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슬림 30만 시대… 아직도 편견에 갇힌 한국 사회
사회적 편견과 오해 등으로 신분 노출이 두려운 신도들 사원건립반대 등 갈등 여전 “종교 자유, 헌법상 기본권” “차별 예방, 법적 보장해야”
[천지일보=김빛이나 기자] “라마단(이슬람 금식월)이 되면 혼자 조용히 기도하고 식사를 거릅니다. 회사 식당에서는 왜 안 먹냐고 묻지만 설명하기가 조심스러워요.”
서울의 한 기업에서 일하는 파키스탄 출신의 무슬림 노동자 A씨는 한국 사회에서 신앙을 지키는 일이 ‘조용한 투쟁’이라고 말한다. A씨의 모습은 한국에서 무슬림 인구가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우리 사회의 준비는 여전히 더딘 상태라는 점을 보여준다.
16일 문화체육관광부와 통계청 등에 따르면, 국내에 거주하는 무슬림 인구는 약 30만명으로 추산된다.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우즈베키스탄, 방글라데시, 이집트 등 이슬람권 국가에서 온 노동자, 유학생, 결혼이민자 등이 다수를 차지한다. 전국적으로 할랄 음식점, 이슬람 기도 공간(마스지드), 문화센터도 서서히 늘고 있지만 이들의 커뮤니티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존재’로 남아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올해 들어 이슬람에 대한 이해와 공존 가능성을 모색하는 학술 세미나와 공개 토론회가 잇따라 열리고 있다. 최근 열린 관련 행사에서는 공통적으로 이슬람교도들이 겪는 어려움, 제도적 공백, 혐오 표현 문제 등이 제기됐다.
한국이슬람학회와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 등 관련 단체들은 올해 상반기 이슬람과 한국 사회의 관계를 주제로 학술대회와 세미나를 잇따라 개최했다. 지난 4월 5일부터 5월 31일까지 서울 한국성서대 복음관에서는 ‘앗쌀람 봄 정기세미나’가 열려 이슬람의 경전과 사상, 근본주의 등에 대한 강의가 진행됐다. 지난 4월 7일부터 9일까지는 KWMA와 한국기독교이슬람선교회가 공동 주최한 ‘이슬람 재발견’ 국제세미나가 경기도 가평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 초청된 이슬람 변증 전문가 제이 스미스 박사는 “이슬람을 극단주의의 관점으로만 보는 시각은 오해”라며 “기독교와 마찬가지로 이슬람 안에도 온건파와 자유주의파가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30일에는 한국이슬람학회, 불교학연구회, 성공회대 신학연구원이 공동으로 서울에서 춘계 포럼을 열었다. 포럼 참석자들은 이슬람과 타 종교 간의 역사·문화·외교적 공존 전략을 주제로 논의를 이어갔다. 이 같은 공개 행사에선 무슬림 인구 증가에 따른 실질적 정책 변화의 필요성이 집중적으로 제기됐다.
포럼과 세미나에서 공통적으로 제기된 과제는 크게 네 가지였다. 이는 ▲일상에서 기도나 예배를 위한 공간 부족 ▲공공 급식에서의 할랄 식단 부재 ▲이슬람 사원 건립 반대 등 혐오 표현의 확산 ▲공적 영역에서의 종교 감수성 부족이다.
서울시립대, 한국외대 등 일부 대학이 무슬림 전용 기도 공간을 마련한 사례가 소개되며 대학·공공기관의 인식 개선 필요성이 강조됐지만, 여전히 다수의 교육기관과 기업은 공간 제공에 소극적이거나 내부 반대 여론을 우려해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무슬림 사원 건립도 한국에선 쉬운 일이 아니다. 무슬림 사원 건립을 둘러싼 지역 갈등은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대구에서는 이슬람 사원 건립에 대해 주민 반대가 이어지며 공사 중단, 행정소송으로 비화된 사례도 있다.
한국이슬람학회는 보고서를 통해 “정부의 다문화 정책은 주로 결혼이민자 중심에 머물러 있으며 종교적 소수자에 대한 고려는 거의 전무하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단순히 무슬림 인구가 늘었다는 사실보다 이들이 ‘보이는 존재’로서 사회에서 존중받고 실질적인 권리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국가인권위원회 관계자도 “종교의 자유는 헌법상 기본권”이라며 “공공기관부터 종교 감수성을 고려한 행정 지침과 교육, 차별 예방을 위한 제도적 기반 마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편 일부 시민단체와 지자체는 무슬림 문화와 신앙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한 소규모 교육, 축제, 라마단 행사 등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들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도록 제도적 뒷받침이 따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