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사이드] 미‧나토, 북한군 파병 첫 확인… 북러는 여전히 부인

한국 정보당국 발표 닷새만 파병 의도엔 “아직 지켜봐야” “전장서 도움될지는 미지수” 우크라전 확대 가능성등 기로 韓에 적극적 지원 요청할 수도 러, 韓에 ‘우크라 개입’ 강력 경고

2024-10-24     김성완 기자
우크라이나 군이 공개한 보급품 받는 북한군 추정 병력[우크라군 전략소통·정보보안센터 X캡처]

[천지일보=김성완 기자] 신중론을 거듭하던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러시아에 북한 병력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확인했다.

북한군 파병을 기정사실로 하고 공론화하기 위해 각종 증거를 들이밀었던 우크라이나와 한국의 노고가 결실을 맺은 셈이다. 한국 정보당국의 발표 닷새 만이다.

내년 종전이라는 얘기가 심심찮게 나돌았는데, 확전 가능성 등 우크라이나 전쟁이 중대 기로에 처한 모양새다.

전쟁에서 내심 발을 빼려고 했던 미국과 나토는 곤혹스러워진 형국이고, 우크라이나의 무기 등 지원 확대 목소리는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북한과 러시아는 여전히 북한군 파병설을 부인하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직전까지 부인하는 등의 전례가 있다.

◆“北파병 증거 있어”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은 23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로마에서 취재진과 만나 “DPRK(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병력이 러시아에 있다는 증거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북한의 파병 의도를 묻는 말에는 “그들이 정확히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두고 봐야 한다”면서 “이는 우리가 명확히 해야 할(sort out) 문제”라고 답했다.

이어 “이는 매우 심각한 문제”라며 “유럽뿐만 아니라 인도·태평양 지역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만 그는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 병력의 규모나 향후 합류할 것으로 예상되는 추가 병력에 대해서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다. 확보했다는 증거 역시 공개하지 않았다.

오스틴 장관의 발언 2시간여 뒤 나토도 “동맹국들이 북한의 러시아군 파병 증거를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파라 다클랄라 나토 대변인은 이날 성명에서 특정 회원국을 명시하지 않은 채 “(나토) 동맹국들이 러시아에 북한 군이 배치됐다는 증거를 확인했다”고 전했다.

또 “우리는 이 사안에 대해 동맹 내에서 적극적으로 협의하고 있다”며 “이사회가 한국 정부로부터 브리핑을 받고 곧 이 문제를 추가 논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을 미국과 나토가 공식 인정한 것은 처음이다.

◆연일 쏟아내는 북한군 소식

북한군 파병설을 가장 먼저 들고 나온 우크라이나 정부와 최근 이런 사실을 공개한 한국 정보당국은 연일 파병 관련 소식을 내놓고 있다.

전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올렉산드르 시르스키 우크라이나군 총사령관에게 받은 보고라며 “6천명씩 2개 여단의 북한군 병력이 러시아에서 훈련 중이라는 정보를 입수했다”고 주장했다.

이날 열린 한국 국회 정보위원회 간담회에서는 조태용 국정원장이 현재까지 러시아로 이동한 북한 병력이 3천여명에 달하며 오는 12월께 총 1만여명에 달할 것이라고 보고했다. 국정원은 북한 병력 1500명이 지난 8∼13일 1차 수송 당시 러시아로 이동한 이후 1500여명이 추가 파병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뉴욕타임즈(NYT)는 미 정부 당국자들이 지금까지 북한군 약 2500명이 러시아에 파병된 것으로 추정했으며 우크라이나에 도착한 북한군 병력은 없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당국, 한국 정부의 주장과는 배치된다.

또 정부 당국자들은 얼마나 더 많은 북한군 병력이 합류할지, 북한군이 다른 언어를 쓰는 러시아군과 함께 한 번도 싸워본 적이 없는 영토에서 얼마나 작전을 잘 수행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있다고 덧붙였다.

