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포커스] 양철야 노성궐리사 제장 “유교문화의 가치 재발견하고 발전시켜야”

2024-06-22     송태복 기자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양철야 노성궐리사 제장. 인성교육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60년대에 사재를 털어 학교를 설립하기도 했다. 양 제장이 궐리사 강당에서 유교의 가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4.06.22.

[천지일보=송태복·박주환 기자] “효순 환생효순자 오역 환생오역자(孝順 幻生孝順子 忤逆還生忤逆子, 효자는 효자를 낳고 불효자는 불효자를 낳는다)라 합니다.”

충남 논산시 노성면에 위치한 노성궐리사에서 만난 양철야(80) 제장(齊長)이 명심보감 효행편의 구절을 언급하며 유교를 통한 인성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유교의 근본정신인 충효(忠孝) 정신이 흐려지고 있는 현실에 깊은 안타까움을 표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유교적 가치가 현대사회에서 다시금 강조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궐리사 입구. ⓒ천지일보 2024.06.22.

양 제장은 충남 논산에서 나고 자랐다. 1960년대에 사재를 털어 공주에 학교를 설립할 정도로 인성교육에 관심이 많았다. 그의 삶의 철학은 유교의 충효와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에 기반을 두고 있다. 유림의 부정부패 타파에 나선 것을 계기로 2005년 노성궐리사 제장으로 추대된 이후, 공자의 유교 정신과 역사를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이날 함께 만난 유림들은 “양 제장이 궐리사를 맡은 뒤 많은 것이 발전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양 제장의 시조인 충헌공(忠憲公) 양기(楊起)는 원나라 도첨의정승(都僉議政丞)으로 고려 충선왕 때 노국대장공주를 수행해 우리나라에 왔다가 당시 백성들의 어려움을 보고 돌아가 조공제도를 폐지하는 데 힘썼던 인물이다. 그를 모신 충헌사가 노성궐리사에서 머지않은 곳에 위치한다.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충남 논산시 노성면에 위치한 노성궐리사에서 만난 양철야(80) 제장(齊長)이 노성궐리사의 상징인 공자상 앞에서 유교를 통한 인성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2009년에 이곳 유림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세운 2m 높이의 공자상은 노성궐리사의 상징이 됐다. ⓒ천지일보 2024.06.22.

◆노성궐리사의 상징 궐리탑과 공자상

노성궐리사는 공자의 영정을 모신 사당으로, 궐리(闕里)는 공자의 고향인 중국 산동성 곡부현의 ‘궐리촌’에서 유래했다. 국내에 궐리사는 노성과 오산 두 곳에만 남아있다.

숙종 13년(1687) 우암 송시열이 궐리사를 세우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 뒤 숙종 42년(1716) 송시열의 제자가 니구산(尼丘山) 아래에 궐리사를 세우고 다음해에 공자의 영정을 봉안했다. 공자의 고향인 중국 산동성 곡부 니구산(尼丘山) 아래에 있는 동굴 부자동(夫子洞)에서 공자가 탄생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공자의 고향과 같은 지명인 것이 궐리사가 이곳에 지어진 배경이 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노성산의 옛 이름이 니구산이다. 정조 15년(1791)에는 송조 5현을 봉안했고 순조 5년(1805)에 관찰사 박윤수가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겼다. 건물은 사우·강당(絃誦堂), 내·외삼문, 모성재(慕聖齋)·관리사·문간채 등 7동이 있다. 매년 음력 3월과 9월의 초정일(初丁日)에 제향이 봉향된다. 1978년 충남 기념물 제20호로 지정됐다.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양철야 제장이 노성궐리사 입구에 세워진 3.91m 높이의 궐리탑을 설명하고 있다. 궐리탑은 오늘날 기관명을 표시하는 현판과 같은 기능을 한다. 네모난 기단 위에 북두칠성을 의미하는 7개의 별이 그려져 있는데 맨 끝 별은 공자의 고향인 니구산을 가리킨다. 그 위에 배흘림의 각 주석을 세웠으며 꼭대기에는 정방향의 옥개석이 올려져 있다. ⓒ천지일보 2024.06.22.

노성궐리사 입구에 들어서면 궐리탑과 공자상을 볼 수 있다. 3.91m 높이의 궐리탑은 오늘날 기관명을 표시하는 현판과 같은 기능을 한다. 석주에 새긴 글씨는 송시열 선생의 제자 문순공(文純公) 권상하(權尙夏)의 글씨다. 네모난 기단 위에 북두칠성을 의미하는 7개의 별이 그려져 있는데 맨 끝 별은 공자의 고향인 니구산을 가리킨다. 그 위에 배흘림의 각 주석을 세웠으며 꼭대기에는 정방향의 옥개석이 올려져 있다.

2009년에 이곳 유림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세운 2m 높이의 공자상은 노성궐리사의 상징이 됐다. 현재는 양 제장과 30여명의 유림이 자발적으로 봉사하며 이곳을 관리하고 있다.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충남 논산시 노성면에 있는 노성궐리사는 공자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다. 궐리(闕里)는 공자의 고향인 중국 산동선 곡부현의 ‘궐리촌’에서 유래했다. 숙종 42년(1716) 송시열의 제자가 니구산(尼丘山) 아래에 궐리사를 세우고 다음해에 공자의 영정을 봉안했다. 양철야 제장이 궐리사의 유래를 설명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4.06.22.

◆“유교의 가치와 덕목 재조명돼야”

양 제장은 유교문화 발전을 위해 유림과 국민 모두가 할 일이 많다고 강조했다. 그는 “유교의 가치는 단지 옛날의 유물이 아니라 현대 사회에서도 중요한 덕목을 제공한다”며 “충효와 인의예지신과 같은 가치가 다시금 강조돼야 한다”고 했다. 그는 특히 젊은 세대와의 소통이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최근 한류의 영향으로 한국의 정신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많은 사람이 노성궐리사를 찾고 있다. 양 제장은 “한 번에 100여명의 학생과 학자들이 궐리사를 찾는다”며 “동양철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을 비롯해 지식인들이 많이 방문한다”고 말했다.

그는 유교의 미래와 관련해 인구 감소와 젊은 층의 이탈을 가장 아쉬운 부분으로 꼽았다. “노성궐리사에는 영어, 수학, 한자 등을 가르칠 수 있는 인프라가 있지만, 이를 배울 청년과 아이들이 없어 아쉽다”고 말했다. 이어 “국가적 문제가 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교가 나서야 한다며 유림이 뜻을 모으고 있다”고 전했다.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충남 논산시 노성면에 있는 노성궐리사는 공자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다. 궐리(闕里)는 공자의 고향인 중국 산동선 곡부현의 ‘궐리촌’에서 유래했다. 숙종 42년(1716) 송시열의 제자가 니구산(尼丘山) 아래에 궐리사를 세우고 다음해에 공자의 영정을 봉안했다. 양철야 제장이 궐리사의 유래를 설명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4.06.22.

◆“유교 배우고 실천할 기회 제공돼야”

양 제장은 한국문화의 근간인 유교문화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국민의 관심과 참여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 모두가 유교의 가치를 이해하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특히 젊은 세대가 유교적 가치를 배우고 실천할 수 있도록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과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공자의 사상은 현대사회에서 개인의 도덕적 성장과 사회적 조화, 그리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여전히 유효하고 중요한 가르침을 제공한다”고 강조했다.

양 제장의 노력과 열정은 노성궐리사의 발전뿐만 아니라, 유교문화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이를 현대사회에 맞게 적용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그의 바람대로 유교문화가 다시금 부흥해 우리의 정신적 토대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