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핑거스탬핑’ 작가, 구구킴… 김구 선생의 꿈을 향해 ‘뚜벅’

2025-05-20     이지예

☞영상으로도 구구킴 작가의 이야기를 만나 보시죠.

문화의 힘 가지길 바란 백범 존경

세계 유일 '핑거스탬핑' 기법 창시

손으로 다채롭게 찍는 ‘구구이즘’

[천지일보=이지예 기자] ‘구구킴’—이름부터 묘한 궁금증을 자아낸다. 그는 대한민국이 가장 부강한 나라가 아닌, 가장 높은 문화의 힘을 지닌 나라가 되길 바랐던 백범 김구 선생을 깊이 존경한다. 그런 뜻을 담아 ‘김구’의 ‘구(九)’를 한 번 더 반복해 스스로에게 ‘구구킴’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세계 유일의 ‘핑거스탬핑’ 작가로 불리는 그는, 긴 해외 활동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굳게 다져왔다. 누가 응원해 주지 않아도, 조국 대한민국은 언제나 가슴에 새겨져 있었고,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절박한 각오로 예술에 임했다. 그 치열한 시간이 모여 ‘핑거스탬핑’이라는 새로운 예술 장르를 탄생시켰다.

◆ “집을 팔지언정, 조국의 이름이 져선 안 됐죠”
문화 대통령이 되겠다는 꿈을 품고 자란 그는 시골에서 태어나 넉넉지 않은 형편 속에서 자랐다. 대학을 마치기 전, 일본 도쿄행을 결심했고 그곳에서 생활고를 이겨내며 본격적으로 예술가의 길을 걸었다.

“한국에 있을 때는 누군가를 이겨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도쿄에 가니 제가 ‘대한민국 사람’이라는 걸 절실히 느꼈습니다. 그들한테 지면, 대한민국이 지는 것 같았거든요.”

해외에서는 누구나 애국자가 된다는 말처럼, 그는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국가를 대표한다는 자존심을 걸었다. 어느 날 뉴욕의 교민으로부터 “왜 한국 작가들 작품은 이렇게 작냐”는 말을 들은 그는, 운반비가 비싸다는 핑계를 댈 수 없었다. 대신 그는 3미터가 넘는 대형 그림 70점을 완성해 LA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그 운반비를 마련하려고 집까지 팔았다.

이런 절박함 속에서, 그는 기존의 ‘핑거 페인팅’을 뛰어넘어 물기조차 쓰지 않는 새로운 기법을 개발했다. 손가락으로 안료를 찍어내는 독자적인 표현 방식, 바로 ‘핑거스탬핑’이다.

백범 김구 선생을 깊이 존경하는 구구킴 작가가 뱀범 선생을 핑거스탬핑으로 그린 자신의 작품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 제공: 구구문화진흥원) ⓒ천지일보 2025.05.20.

◆ 세계 미술계가 주목한 새로운 장르
18세기 동아시아에서 잠시 유행했던 ‘지두화(指頭畵)’는 손가락으로 그리는 그림의 초기 형태였지만 대중적으로 널리 퍼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구구킴은 이 기법에서 영감을 받아 완전히 새롭고 현대적인 방식으로 재탄생시켰다.

세계적인 주목도 뒤따랐다. 3년 전, 뉴욕 타임즈는 그의 작품을 지면 전면에 소개했고, 평론을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하버드대 미술관 큐레이터 로버트 D. 모우리 박사는 직접 공식 평론서를 수여했다. 그는 구구킴의 기법을 ‘핑거 페인팅’과 명확히 구분 지으며 ‘핑거 스탬핑’이라 명명했다.

구구킴 작가는 지금까지 총 61회의 개인전과 국내외에서 500여 차례 전시회에 초대받으며,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의 작품은 하버드대학교 미술관, 예일대학교 미술관, MaMa 갤러리, 중국 롱창그룹 등 세계적인 미술 기관과 기업에 소장돼 있다.
 

“훌륭한 예술가는 남다른 스타일이나 새로운 기법을 창조하는 이들입니다. 구구킴은 전통 기법에 현대적 혁신을 더한 예술가이며, 그의 작품은 감동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전합니다.”

—로버트 D. 모우리, 하버드대 미술관 아시아부 명예 주임

 
◆ 열 손가락으로 완성하는 ‘빼기의 예술’
구구킴의 작업 도구는 오직 열 개의 손가락뿐이다. 붓도, 물기도 쓰지 않는다. 물기가 없는 먹, 숯, 재 등의 안료를 손가락에 묻혀 하얀 캔버스에 수만 번 찍어낸다. 실수하면 수정도 덧칠도 안 된다. 오로지 집중력과 감각만이 필요한 시간이다.