파병이 독이 될 수 있다는 견해가 나오는 이유다. 대니얼 프리드 전 폴란드 주재 미국 대사는 미국의소리(VOA) 방송과의 통화에서 “북한군 파병이 전장에서 러시아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현재로서는 미지수”라며 “북한군의 예상 전력이나 파병 규모를 고려하면 오히려 해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우크라 전쟁 전환점되나

북한의 파병이 확인되면서 우크라이나 전쟁 구도에 전환점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확전 가능성인데, 내년 종전설이 나오는 등 우크라이나의 의지는 묵살된 채 러시아 쪽으로 기울면서 일단락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기 때문이다.

일단 서방을 향한 우크라이나의 요구가 한층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초청, 러시아 영토로 전장 이전 및 완충지대 확보, 이를 위한 장거리 무기 사용제한 해제 등을 요구해 왔다.

유럽의 맞파병론도 다시 고개를 들지 관심이 쏠린다. 하지만 나토가 일관되게 ‘나토는 전쟁 당사자가 아니다’며 파병에 선을 그은 데다 회원국 간 견해차가 크고 러시아와 직접 충돌을 피하려 하는 만큼 실제 파병 가능성은 크지 않다.

다만 나토의 무기 지원은 가속화할 수 있다. 나토는 지난 7월 정상회의에서 우크라이나 군사원조와 훈련을 조율하기 위한 ‘우크라이나 안보지원·훈련(NSATU)’이라는 명칭의 새 협의체를 출범해 이미 가동 중이다.

한국 정부에 적극적인 지원을 요청할 가능성도 있다. 한국 대통령실은 북한 파병에 대한 대응으로 공격용 무기까지 공급할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이율배반적인데, 민감함 사안이라 강한 반대 여론에 부딪힐 수 있어 실제 성사될지는 불투명하다. 미국과 EU는 러시아와 북한에 대한 추가 제재도 부여할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 정세에도 파장

한반도의 안보 지형에도 상당한 파장을 몰고 올 수 있어 북한군 파병은 초미의 관심사다. 북러 관계가 ‘혈맹’으로 올라서면서 한반도 유사시 러시아군의 자동 개입, 러시아의 대북 군사기술 지원 확대 등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커 위협이 증폭될 수 있기 때문이다. 팽팽한 힘의 균형이 깨질 수 있는 등 한반도를 넘어 동북아 정세가 격랑이 일 수 있다는 것이다.

열세에 처한 전쟁판을 뒤집을 수 있는 카드로 보고 있는 우크라이나 당국과 달리 한국 정부가 한반도 당사자라지만 동맹인 미국과는 별도로 그간 북한 파병 사실 공론화에 적극적으로 나선 배경에도 관심이 쏠린다. 바로 인접한 나토도 자신들의 전쟁이 아니라면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는 데도 말이다.

윤석열 정부가 북한군 파병을 이유로 한러 관계 파탄을 감수하면서까지 남의 나라 전쟁에 ‘감놔라 배놔라’하는 의도를 모르겠다는 것인데, 정치적 수세에 몰려 있는 국내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는 견해다. 젤렌스키 대통령도 헌법적으로는 진작에 대통령 임기가 끝났지만, 전쟁을 활용해 불법적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탄핵 여론이 불거지는 등의 상황에서 비상대권을 행사해 안전하게 임기를 보장받으려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실제로 계엄설이 정치권 안팎에서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전쟁을 정치에 이용하기 위해 윤 정부가 한반도 위협을 빌미로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는 의견이다.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이 이날 브리핑에서 연합뉴스의 질의에 “국정원이 왜 북한군 파병 발표로 소란을 일으켰는지 의문”이라며 “우크라이나 분쟁에 개입하지 말라”고 한국 정부에 강하게 경고한 것도 여러 함의가 담겨있다는 분석이 많다.

정치적으로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한러 관계가 악화일로를 걷는 길을 선택하지 말라는 경고라는 설명이다. 그는 북한군 파병에 대해 적극적 대응을 고려하고 있는 한국 정부의 반응에 당혹스럽다고도 했다. 또 북한군 파병 보도에 대해서는 “허위, 과장 정보”라고 일축한 뒤, “러시아와 북한의 군사협력은 한국에 어떠한 피해도 주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북한도 러시아와 같은 스탠스(입장)를 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