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탐방] 불시착의 명암
박희제 언론인
새 떼와 충돌한 여객기 2대가 국제조난요청 ‘메이데이’를 외친 뒤 불시착했지만 운명을 달리했다.
기종 규모도 엇비슷한 US 에어웨이스 A320 여객기는 기적적으로 무사했고, 제주항공 보잉737-800 여객기는 비극적 종말을 맞았다. 한국에선 어찌 이런 참사가 일어났을까.
2009년 1월 15일 승객과 승무원 155명을 태우고 미국 뉴욕 라과디아공항에서 이륙한 US 에어웨이스 A320 여객기가 기러기 떼와 충돌했다.
여객기 엔진에 불이 붙어 작동되지 않은 채 급강하하자 회항할 사이 없이 뉴욕 맨해튼 허드슨강으로 ‘비상착수’ 할 수밖에 없었다. 전원 몰살 위기에 처했던 탑승객 전원이 생존하자 시민들은 ‘허드슨강의 기적’이라 환호했다. 이 실화는 2016년 개봉한 톰 행크스 주연의 ‘설리(SULLY)’라는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무안공항 참사 이후 다시 이 영화를 보며 버드-스트라이크 상황을 살펴봤다. 미 A320 여객기를 향해 거대한 새 떼가 순식간에 몰려와 부딪치자 양쪽 엔진이 추진력을 잃었다.
엔진 점화장치, 보조 동력장치도 고장 나 전원 공급 마비 상태인 ‘셧-다운’에 직면한다. 계기판에선 비상 알림이 동시다발적으로 요란하게 울렸댔다. ‘허드슨강의 영웅’의 침착한 불시착으로 ‘24분의 기적’이 일어났다.
2024년 12월 29일 오전 8시 59분 무안공항에서는 새 떼와의 1차 충돌사고 직후 관제요원과 기장의 동의 아래 강물 아닌 활주로를 향해 비상 착륙했다. 랜딩기어가 움직이지 않아 시속 300㎞ 넘는 속도로 동체 착륙하던 중 유도등이 설치된 높이 2m 콘크리트 둔덕 상판 중앙 부분과 정면충돌했다.
여객기가 산산 조각나고 잔해물이 500m까지 날아갈 정도였다. 이런 큰 충격으로 꼬리 부분에 있던 승무원 2명을 제외한 탑승객 179명 전원 숨졌다. 제주항공 기장도 ‘허드슨강의 영웅’처럼 비상 착륙까지는 잘 해냈지만, 의외의 복병인 콘크리트 둔덕 탓에 비운을 맞았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권고 규정에 맞지 않은 둔덕 위치나 종단안전구역의 모든 물체를 부서지기 쉽게 설치하라는 ‘프랜지빌리티(Prangibility)’ 원칙을 지키지 않은 등의 2차 사고 원인을 조사 중이니 지켜볼 일이다.
무안공항 참사를 빚은 1차 사고인 버드-스트라이크와 관련해 한심한 구석이 너무 많다. 착륙할 때 시속 370㎞인 항공기에 몸무게 0.9kg 정도의 새 한 마리와 충돌할 경우 순간 충격이 4.8t에 이른다.
예전에 여객기의 우박 충돌사고를 취재한 적이 있었다. 2009년 6월 9일 제주공항에서 김포공항으로 오던 아시아나항공 에어버스 321기종이 경기 안양시 상공에서 탁구공 크기의 우박 세례를 맞았다.
우박이 조종석 유리창을 마구 때려 온통 균열이 나고 조종사 시야를 가렸다. 또 여객기 맨 앞 코 부위(노즈 레이덤)가 똥째로 떨어져 나가 인적 드문 지대로 추락했고, 엔진 커버 등 여러 곳에 구멍 날 정도였지만 다행히 무사 착륙했다.
미 연방항공국(FAA) 보고에 따르면 항공기 충돌의 97.5%가 조류에 의한 것이라 한다. 조류충돌이 심각한 인명 및 재산피해를 일으키는데도 국내 공항 당국의 대처가 너무 안이하다.
최근 한 한 조종사에게 물어보니 새 떼를 만나게 되면 엔진 속으로 수십 마리가 빨려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3, 4마리만 들어가도 엔진이 ‘아작’ 난다고 한다.
무안공항에선 이렇게 무서운 조류 충돌사고 예방 시스템이 부재했다. 참사가 일어나기 열흘 전 무안국제공항 조류충돌예방위원회가 버드-스크라이크 경고를 했지만 4명의 조류 탐지직원이 평상시대로 하루 1, 2명씩 교대 근무했다.
공항 주변에 4곳의 철새 도래지가 있어 폭음 경보기나 조류 기피제로는 감당할 수 없는 환경이다.
해외 국제공항에 대부분 설치된 조류탐지 레이더는 무안뿐 아니라 전국 공항에 없다. 열화상탐지장비는 인천, 김포, 김해, 제주공항 등 4곳에만 있다.
첨단장비 미비점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정치 논리에 따라 지방공항을 마구 건설한다는 것이다. 대개 철새 도래지인 해안을 매립해 공사하는데, 개항 뒤 적자 운영을 면치 못하는 애물단지다.
무안공항도 적자로 허덕대는 마당에 인근 새만금국제공항이 2029년 개항 목표로 착공을 앞두고 있다. 저어새, 흰발농게 등 세계 최대 멸종위기종 서식지인 새만금 갯벌을 파괴하는 것도 모자라 참사 우려가 있는 곳에 공항을 조성하고 있다.
지역 정치인들이 참사 사고 이후 공항 건설 백지화를 외치지 않고 무안공항보다 짧게 설계된 활주로 길이를 늘려달라 요구하고 있다.
“한국 공항 관리는 ‘관치’다. 미국에서 항공 사고 재발 방지를 위해 조사하지만, 한국은 책임 소재를 가리려 조사에 나선다. 공항 당국은 새 쫓는 시스템을 갖추지 않고 있어 피해 나면 민간 항공사가 본다.” 어느 조종사의 토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