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매도 금지에 ‘해외자본 이탈’ 우려… 금융당국 진화 나서

외신 잇단 불확실성 지적 보도 글로벌 IB 韓주식 대여 중단 당국 홍콩서 정책 설명 검토 공매도 규제 혼란 불가피할 듯

2023-11-12     김누리 기자
3일 한국거래소 공매도 종합상황실 (제공: 한국거래소) ⓒ천지일보 2021.5.3

[천지일보=김누리 기자] 공매도 전면 금지 조치로 인해 해외자본이 이탈할 수 있다는 우려가 급속도로 번지고 있다. 외신에서 공매도 관련 불확실성을 지적하는 보도들이 잇달아 나온 데다,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의 줄소송 움직임이 감지되면서다.

이에 금융당국은 “일부 해외 기관의 개별 이슈를 한국 시장에 대한 시각 변화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면서도 “공매도 제도개선에 외국인 투자자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며 진화에 나섰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외신들은 이번 공매도 금지 조치에 대해 연일 비판적인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 8일 전문가들의 분석을 인용해 “한국 금융당국의 공매도 전면 금지가 한국 증권시장의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국 지수 편입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브라이언 프레이타스 스마트카르마 애널리스트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공매도 금지가 과도한 밸류에이션(가치 산정)에 제동장치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라며 “개인 투자자가 선호하는 일부 주식 종목에 거품을 형성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평가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즈(FT)도 7일 “한국 증시가 6일에는 급등했지만 다음날부터 급락했다”며 “행복감이 사라지는 데 하루가 걸리지 않았는데, 이는 놀라운 일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공매도 금지는 시장 활동에 지속적인 영향을 거의 미치지 않는다”고 보도했다.

FT는 특히 코스피가 여름부터 하락했지만 올해 여전히 상승 중이라는 점을 들어 “공매도 금지 시기가 ‘특이했다(peculiar)’. 총선을 5개월 앞두고 공매도에 적대적인 개인 투자자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정치적 목적이 작용한 게 아닌지 의심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외신에서 공매도 전면 금지 조치로 인한 불확실성을 연일 지적하는 가운데, 해외자본의 증시 이탈 움직임도 포착되고 있다.

글로벌 주식 수탁은행 스테이트스트리트은행(SSBT)은 지난달 세계 주요 기관투자자들에게 한국 주식에 대한 기관 전산 시스템상 주식 대여 서비스를 내년부터 제공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글로벌 초대형 증권사 메릴린치도 내년도 한국 시장에서 대차 서비스로 벌어들이는 수익 목표치를 ‘없음’으로 설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 내에선 이 같은 해외 IB들의 움직임에 대해 “금융당국의 강화된 공매도 규제와 단속에 피로감을 느끼고 본격적인 이탈 움직임을 보이는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삼성증권은 보고서를 통해 “과거 공매도 금지 기간 외국인들의 숏커버링(공매도한 주식을 되갚기 위한 매수)보다는 매도세 압력이 더 컸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삼성증권이 2020년 3월 공매도 금지 이후에 대한 영향을 분석한 결과 지난 2020년 3월 16일∼6월 12일 개인 투자자는 순매수를 기록했지만, 외국인 투자자는 순매도했다.

해외자본이 이탈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지면서 금융당국은 “한국 시장에 대한 외국인들의 시각에는 특별한 변화가 없다”며 적극적인 진화에 나섰다.

금융당국은 SSBT의 한국 주식 일부 대여 중단과 메릴린치의 한국 시장 대차 서비스 내년도 수익 목표치 하향의 경우 “사실과 다르다”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개별 회사가 전산 시스템 등을 정비하는 과정일 뿐이지 한국 시장에 대한 시각 자체를 바꾸거나 본격적인 이탈 채비를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이와 함께 홍콩 등에서 글로벌 IB 등을 만나 공매도 한시적 중지 배경을 설명하고 전산 시스템 정비 필요성 등을 밝히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불법 공매도로 적발된 글로벌 IB들이 고의가 아닌 시스템 오류 등을 이유로 내세워온 만큼 금융당국 차원에서 한국법 체계를 설명하고 스스로 정비할 기회를 부여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불법 공매도 주체로 적발된 글로벌 IB들의 소송으로 맞대응할 가능성이 점쳐지는 등 공매도 규제를 둘러싼 혼란은 당분간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미 불법 공매도로 38억원대 과징금을 부과받은 ESK자산운용 등이 불복 소송을 내 법적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금감원이 조직적·관행적 불법 공매도 주체로 BNP파리바와 HSBC 등 글로벌 초대형 IB를 지목한 만큼 향후 소송 등 대립각은 더 거칠어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