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오락가락 ‘이복현 스피커’에 커지는 대출혼란, 통일된 정책 메시지 필요하다

2024-09-12     김누리 기자
[천지일보=김누리 기자] 이복현 금융감독원장(가운데)이 10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은행장-금감원장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4.09.10.

[천지일보=김누리 기자] “세밀하게 입장과 메시지를 내지 못한 부분, 그로 인해 국민들이나 특히 은행 창구에서 업무하시는 분들에게 여러 가지 불편과 어려움을 드려서 이 자리를 빌려 송구하다는 말씀을 다시 올리겠습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10일 ‘오락가락 대출 규제’ 논란에 대해 고개를 숙였다. 은행 등 금융사들의 가계부채 급증을 두고 정부 정책과 금융당국 간 엇박자가 계속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진화를 시도한 셈이다.

이복현 원장이 ‘가계대출 조이기’ 과정에서 빚어진 시장 혼선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지난달 25일 이복현 원장은 방송사 시사 프로그램에 출연해 “최근의 은행 가계대출 금리 상승은 당국이 바란 게 아니다”라며 “은행 자율성 측면에서 개입을 적게 했지만, 앞으로는 부동산 시장 상황 등에 비춰 개입을 더 세게 해야 할 것 같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복현 원장의 발언 이후 은행들은 유주택자를 대상으로 한 주택담보대출 및 전세대출 취급 제한 조치를 취하는 등 대출 제한을 강화했다. 이에 실수요자들의 ‘절벽 대출’이 발생하고 있다는 비판이 속출했다.

은행권의 대출 문턱이 높아지면서 부작용이 잇따르자 이복현 원장은 다시금 말을 바꿨다. 이복현 원장은 지난 4일 “가계대출 관리 속도가 늦어지더라도 실수요자들에게 부담을 줘선 안 된다”고 밝혔고, 며칠 뒤인 10일엔 “가계대출 증가세 통제는 정책 운용 과정에서 우선순위 목표로, 필요하다면 어떤 형태의 정책 수단도 고려하겠다는 입장은 변함이 없다”고 재차 신호를 바꿨다.

불과 열흘 사이에 금융당국 수장의 메시지가 냉·온탕을 오간 것이다.

이복현 원장의 발언에 가계대출 정책이 거듭 뒤바뀌면서 차주의 혼란은 당분간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로 은행들은 실수요자의 경우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허용하는 예외 조항을 속속 발표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결혼, 직장·학교 수도권 이전 등의 가계대출 취급 제한 예외 조항을 소개했고, 신한은행도 신규 주택 구입 목적 주담대 실행 ‘당일’에 기존 보유 주택을 매도하는 조건으로 주택 매수 계약을 체결한 경우 대출을 가능하도록 했다.

국민은행 역시 매도계약서를 제출하거나 결혼 예정이라면 예외를 인정하겠다고 밝혔다. 대출 실행 6개월 이내에 결혼을 하거나 2년 내 상속을 받아야 하는 경우도 실수요자로 간주해 주택담보대출을 허용하기로 했다.

이복현 원장의 발언으로 대출 정책이 시시각각으로 뒤바뀌면서 은행 직원들이 해당 정책을 숙지하지 못하는 등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이복현 원장이 금융당국 수장으로서 실시간으로 치솟는 가계대출을 잡고 싶다면 ‘땜질식’ 입장 발표보단 통일되고 실효적인 정책 메시지를 내놔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