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인사이드] 트럼프발 폭탄 결국 터졌다… ‘철강 25% 관세’에 韓산업계 비상

철강 25% 관세 12일부로 시행 폭탄 맞은 산업 생존 전략 모색 보호무역 속 ‘기회·위기’ 공존 조선·방산은 절호의 기회 맞아 각국 대응에도 韓 구심점 없어 “정국 안정화 후 국익 집중해야”

2025-03-12     최혜인 기자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모든 수입산 철강·알루미늄 제품에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예고한 오는 12일을 하루 앞둔 11일 경기도 평택항에 철강 제품이 쌓여 있다. 정부와 철강 업계는 미국의 관세 부과에 따른 대미 철강 수출 감소를 우려하면서도 주요 철강 수출국의 경쟁 조건이 같아지면서 기회 요인도 상존한다고 보고 민관이 공조해 관세 리스크에 대응하고 기회를 발굴한다는 방침이다. (출처: 연합뉴스) 2025.03.12.
[핵심요약]

◆美 보호무역 강화에 韓산업 위기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12일부터 전 세계를 대상으로 철강·알루미늄 제품에 25% 관세를 부과하면서 한국 철강업계도 타격이 불가피해졌다. 2018년부터 시행된 쿼터제로 연간 263만톤에 대한 수출 무관세를 적용받던 한국 철강업계는 이제 가격 경쟁력까지 위협받으며 미국 시장 내 입지를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다만 미국이 대규모 LNG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철강 기자재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전망돼 한국 기업들이 고부가가치 특수 강재를 앞세워 새로운 기회를 잡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韓 정부, 관세 대응 총력전

한국 정부는 미국의 관세 정책과 상호관세 도입 움직임에 대응하기 위해 실무 협의체를 가동하고 협상력을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특히 트럼프 정부가 한국의 자동차 규제, 약가 정책, 정부 조달 등을 비관세 장벽으로 지적하며 추가 관세 부과 가능성을 시사한 만큼 정부는 적극적으로 협상에 나설 방침이다. 조선업계는 미 해군 함정 건조 프로젝트에서 한국 기업들이 수주 기회를 얻을 가능성이 커지면서 철강·조선업이 미국 시장에서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천지일보=최혜인 기자] 트럼프 대통령이 이끄는 미 행정부가 결국 12일(현지시간)부로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에 25% 관세를 부과하는 초강경 조치를 단행했다. 트럼프발(發) ‘관세 폭탄’ 등 보호무역주의가 본격화되면서 한국 산업계는 다시 한번 중대한 시험대에 오른 모양새다.

그중에서도 지난 2018년부터 시행된 쿼터제(수출량 제한)로 인해 연간 263만톤에 대한 물량에만 무관세를 적용받던 한국 철강업계는 이번 ‘관세 폭탄’으로 비상이 걸렸다. 미국 시장에서 한국산 철강 제품이 가격 경쟁력을 잃을 경우 수출길이 좁아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철강과 알루미늄이 산업군 전반적으로 쓰이고 있어 가격 경쟁력 차원에서는 단순히 철강산업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데 우려가 더해진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미국의 대규모 에너지 프로젝트가 확대되면서 한국 철강업계가 새로운 기회를 잡을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업계 한 관계자는 “현재 세계는 분기점에 있고 철강산업도 마찬가지”라며 “이제는 저렴하게 제품을 생산하는 국가에서 제품을 수입해온다는 간단한 ‘경제적’ 논리가 통하지 않는다. 거시적으로 미-중 패권 전쟁 속에 ‘알래스카 LNG 사업’과 ‘중국의 철강 생산능력 조정·감산’ 등이 핵심인데 우리나라의 대응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韓 철강업계, 美 시장에서 기회는

최근 우리 산업계 가장 큰 이슈 중 하나는 ‘알래스카 LNG 사업’이었다.

