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 청소노동자 태운 첫차, 매일 만원… “국민 불안하지 않게 해줘야”

2025-01-01     김민희 기자

[신년기획] 새벽을 여는 사람들로 대한민국의 아침이 밝았다 ③

아무리 밤이 어지럽고 캄캄해도 아침은 온다. 세상의 낮은 곳에서 묵묵히 새벽을 밝히는 사람들로 인해서다. 한겨울 새벽 수산시장은 입김이 나올 정도로 춥지만 삶의 열기로 뜨겁다. 밤새 증기와 기름 냄새로 뒤범벅된 채 일하는 이들의 손에서 먹음직한 떡이 만들어진다. 강남 빌딩의 청소노동자들은 직원들이 출근하기 전 일을 하러 새벽 첫차에 몸을 싣는다. 본지는 새해를 앞두고 자정을 넘긴 시간 일터를 지키는 사람들을 만나봤다. 그들에게 새해 소망도 물었다. 돌아오는 답변은 한결같았다.

[천지일보=홍보영 기자] 지난달 19일 새벽 8146번 버스가 상계동 7단지 영업소에 정차돼 있다. ⓒ천지일보 2025.01.01.

[천지일보=김민희‧홍보영 기자] 지난달 19일 새벽 2시 10분 서울 용산구 회사 숙직실에서 눈을 떴다. 3시 50분에 출발하는 8146번 버스 첫차를 타려면 1시간 전에는 출발해야 했다. 덜 깬 몸을 일으키고 승객들의 마음을 사려고 준비한 박카스 한 박스를 취재 차량 뒷좌석에 실었다. 밤거리는 조용히 잠들어있었다. 심야버스와 청소차, 택시들만 소리 없이 움직였다.

상계동 7단지 영업소에는 8146번 버스 차량 2대가 나란히 서서 승객을 태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 버스는 차량 2대가 동시에 출발한다. 이 중에 앞차, 첫차 중의 첫차 운행을 맡은 운전기사 이태회씨는 “첫차와 두 번째 차 손님이 너무 많다”며 “뒷문까지 열어서 태워도 다 못 태울 정도”라고 말했다.

[천지일보=김민희 기자] 지난달 19일 새벽 8146번 버스가 종점에서 승객 5명을 태워서 출발했다. ⓒ천지일보 2025.01.01.

8146번 버스는 강남 신논현역에서 회차해 상계동 영업소로 돌아온다. 버스 승객들은 대부분 강남 빌딩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들. 직원들이 출근하기 전 청소를 마쳐야 하는 탓에 보통의 출근 시간보다 더 일찍 하루를 시작한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사람들이 타다 보니 운전기사도 승객들도 서로를 알아본다. 승객들은 버스에 타면 서로를 향해 눈짓과 손짓으로 인사를 건넨다. 새벽잠을 청하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다.

첫차는 이날 청소노동자 2명을 포함해 승객 5명을 싣고 출발했다. 청소노동자들은 매일 앉는 자리인 듯 각각 2인석에 익숙하게 자리 잡았다. 한 명은 가방에서 인형을 꺼내더니 창문에 대고 머리를 뉘었다.

[천지일보=홍보영 기자] 지난달 19일 새벽 3시 50분에 출발한 8146번 버스 안이 승객들로 만원이다. ⓒ천지일보 2025.01.01.

40여분 달려 새벽 4시 30분이 됐을 때 버스는 만원이 됐다. 면목5동주민센터에 이르자 버스 입구까지 승객이 가득 찼다. 이후부터는 승객을 더 태우지 못했다.

뒷좌석에 탄 한미희(가명, 68, 여)씨에게 박카스를 주며 말을 붙였다. 8146번 버스에 탄 사람들을 대신해서 한씨가 입을 열었다. “우리는 별별 일을 다 해본 사람들이에요. 이 나이를 살아오며 많은 일을 해봤는데 할 게 없잖아요. 그래도 이거는 수입이 고정적으로 나오니까 규칙적인 생활을 할 수가 있어요.”

한씨는 ‘마지막에 일하는 사람들’이라는 표현을 썼다. “요즘 경제가 안 좋으니까 일단 건물 사무실 임대료가 빠져나가잖아요. 그러면 사람을 줄여요. 직접적으로는 마지막에 일하는 우리들이 해고를 당하는 거예요. 지금은 연말이라 더 심해요.”

[천지일보=김민희 기자] 지난달 19일 새벽 3시 50분에 출발한 8146번 버스 첫차가 영동대교를 건너고 있다. ⓒ천지일보 2025.01.01.

그는 새해에 바라는 점으로 “제일 첫째는 나라가 조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은 나라가 너무 시끄러워요. 바닥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불안한데 뭐가 잘 되겠어요.”

한씨는 목적지에 이르기 전 미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른 이에게 자리를 양보해 주고 서너 정거장을 서서 갔다. 버스가 삼성역에 도착하자 인형에 머리를 기대고 자던 여성도 눈을 떴다. 강남과 서초에서 승객을 다 내려준 8146번 버스는 다시 상계동 영업소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