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머무는 시] 해피엔딩 - 손영희
2014-11-27 천지일보
해피엔딩
손영희(1954~ )
퇴근길 나 혼자 영화를 보러 간다
어둠이 무릎을 덮는 H열 1번 자리
마음이 골목 같아서 외등 하나 켜고 싶은 날
가보지 않은 생은 언제나 해피엔딩
폭풍 같은 어제와 실뱀 같은 내일이여
누선에 고이는 물기
흔들리는 엔딩 씬
[시평]
캄캄한 어둠으로 꽉 막혀버린 골목 같은 마음, 그 마음의 골목 밝힐 외등이라도 하나 켜고 싶은 그런 날. 혼자 영화를 보러 간다. 깜깜한 영화관, 그것도 H열 1번 자리, 맨 뒷줄, 맨 끝 번호. 아무도 내가 누군지 알아볼 수 없는 자리. 눈물 철철 흘려 얼굴이 얼룩 두더기가 되어도 그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자리. 나만의 자리에 혼자 앉아 영화를 본다.
젊은 시절 그 누구나 한두 번은 홀로 영화를 보러 간 적이 있으리라. 대부분 친구나 연인들이 짝을 이루어 오는 영화관에서 혼자 앉아 영화를 본다는 것. 화면 속에서 전개되는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삶을 바라보며, 저 삶이 어찌 나와 이리 비슷할꼬 하며, 혼자 눈물을 흘리던 기억.
그러나 해피엔딩은 영화에만 있는 것. 그래서 가보지 않은 생은 언제나 해피엔딩. 깜깜한 영화관에서 어둠을 무릎에 덮고 홀로 앉아 보는 영화, 아니 ‘폭풍 같은 어제와 실뱀 같은 내일’이라는 나의 또 다른 삶을 보는구나. 홀로 누선(淚腺)에 고이는 눈물, 그러므로 흔들리 듯 아련히 보이는 엔딩을 보는구나.
윤석산(尹錫山)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