미국은 알래스카 천연가스 프로젝트를 포함해 11개의 LNG 프로젝트를 건설 전 단계에 두고 있다. 에너지 독립과 미국 제조업 보호를 핵심 기조로 삼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이 LNG 생산 확대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내비치면서 기대감이 차올랐다.

그도 그럴 것이 알래스카 프로젝트의 경우 한반도 남북 길이를 넘는 가스관 건설과 LNG 액화 터미널 구축이 핵심인데, 이는 대규모 철강 수요를 동반한다. AGDC(알래스카 가스라인 개발공사)에 따르면 이 프로젝트에는 약 1300㎞ 길이에 43만톤의 철강재가 필요하다. 오는 2031년부터 가스가 운반될 예정으로, 강관 수요 기간을 대략 4년 정도에 물량이 매년 같다고 가정하면 연간 11만톤 수요가 추가되는 셈이다.

이에 프로젝트에 들어가는 배관, 피팅, 고강도 특수 강재 등의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우리나라 철강업체들이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우리나라는 미국 내 시추 케이싱(강관)·배관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이 한국에서 수입한 시추 강관·배관 품목의 수입액은 4억 달러(약 5800억원)로, 캐나다와 대만을 제치고 선두에 자리매김했다. 한국 철강업체들이 미국 내에서 이미 높은 신뢰를 구축한 상태라는 얘기다.

특히 한국 철강업체들은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의 극저온 환경에서도 견딜 수 있는 고급 강재를 공급할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다. LNG 저장 탱크와 가스관에는 영하 162도의 극저온을 견디는 고강도 특수 합금강이 필요하다.

알래스카 푸르도베이의 유전 시설. (EPA/연합뉴스) 2025.03.12.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4일(현지시간) 집권 2기 첫 의회 연설에서 한국 등이 향후 알래스카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사업에 참여하는 것을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2025.03.12.

포스코는 세계 최초로 ‘고망간강’을 개발했다. 이 제품은 극저온에서도 강도와 내구성이 뛰어나며 기존 니켈 합금강보다 가격이 저렴해 경쟁력이 있다. 현대제철 역시 9% 니켈 함유 특수강판과 LNG 선박용 후판 등을 생산하며 LNG 플랜트 기자재 공급을 강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 철강업계는 단순한 가격 경쟁에서 벗어나 ‘고부가가치 제품’이라는 차별점을 내세워 미국 시장 공략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관세 폭탄에 맞불 관세 등 미국과 ‘관세 전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의 상황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달 들어 중국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국가발전개혁위원회(NDRC)가 철강 생산 감축 계획을 발표하면서다.

정확한 규모는 밝히지 않았지만 시장 컨센서스로는 5000만톤으로 추정된다. 여기에는 전 세계적으로 중국산 철강에 수입규제(반덤핑 관세 부과) 움직임이 급격하게 확대되면서 수출을 큰 폭으로 감소(3000~4000만톤 규모)시켜야 하는 상황과 건설용 강재 중심의 수요 부진 등이 반영됐다. 지난해 중국 조강(제강로에서 나온 그대로의 강철) 생산량이 약 10억톤(수출량 1억 1000톤 대비 11%)인 점을 고려해볼 때 조강 생산량의 5%가 줄어든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이유진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현재는 중국 구조조정 이슈가 한국 철강업체들의 수익성에 더 큰 요인으로 작동할 것이라 본다”며 “장기적으로 국제 질서 변화에 따라 주요 금속의 원료를 확보하고, 경제적으로는 비효율적이지만 주요 시장에 생산 기지를 확보하는 업체들에 수혜가 전망된다”고 내다봤다.

