자 광역도시로 나아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강조했다.

이어 “가장 중요한 것은 소통과 이해”라며 “민간단체들과 협력해 완주군민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진정성 있는 대화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한 최근 완주군의회가 제안한 통합 TV 토론에 대해 “완주군민의 뜻이 가장 중요하다. 군민들이 냉철하게 판단할 수 있도록 설명과 토론이 필요하다”며 “방식과 시기 등은 의장과 협의해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우범기 시장은 7일 기자회견을 갖고 “완주군민과 언제든 소통하겠다”면서 완주군민협의회와 전주시민협의위원회가 공동 건의한 상생방안을 적극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앞으로 시는 상생방안 105개 사업에 대해 자체적으로 추진해 나갈 수 있는 사업의 경우 장·단기 분류를 통한 실행 계획을 수립하고 재원 대책을 강구할 방침이다.

또 학군 조정과 대기업·대형병원·상업시설 유치와 같이 타 기관 및 민간의 역할이 필요한 사업들에 대해서는 지속적인 건의와 협력을 통해 상생발전방안이 원활히 추진될 수 있도록 검토할 구상이다.

우 시장은 “지역의 미래가 완전히 새롭게 달라질 완주·전주 통합을 향해 우리는 또 한 번 중대한 걸음을 내디뎠다”며 “이번 통합의 논의는 완주군민이 먼저 뜻을 모아 상생발전 방안을 제안하고 완주군민과 전주시민이 함께 모여 고민하고 도전하는 민의(民意)의 통합이라는 점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시작, 다른 걸음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통합으로 인해 행여 손해가 되는 일이 있다면 해결 방안을 모색하고 오해하는 부분이 있다면 대화를 통해 풀어나가자”며 “전주시는 완주군민, 전주시민과 함께 주민의 뜻을 최우선으로 민의의 통합이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진심을 다해 끝까지 나아가겠다”고 덧붙였다.

전주·완주 통합을 두고 역사 복원과 지역 발전을 주장하는 찬성 측과 삶터를 지키려는 반대 측의 갈등이 깊어지는 가운데 이번 논의가 전북의 미래를 여는 길이 될지 또 다른 상처를 남길지 주목된다. 사진은 지난 3일 유희태 완주군수가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제공: 완주군청) ⓒ천지일보 2025.07.08.

◆“상생방안, 통합 전제 일방 계획”

유희태 완주군수와 완주군의회는 전주·완주 통합 추진과 상생발전 방안을 강력히 비판하며 주민 동의 없는 통합은 어떤 형태로도 용납할 수 없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유 군수는 지난 3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완주군은 일관되게 일방적인 통합 추진을 반대해 왔고 이번 상생발전 105개 방안 역시 통합을 전제로 한 일방적 계획에 불과하다”며 “군민이 배제된 통합 논의는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상생발전 방안의 문제점으로 ▲통합 전제를 깐 일방성 ▲법적 근거·추진 일정·예산 확보 방안 등 구체성 부족 ▲군민 의견 수렴 부재 ▲대규모 사업 재정부담 전가 가능성 등을 지적했다. 특히 그는 “충분한 의견 수렴 없이 특정 단체나 일부 찬성 측 입장만 반영됐다”며 “군 지역 주민이 도시지역 부채까지 떠안을 수 있는 불공정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같은날 유의식 의장을 비롯한 군의원들도 전북도의회 브리핑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통합 추진에 대해 “정치권 공약에서 비롯된 일방적 시도”라며 “주인이 빠진 통합, 민주주의가 사라지는 통합 논의는 반드시 폐기돼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군의회는 “완주·전주 행정통합은 김관영 도지사와 우범기 전주시장이 선거 공약으로 촉발한 것일 뿐 군민의 요구가 아니다”며 “3만 3000여명이 넘는 완주군민이 반대한다는 청원을 제출했는데도 철저히 무시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완주군민의 비협조로 대화가 어렵다며 여론을 호도하고 주의를 갈라놓고 있다”며 “주민이 동의하지 않는 완주·전주 행정 통합이라는 썩은 동아줄을 붙잡고 전라북도 전체를 끌어내리는 행위를 즉각 멈추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울러 군의회는 “행정의 책임자들이 직접 시민과 주민들이 보는 공개 토론회장에서 함께 토론을 했으면 좋겠다”며 TV 토론에 임할 것을 제안했다.

전주·완주 통합을 두고 역사 복원과 지역 발전을 주장하는 찬성 측과 삶터를 지키려는 반대 측의 갈등이 깊어지는 가운데 이번 논의가 전북의 미래를 여는 길이 될지 또 다른 상처를 남길지 주목된다. 사진은 완주·전주 통합 반대·찬성 측 입장 표. ⓒ천지일보 2025.07.08.

◆“전북 발전 첫걸음이자 마지막 기회”

나유인 완주군민협의회 공동대표는 최근 본지와의 통화에서 전주·완주 통합 추진을 두고 “이번 통합은 일제가 갈라놓은 전주와 완주를 원래대로 되돌리는 역사 복원”이라며 “관 주도로 추진된 과거와 달리 주민들이 직접 나서 주민투표를 청구하게 됐다”고 밝혔다.

나 대표는 “1935년 일제가 전주와 완주를 분할한 것을 되돌리자는 의미에서 역사복원추진위원회를 만들고 통합운동을 시작했다”며 “과거에는 도지사, 시장, 군수 등이 통합 공약을 내걸었지만 형식적 활동에 그쳤다. 차기 통합시장 선거를 치르려면 2년 전부터 주민투표가 이뤄져야 한다고 판단해 주민주도로 전환했다”고 말했다.

그는 통합의 긍정적 효과로 청주·청원, 광주·광산 등 기존 통합 사례를 들며 “세계적 추세가 광역도시화로 가고 있다. 전주와 완주가 통합하면 기업 유치와 교육 경쟁력, 교통망 확대, 농업·복지 혜택 등에서 큰 효과를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번에 발표한 105개 상생발전방안과 관련해 “혐오시설 이전 금지, 통합시청사 완주 이전, 복지 유지·확대, 공무원 인사 보장 등 구체적 요구를 담았다”며 “청주·청원처럼 공동 감시기구를 만들어 이행 여부를 지속 점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실현 가능성을 높이려면 사업별 구체적 예산과 추진 일정을 수립하고 법과 조례를 제정해 실효성을 담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이번 통합이 무산되면 전북의 미래는 없을 것이다. 전주·완주 통합은 전북 발전의 첫걸음이자 마지막 기회”라고 강조했다.

다시 불붙은 전주·완주 통합 논쟁은 일제가 갈라놓은 경계를 되돌리자는 외침과 지켜낸 삶터를 지키겠다는 외침이 맞서고 있다. 이번 통합이 ‘함께 커지는 길’이 될지 아니면 또다시 지역사회를 갈라놓는 깊은 상처로 남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찬반으로 갈라진 민심을 하나로 모으는 것, 그것이 통합 논의의 출발점이자 전북이 풀어야 할 가장 큰 과제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