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칼럼] 내륙 대형산불 위험 상존, 시스템 달라져야

2025-03-27     천지일보

이문성 전 명지전문대 겸임교수/법학박사

미국 애리조나주는 과거 서부영화를 애호하던 카우보이 영화광들에게 낯익은 지역이다. 사막을 둘러싼 낮은 관목과 건조한 풀이 스텝 지역을 뒤덮고 있다. 한때 철없는 마초들이 꼭 가고 싶어 한 여행지이기도 했다.

2013년 발생한 이 지역의 야네힐 산불은 축구장 1100여개 면적을 한순간에 불바다로 만들었다. 이 와중에 진화를 위해 투입된 최정예 소방관 19명이 순직한 사고가 발생했다.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 ‘온리 더 브레이브’에서 주인공인 리더가 진화훈련 중인 소방대원에게 건조한 스텝을 가리키며 ‘연료’라고 크게 외친다. 높은 지대에서 보면 광활하고 멋진 풍광이지만, 건조한 관목과 수풀은 화재가 발생할 경우 연료 역할을 하며 이 지역을 불바다로 휩쓸 것이라고 경고한 장면이다.

영화에서 표현한 초대형 산불의 모습이 압권이지만, 그 속에서 사투를 벌이다 순직한 소방대원들의 모습을 보며 눈이 붉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대륙이 워낙 커서 사막과 초원 스텝을 보유한 태평양 건너 남의 나라 이야기로 치부할 만하지만,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지난 22일 경북 의성에서 시작된 산불은 초속 27m에 달하는 강풍을 타고 안동·청송 등 4개 군으로 확산했고, 27일 오전 기준으로 3만 7000여명이 대피했으며 26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비슷한 시간대에 경남 산청과 울산 울주군에도 대형 산불이 발생했다. 내륙 깊숙한 곳에서 동시다발로 일어난 이번 산불들은 이제 우리나라 그 어디도 산불로부터 안전하지 않다는 경고를 주고 있다.

강원도 동해안 인근에 발생한 산불의 경우는 바다를 접하고 있어서 확산의 범위가 상대적으로 좁은 편이다. 그러나 평지에 가까운 내륙의 산불은 산과 산을 이어가며 초대형 산불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위험성은 매우 크다. 

전문가들의 원인 분석을 보면 우선 지구온난화로 인한 이상고온과 가뭄이 산불 위험을 높이고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전 세계적으로 산불 발생 기간이 길어지고 건수와 피해도 증가하는 추세다. 

올해 들어 지난 1월 22일 발생한 미국 LA 대형 산불의 경우 시속 65마일(104㎞)에 달하는 돌풍과 건조한 기온에 영향을 받았다. 

이번 경북 의성 산불도 낮 기온이 20℃까지 오르고 거센 돌풍이 겹치면서 불길이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이제 산불을 단순 자연재해로 여길 수 없는 시점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산림 자체의 구조적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 우리나라 산림은 소나무 등 침엽수 일색이라 산불에 취약하다. 참나무 숲과 같은 활엽수림의 산불은 주로 바닥만 태우고 지나가지만, 침엽수림에서는 불길이 나무 꼭대기까지 번지는 수간화(樹幹火, Stem Fire)로 이어져 숲 전체가 불탄다.​ 오랜 기간 이어진 소나무 중심의 조림 정책이 대형 산불의 빌미가 됐다는 지적이 뼈아프다.

이번 대형 산불로 ​의성의 천년 고찰 고운사가 한순간에 전소됐다. 무엇보다 인명 피해가 너무 컸다. 내륙 산간 지역은 화재 발생 시 대피가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번 산불 희생자 상당수가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이었다.​

산불 대응을 위한 정부와 지자체의 시스템은 이러한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 현장의 목소리는 그렇지 못하다고 한다. 

산불 현장에는 산림청 진화대, 소방대, 군·경, 지자체 등이 한꺼번에 몰리지만, 이를 통합 지휘할 체계가 미비해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우선 산림청이 산불을 담당할 주무부서다. 그러나 화재진압에 관한 전문성이 부족한 편이다 보니, 소방방재청 소속 직원들이 산림청 진화대원 교육을 맡아서 진행하는 형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형 산불이 발생하면 산림청장이 총지휘를 맡아야 하지만, 정작 산불 진압 전문성이 부족해 초기 대응에 실패하는 경우가 상당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구조적 문제점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갈수록 대형화되는 산불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 정부와 지자체는 산불 대응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경북도는 전국 최초로 자체 119산불특수대응단을 발족해 운영하고 있다. 특수대응단은 2023년 1월 경북소방본부 산하 조직으로 발족해 운영되고 있다. 기후 위기로 발생하는 대형 산불 등으로 인한 인명과 산림 시설물 등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특화된 조직이다. 특수대응단은 도내 산불 55건을 모두 24시간 내 진화한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전문 인력과 장비를 갖추고 신속 대응한 결과로, 초동 대응 강화의 중요성을 보여준 사례다. 

전문가들은 산불 진화 주도권을 산림청에서 소방청으로 이관하고, 산불 전문 대응인력을 대폭 확충하는 등 구조적 개편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한덕수 권한대행이 26일 주재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의성 산불을 ‘국가적 엄중 상황’이라고 명시한 바 있다. 정부 차원에서 재난 위기에 대응해 산불 대비 예산과 조직을 재정비하고 일원화된 지휘체계를 확립한다면 대형 산불에도 훨씬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번 대형 산불이 마지막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이다. 매년 최악을 경신하고 있어 더 늦기 전에 적극적인 대응이 요구된다. 이제 정부는 산불 예방과 대응 체계를 획기적으로 강화하고, 국민들도 일상에서 불씨 관리에 각별히 주의하는 등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더 이상 “설마 우리 동네에 산불이 나겠어” 하는 안일함은 금물이다. 산불 위험이 상존하는 시대, 시스템을 바꾸고 모두가 경각심을 가져야 더 큰 참사를 막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