최근 트럼프 행정부가 멕시코·캐나다를 대상으로 한 관세 부과를 1개월 유예하기로 결정한 점과 관련, 부정적 영향이 단기적으로 완화될 수 있다는 점도 시장은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철강 쓰는 자동차 업계 영향은

철강을 주로 쓰는 데다 대미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도 상황이 여의치 않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수출선적부두 모습. (제공: 현대자동차)ⓒ천지일보DB

국내 자동차 업계의 대미 수출 의존도는 약 50%에 달한다. 지난해 한국의 대미 수출은 전년 대비 10.5% 증가한 1278억 달러를 기록했으며, 그중 자동차 수출액은 342억 달러로 전년 대비 8% 증가, 전체 대미 수출의 26.76%를 차지했다.

그러나 수입가격이 올라가면 미국 현지에서 자동차를 생산하는 한국 기업들의 원가 부담도 늘어나게 된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이러한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현대제철을 통해 미국 현지 제철소 설립을 추진 중이지만 당장 관세 폭탄이 현실화되면 피해를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현재 현대제철은 미국 내 제철소 없이 전량 국내에서 생산한 철강을 수출하고 있다. 현대차·기아뿐 아니라 제너럴모터스(GM), 포드 등 20여개 글로벌 완성차 업체에도 자동차용 강판을 공급 중이다. 지난해 현대차·기아를 제외한 해외 업체에 판매한 강판 물량도 100만톤이 넘었다. 현대제철은 현재 비(非)계열사 판매 비중을 20%에서 30% 이상으로 확대할 계획이었다.

멕시코산 자동차 관세도 부담이다. 

그동안 자동차 기업들은 생산 비용 절감을 위해 멕시코 공장에서 차량을 조립한 후 USMCA(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를 활용해 미국에 무관세로 수출해왔다.

하지만 멕시코에 대한 관세로 무관세 루트가 막혀 자동차 업체들의 대미 수출 전략에도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더해진다. 기아자동차(멕시코시티, 몬테레이), 현대 트랜시스(몬테레이), 현대모비스(몬테레이), 현대위아(몬테레이) 등 다수의 한국 기업도 멕시코에 생산 거점을 두고 있다.

◆조선·방산은 관세 무풍지대

미국으로 수출하는 물량이 없는 조선과 방산은 트럼프발 관세 부과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 대표적 산업으로 꼽힌다.

지난 1월 미국 의회예산처(CBO)에서 발표한 올해 미 해군 함정 건조 계획 분석 보고서에 의하면 2025년부터 2054년까지 30년간 집행될 미 해군의 함정 발주 예산 규모는 약 1조 660억 달러로 연평균 358억 달러다. 2024년 말 기준 미 해군 총 함대는 296척이며 해당 예산으로 2054년까지 함정 선대를 390척까지 확보할 계획이다. 퇴역 함정 고려 시 향후 30년간 364척의 신조 인도가 이뤄져야 한다.

업계에 따르면 전체 시장에서 한국 조선사 수주가 유효한 시장규모는 30년간 약 1660억 달러, 전체 시장의 16% 수준이다. 이는 한국 건조 가능 함정 선종의 배정 예산액을 합산한 규모다.

미국 필리조선소 전경. (제공: 한화그룹) ⓒ천지일보 2024.12.20.

한국 건조 함정 중 최대 배수량은 1만 2000톤 정조대왕급 구축함, 3000톤 장보고Ⅱ 잠수함이다. 미국의 10만톤 이상 포드급 항공모함, 1만톤 이상 콜롬비아급 및 7000톤 이상 버지니아급 잠수함은 생산 시설 및 건조 이력 부재로 수주 접근성이 제한적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반면 콘스텔레이션급 호위함(FFG-62)은 한국 조선사의 동급규모 함정 건조 이력 및 해외 조선소의 미국 수주 사례가 있어 기회를 엿볼 수 있다.

또 미 해군 함정 건조 계획에서 제시한 선종별 조달 계획 척수에 따르면 향후 30년간 가장 많이 늘어나는 선종은 소형 수상함, 전투 운송 및 지원함이다. 미 해군은 소형 수상함 총 81대, 전투 운송 및 지원함 총 71대 건조를 목표로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미국 함정 조선소 건조 능력 이상의 생산능력이 필요하며 이는 곧 해외 수주 가능성을 의미한다.

