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해의 시작을 알리는 고유의 명절 ‘설’… 그 유래를 찾다
설의 유래… 낯설다·새롭게 열리는 날·근신하다 등
일제의 음력페지론 딛고 다시 찾은 민족 고유의 ‘설’
[천지일보=백은영 기자] 설은 한 해의 시작인 음력 1월 1일을 일컫는 말로 우리나라 고유의 명절 중 하나다. 단순히 한 해의 시작을 기념하는 날을 넘어 조상에 대한 감사와 가족 간의 화합을 되새기는 중요한 날로 인식된다. 양력 1월 1일을 신정, 음력 1월 1일을 구정으로 부르던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음력 1월 1일을 설(설날)로 부르며 명절로 지내고 있다.
◆ 설날의 유래와 기록
‘설’이라는 이름의 유래로는 ‘새로 온 날이 낯설다’의 ‘낯설다’의 어근인 ‘설다’에서 온 것이라는 설(說)과 한 해가 새롭게 열리는 날을 의미하는 ‘선날’이 연음화돼 설날로 바뀌었다고 보는 설, 자중하고 근신한다는 의미의 옛말인 ‘섦다’에서 왔다고 보는 설 등이 있다.
한편에서는 ‘설’이란 용어를 나이를 헤아리는 말로 해석하기도 한다. 즉 새로운 해의 시작을 조심스럽고 경건한 마음으로 맞이하던 조상들의 태도를 반영한다.
설날에는 가족들이 함께 모여 차례를 지내고 어른들께 세배를 올리며 한해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한다. 이러한 전통은 공동체의 유대를 강화하고 가족 간의 화합을 다지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설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7세기에 나온 중국의 역사서에서 찾아볼 수 있다. ‘수서(隋書)’와 ‘당서(唐書)’에 기록된 신라에 대한 기록은 왕권국가다운 설날의 면모를 잘 나타내고 있다.
“매년 정월 원단(元旦)에 서로 경하하며, 왕이 연희를 베풀고 여러 손님과 관원들이 모인다. 이 날 일월신(日月神)을 배례한다”는 기록은 국가 형태의 설날 관습이 분명하게 보이는 내용이다.
‘고려사’에는 고려 9대 속절(俗節, 명절)로 원단(元旦, 정월 초하루 설날), 상원(上元, 정월 대보름), 상사(上巳, 후에 삼짇날이 됨), 한식(寒食), 단오(端午), 추석( 秋夕), 중구(重九), 팔관(八關), 동지(冬至)가 소개돼 있다.
◆ 일제의 음력폐지론
일제강점기에 일제는 양력을 사용하고 음력 폐지를 유도했다. 일제의 음력폐지론은 사실 음력설을 향하고 있었다.
일본은 음력을 배제하고 양력 중심의 생활을 강요하며 ‘신정’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광복 후에도 한동안 설날은 음력과 양력 설을 모두 지키는 혼란기를 거쳤다. 그렇게 1월 1일을 공식 새해(신정)로, 음력 1월 1일을 구정(옛 설)으로 부르며 구분되기 시작한 것이 1980년대까지 이어지면서 음력설은 버려야 할 구시대의 문화로 여겨졌다.
심지어 1960년대는 증산과 수출, 성장과 발전이라는 명분으로 음력설을 공휴일로 인정하지 않았으며, 1970년대에는 근대화 및 근검절약을 이유로 구정 공휴일 불가론을 펼치기도 했다. 이후 1985년 음력 설날이 ‘민속의 날’로 복원됐고 1989년에는 설날이 음력 기준으로 다시 법정 공휴일로 지정되면서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 차례와 세배
설의 대표적인 전통은 차례와 세배이다. 차례는 조상에게 새해를 알리고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의식으로 가족이 함께 준비한 떡국과 술을 올리며 예를 갖춘다. 세배는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새해 인사를 드리는 풍습으로 서로의 안녕과 건강을 기원한다. 세배를 마친 후 어른들은 덕담과 함께 세뱃돈을 주며 새해의 희망을 전한다.
음식으로는 떡국이 대표적이다. 흰 떡국은 순백의 깨끗한 새해를 상징하며, 한 그릇을 먹으면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뜻도 담겨 있다. 이외에도 전, 나물, 한과 등 전통 음식이 설 상차림에 오른다. 놀이로는 윷놀이․제기차기․팽이치기 등이 있으며 이는 가족 간의 화합과 즐거움을 더해주는 요소였다.
◆ 현대 설날의 변화와 새로운 모습
현대 사회에서 설날은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형태로 변모하고 있다.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먼 거리에 있는 가족과도 쉽게 소통할 수 있으며, 전통적인 차례와 세배 대신 소규모 가족 모임이나 간단한 식사로 대체되는 경우도 늘고 있다. 또한 밀키트와 간편식이 설 음식 준비의 수고를 덜어주고 있다. 한편 전통문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문화 행사가 늘어나며 젊은 세대와 외국인도 설의 의미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고 있다.
◆ 전국에서 펼쳐지는 설맞이 문화행사
한편 설날을 맞아 전국 곳곳에서 다채로운 문화 행사가 열린다. 설 연휴 동안 4대 궁궐과 조선왕릉이 무료로 개방된다. 경복궁에서는 전통 민화 ‘세화’ 나눔 행사가 열려 방문객들에게 행운을 선사한다. 수문장 교대의식과 세화 배포는 고궁 방문의 특별한 추억을 더해준다.
서울 운현궁에서는 28일과 29일에 ‘운수대통 설맞이 축제’가 열린다. 전통문화와 현대적인 공연, 체험 행사를 통해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 준비돼 있다.
국립민속박물관은 27~30일까지 ‘2025 을사년 만사형통 설맞이 한마당’을 개최한다. 올해는 청색과 뱀을 상징하는 을사년(乙巳年)으로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의미로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된다.
박물관 방문객들은 연 만들기 체험을 통해 새해 소원을 적고 하늘로 날리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또한 윷놀이 마당과 윷점을 통해 가족, 친구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특별히 뱀띠 관람객에게는 증빙서류 제출 시 선물이 제공되며 인증 사진을 SNS에 올리면 행운의 메시지가 담긴 ‘뱀 모양 포춘쿠키’를 받을 수 있다.
국립민속박물관 파주에서는 설 의례와 풍속을 배우는 체험 활동이 마련돼 있다. ‘떡국 비누 만들기’, ‘복주머니 금박 체험’ 등 실감나는 체험 프로그램은 설날의 의미를 더욱 깊게 만들어줄 것이다.
국립진주박물관은 28일과 30일에 ‘2025 설맞이 복(福) 나들이’ 행사를 진행한다. 특별전 관람 소감 쓰기, SNS 참여 이벤트, 전통놀이 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으며, 28일에는 전통공연 ‘신명 코리아’가 진행된다.
설날은 단순히 명절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이는 가족과 전통의 중요성을 되새기고 한해의 시작을 기원하는 날이다.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루며 누구나 함께 즐길 수 있는 문화 콘텐츠가 설의 새로운 매력을 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