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임대차 시장에 기업 들인 정부… ‘메기 효과’ 볼 수 있을까

2024-09-05     이우혁 기자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서울 아파트의 3.3㎡당 평균 전셋값이 2400만원을 넘어섰다. 8일 KB부동산의 주택가격 통계에 따르면 지난 7월 서울 아파트 3.3㎡당 전세 평균 가격은 2417만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7월에 비해 176만원 오른 것으로, 지난 2022년 12월 이후 1년 7개월 만에 평당 2400만원을 웃돌았다. 이날 서울 시내의 한 공인중개사무소에 매물정보가 게시돼 있다.ⓒ천지일보 2024.08.08.

[천지일보=이우혁 기자] 정부가 기업형 임대시장을 활성화해 집값 안정화를 도모하겠다고 밝혔다. 임대차 시장에 기업을 들여 ‘메기 효과’를 보겠다는 계획이다.

메기 효과란 막강한 경쟁자가 다른 경쟁자들의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효과를 말한다. 노르웨이의 어느 어부가 정어리 수족관에 메기를 집어넣은 데서 유래했다. 포식자인 메기가 수족관을 휘저으면 정어리들은 이를 피하고자 더 활발하게 움직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잠깐은 살아난 것처럼 보일 순 있지만 힘이 빠진 정어리들은 결국 메기 밥이 되거나 지쳐서 죽을 운명이라는 건 변하지 않는다. 임대차 시장이라고 다를까?

지난주 정부는 “서민·중산층과 미래 세대의 주거 안정을 위한 새로운 임대주택 공급방안”이라며 임대차 시장에 기업 참여를 유도하는 대책을 내놨다. 리츠(부동산투자회사) 등 법인이 아파트 단지별 100가구 이상 대규모로 최장 20년 이상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사업모델이다.

그간 과도한 임대료 규제·법인 중과세제 등 법인의 대규모 장기임대 운영을 어렵게 하는 각종 규제를 풀어 기업 참여를 이끌어내겠다는 구상이다. 정부는 취득·재산세 감면 등 세제 혜택도 지원하기로 했다. 공급 유형은 규제·지원 정도에 따라 자율형, 준자율형, 지원형 총 세 가지로 나뉜다.

정부가 뭐라도 해야 했던 건 사실이다. 현재 서울 임대차 시장, 그중에서도 아파트 전세 시장은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고금리가 시작되자 정부가 집값 하락을 막겠다며 대출 문을 활짝 열어준 덕이다. 정부가 최근 2단계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를 시행했지만 전셋값은 치솟았고 가계부채는 이미 천정부지다.

여기에 비(非)아파트 임대차 시장에서 발생한 대규모 전세사기 사태에도 기름을 부었다. ‘전세빌라가 전세사기에 취약하다’는 프레임이 생기면서 시장은 신뢰를 잃었고, 전세수요는 아파트로 눈을 돌렸다. 결국 아파트 전세로 수요가 몰리면서 전셋값이 올랐다. 매매가도 상승을 부추긴 셈이다.

그리고 정부는 이 같은 상황에서 비아파트 정상화 대책에 앞서 기업을 임대차 시장에 들이는 방안을 내놨다. 아울러 관련 규제를 대거 풀어주는 정책에 붙는 수식어는 ‘서민·중산층과 미래 세대의 주거 안정을 위한 새로운 임대주택 공급방안’이다.

기업의 존재 목적은 ‘이윤 추구’다. 기업은 돈이 되면 하고 되지 않으면 떠난다. 이는 경제 구성원으로서 기업의 한계다. 최근 ESG 등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고 있지만 이는 결국 투자를 위한 것이며,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이윤 추구보다 우선시할 순 없다.

실제로 지나치게 영세화된 우리나라 임대시장에 개선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국토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임대주택 시장은 민간이 80%(658만 가구)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 중 비등록임대가 78%(514만 가구), 등록임대시장(144만 가구)에서도 개인 물량이 63%다.

하지만 기업이 대규모로 임대차 시장에 들어온다고 해서 ‘서민·중산층의 주거 안정’이 이뤄질까? 주거 안정이 이뤄지려면 임대료가 낮아지거나 주거비 지원이 늘거나 사기 위험이 줄어야 한다.

기업들이 수익성이 높은 알짜 아파트 단지를 선점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리라는 건 눈에 그려진다. 하지만 그런 아파트들은 이전에도 수요가 많기 때문에 문제가 없었다. 전세사기 사태가 비아파트, 그중에서도 빌라를 중심으로 발생했다는 점을 보면 당연한 얘기다.

세입자들이 전세 빌라를 구하려고 해도 사진조차 걸어놓지 않고 공인중개사무소에 오면 보여주는 식으로 영업하는 영세한 업장이 많다. 또한 전셋집에 걸려있는 담보 순위나 집주인의 채무를 알기 위해선 여전히 세입자가 발로 뛰어야 한다. 이런 상황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정부는 비아파트 정상화가 필요하다는 걸 알면서도 굳이 기업에 먼저 문을 열어줬다. 기업이 시장에 진입하면 영세한 시장이 체계를 갖추고, 시장경제에 따라 가격이 안정화할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전문가들은 ‘평평한 운동장’ ‘투명한 시장’을 늘 강조해 왔다. 이제 와서 새삼스럽지도 않다. 

하지만 판을 짜는 건 정부의 몫이다. 섣부르게 기업부터 시장에 들인 이번 대책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