또 해당 함정 선종들은 안보 보안 요구 강도가 약하고 건조 진입 장벽이 낮아 해외 발주에 유리한 측면도 있다. 과거 해당 선종 해외 수주·건조 이력을 보유한 HD현대중공업, 한화오션의 실제 미 함정 수주 예상 규모는 최대 1000억 달러(약 145조원)로 추정된다.

이서연 상상인증권 연구원은 “미국 조선소 수주를 제외한 나머지 물량을 한국 조선소가 전부 가져올 경우 한국 점유율은 60%로 예상되며 함정 수주 예상 규모는 996억 달러”라며 “오스탈·핀칸티에리 등 기존 미국 함정 수주 이력이 있는 해외 조선소와 일본, 한국이 균등하게 점유율을 나눠가질 경우 한국 점유율은 20%로 함정 수주 예상 규모는 332억 달러로 예상된다”고 추산했다.

◆韓 정부 ‘상호관세’ 대응 총력

특정 산업이나 상대국을 겨냥한 관세 폭탄뿐 아니라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을 비롯한 주요 무역국에 대한 ‘상호관세(Reciprocal Tariff)’를 도입하겠다고 예고했다. 특정 국가와의 무역 불균형을 문제 삼아 비관세 장벽 요소까지 고려해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입장이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한국의 환경 규제, 농산물 수입 제한, 정부 조달 등을 ‘비관세 장벽’으로 보고 있다. 특히 자동차 부문에서는 한국의 배기가스 규제로 인해 미국 기업들이 피해를 본다는 주장도 제기한다. 관세처럼 숫자로 나타나지 않은 부분도 무역 장벽으로 간주하는 셈이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 정부는 미국과 협상을 통해 국내 규제 완화 가능성을 검토하는 한편, 미국 측 주장에 대한 반박 근거도 마련하고 있다.

지난달 26∼28일(현지시간) 안덕근 산업부 장관 방미 당시 한미 간에 개설한 다양한 한미 실무 협의체를 가동하고 고위급 연쇄 접촉을 진행 중이다. 특히 철강·자동차·반도체 등 주요 산업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범정부 차원의 대응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미국 상·하원 의회 합동 연설에서 ‘한국이 미국보다 관세가 4배 높다’고 쏘아붙이기도 했다. 이에 우리 정부는 “대미 수입품에 대한 실효 관세율은 한미 FTA 체결로 현재 0%대”라고 밝히는 등 사실과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근거를 제시하며 미국 측 인식을 바로잡기 위한 설득을 시도하고 있다. 즉 한미 FTA에 따라 우리나라의 대미 수입품 평균 관세율이 0.79%로 적용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중요한 것은 정부와 기업의 대응 전략인데 현재 우리나라의 극단적인 정치로 인한 탄핵정국으로 구심점이 없다는 문제가 지목된다.

사안에 정통한 한 재계 관계자는 본지에 “각국에서 발 벗고 나서고 있는데 우리는 상황이 이렇다 보니 중심을 갖고 협상을 본격 진행할 구심점도 없고 상대국 입장에서도 그나마 얼굴을 아는 (한덕수) 총리가 아닌 대통령 대행 등 인지조차 못 하는 당국자들밖에 없다”며 “어서 혼란한 상황이 마무리돼서 총력 대응에 나서고 국익에 부합하는 협상을 이끌어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 관세 부과에 관한 포고문에 서명한 후 이를 들어 보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관세에 “예외나 면제 없다”라고 밝혔다. (출처: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오는 10일(현지시간) 미국이 수입하는 모든 철강 및 알루미늄에 대한 25% 품목별 관세 부과 방침을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지난 7일 언급했던 ‘상호관세’에 대해서도 조만간 공개할 전망이며 이는 거의 즉시 발효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은 트럼프 대통령 (출처: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