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in] 국제종교연합 ‘종교평화선언문’, 21세기 아쇼카 선언과 다른 점은?
불교·기독교·천주교 성지자‧신도 부산 UN기념공원서 선언문 선포 불교계 불발 종교평화선언 대조
[천지일보=강수경 기자] 불교·기독교·천주교 성직자와 신자들이 함께하는 국제종교연합이 한국전쟁 75주년을 맞아 지난 26일 부산 남구 유엔기념공원에서 ‘종교평화선언문’을 발표했다. 세계 유일의 유엔군 묘지가 자리한 이곳에서 진행된 선언은 종교·인종·정치를 초월해 한반도 및 전 세계 평화를 실현하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같은 이름의 ‘종교평화선언’이 14년 전 불발됐던 전력을 되짚어보면 고무적이다.
이날 행사에는 국제종교연합 이사장 정여스님(범어사 금정총림 방장)을 비롯해 김계춘 신부(천주교 부산교구), 임영문 목사(평화교회), 정오스님(범어사 주지), 신요안 신부(안락성당), 정근 장로(누가교회) 등 70여명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종교는 인류 평화와 치유의 도구”라며 전쟁과 혐오를 넘어 상생과 공존의 길을 찾겠다는 뜻을 선언문에 담았다.
◆ “종교 벽 넘어 세계 평화로” 공존 길 찾는 종교계
선언문 낭독은 각 종교 대표자들이 돌아가며 진행했다. 국제종교연합 고문 김계춘 신부는 “평화를 사랑하고 종교의 벽을 넘어서 온 세상을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 가는 데 종교인들이 앞장서 나가야 한다”고 화두를 던졌다. 이사장 정여스님은 “사람의 인성을 고귀하게 하고, 온 세상을 평화로 물들여 가기 위해서는 자연과 같이 서로가 공존하고 상생하여 지구 공동체를 형성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공동회장 임영문 목사는 “종교 간의 벽을 넘어 각 종교 간의 의식과 가르침을 인정하고 존중함으로 온 세상을 사랑과 평화로 물들여 나가야 한다”고 말했고, 정근 운영위원장은 “나와 이웃이 따로 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전부가 그물망처럼 연결된 것이며, 나 홀로 존재하는 것은 없는 것이다. 나와 이웃, 나와 사회, 나와 국가, 나와 우주, 나와 자연, 종교와 종교, 모든 종교도 함께 사랑으로 공존해 나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제종교연합은 2024년 12월 30일 부산시청에서 공식 창립총회를 개최하며 출범했다. 창립 당시부터 ‘종교의 벽을 넘어 평화를 실천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각 종교의 신념과 이념을 넘어 화합과 공존의 시대정신 실천을 강조해왔다.
◆ 14년 전엔 불발됐던 ‘종교평화선언’
이같은 목적으로 종교평화를 주장하며 서로를 존중하자고 외친 목소리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사실 종교계가 추진한 ‘종교평화선언’은 14년 전에도 있었다. 종교 간 연합이 아닌 불교계 내부에서 추진된 것이었다. 소위 ‘21세기 아쇼카 선언’으로 불린 종교평화선언문이었다. 아쇼카 대왕은 불교에 귀의해 비폭력‧평화‧자비의 정치를 실현하고 종교적 관용정책을 펼친 인물이다. 그의 역사적 행보에 빗대 아쇼카 선언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2011년 8월, 조계종 자성과쇄신결사추진본부(본부장 도법스님)가 초안을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도법스님은 “사람들의 근심과 걱정을 덜어 주어야 할 종교가 오히려 국민들의 근심을 안겨 주고 있다”며 “또 불교인들은 이웃 종교를 진정한 ‘이웃’으로 생각하는데 충분하지 못했다”고 반성했다. 이어 “종교마다 기본 교리는 다를 수 있지만 자신의 종교를 선전하느라 이웃 종교를 비난하는 것은 어떤 의도에서건 자신의 종교에 오히려 더 큰 해악을 가져다줄 것”이라면서 종교 간 대화와 화합을 호소했다.
하지만 선언의 내용에는 부처의 가르침과 다른 종교의 교리를 동등하게 인정하는 문구가 들어 있었고 이는 내부 반발을 샀다. 이에 결사본부는 종교평화선언 내용을 수정·보완해 발표하겠다고 밝혔지만 수정을 위한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또 다시 재추진 발언이 나오는 등 ‘불통’ 논란에도 휘말렸다. 불교계 내에서 합의를 이뤄내지 못한 채 결국 종교평화선언은 끝내 발표되지 못했다.
반면 이번 국제종교연합의 종교평화선언은 불교·기독교·천주교가 공동으로 합의해 선언문을 발표했고, 평화 실천의 의지를 구체적으로 드러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종교계는 종교가 갈등의 도구가 아닌 평화의 도구로서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를 실천하는 일만 남았다. 국제종교연합은 앞으로도 종교 간 연대와 화합을 통해 국내외 평화 실현과 갈등 해소에 기여하겠다는 방침이어서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