작업이 계속되면 손가락 끝이 헐고, 터지고, 낫는 데만도 일주일 이상이 걸린다. 그는 손끝의 자투리 면적까지 짜내어 그림을 이어간다. 손가락 모두가 상처투성이가 되면, 컬러 작업으로 넘어간다. 컬러 그림은 물기가 있어 한결 그리기가 수월하다. “앞으로는 컬러 작품이 점점 많아질 것 같아요.”라며 웃었지만, 그의 손이 오래도록 건강하길 바란다.

구구킴의 작품 세계는 동심, 기독교, 불교, 클래식 등 순수미술 영역의 4개 섹션과 캐릭터 ‘구구걸스’를 포함해 총 5개 파트로 구성돼 있다. (사진 제공: 구구문화진흥원) ⓒ천지일보 2025.05.20.

◆ “성화든 아이의 낙서든, 결국 한 마음”
구구킴 작가의 성화는 흑백의 극적인 대비와 함께 사실적인 표현, 그리고 고전적인 화려함까지 고루 담겨 있다. 그는 종교가 없지만, 기독교와 불교의 성화를 꾸준히 그리고 있다.

“제 성화는 종교를 떠나 ‘마음의 상(像)’이에요. 나의 내면의 예수님과 부처님을 그리는 것이죠. 그들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행동도 조심하게 되고요.”

성화의 또 다른 묘미는 액자에 있다. 60년 된 고택의 문짝을 재활용하거나, 해외에서 공수한 금장 빈티지 액자를 사용하는 등 프레임 하나까지도 작품의 일부로 완성도를 높인다. 최근 그는 부처님의 얼굴을 주제로 한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데, 섬세한 무늬가 돋보이는 대형 작품으로 내달 말쯤 예정하는 GG2 갤러리 전시회의 메인 작품이 될 예정이다.

한편, 손가락이 지칠 때면 그는 컬러 그림을 그린다. 놀랍게도, 같은 사람이 그린 것이라 믿기 어려울 만큼 전혀 다른 분위기의 작품이 탄생한다. 장르나 표현의 경계를 두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아이처럼 천진한 감성이 담긴 이 컬러 그림들은 동심전이나 패션쇼 등을 통해 공개되며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구구킴의 작품 세계는 동심, 기독교, 불교, 클래식 등 순수미술 영역의 4개 섹션과 캐릭터 ‘구구걸스’를 포함해 총 5개 파트로 구성돼 있다. 그는 앞으로도 아이들과 함께 호흡하는 작가로 남고 싶다고 말한다.

“아이들이 제 그림을 보고 ‘어, 나보다 못 그렸네?’ 이런 반응이 나오면 제일 좋아요. 그게 제가 바라는 그림이에요.”

◆ ‘구구이즘’을 꽃피우는 공간, 구구문화진흥원
그는 자신의 작품을 온전히 걸 수 있는 공간을 직접 만들었다. 2018년 뉴욕 맨해튼에 하버드 미술관과 협력해 ‘구구아트뮤지엄’을 세웠고, 2021년엔 파주에 1,500평 규모의 ‘구구아트센터’를, 2022년에는 제주에 ‘구구아트뮤지엄’을 개관했다.

그러나 팬데믹의 여파는 컸다. 긴 침체 끝에 문을 닫아야 했다. 그는 다시 일어섰다. 올해 초, 성수동에 ‘구구문화진흥원’을 열고 새로운 시작을 알렸다. 이곳은 80~90년대 감성이 녹아 있는 문화공간이자, 교육부 인증 평생교육기관이기도 하다. 공간 구석구석 그가 직접 꾸미고, 그림과 조형물이 녹아든 진정한 ‘구구의 집’이다.

정원을 가꾸고, 살구나무에 꽃이 피고, 햇살 아래 어린 비둘기가 내려앉는 풍경 속에서 그는 예술의 꽃을 피우고 있다.

구구킴 작가가 구구문화진흥원 앞마당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5.05.20.

◆ 복도 짓고, 밥도 짓는 삶
올해 그는 성화 특별전과 함께 붓다와 그리스도가 만나는 대규모 기획전을 바티칸과 준비 중이다. 대구미술관에서는 아이들과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동심 전시회’를 열고, 12월엔 마이애미 전시도 앞두고 있다.

“복을 짓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나누고 보살피는 사람, 보살처럼요.”

그는 눈치 문화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만의 철학을 지켜내는 삶을 산다. 거룩함과 천진함을 동시에 담아내는 구구킴 작가. 그는 오늘도 ‘문화 대통령’의 길을 향해 손가락으로 예술을 짓고, 마음으로 길을 닦으며 묵묵히 나아가고 있다.

“원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습니다. 누군가 걸어가면, 그곳이 곧 길이 되죠. 흔히 내 그림을 ‘장르’ 안에 규정할 수 없는 작품이라고 합니다. 나의 손이 다채롭게 찍어내는 모든 것이 곧 나의 인생이며, 그것이 ‘구구이즘(GUGUISM)’입니다.”

—『두려움을 설렘으로』, 구구킴 에세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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