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평론] 박근혜와 김무성
박상병 정치평론가
박근혜 대통령이 내년도 예산안 관련 시정연설을 위해 국회를 찾아 여야 대표들과 만났다. 물론 다분히 의례적인 만남일 수밖에 없었다. 말 그대로 국회에 간 김에 여야 대표들을 만나 대통령의 의지를 더 확실하게 전달할 수 있다면 굳이 마다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렇잖아도 불통 이미지가 강한 상황에서 맘 편하게 얘기할 수 있다면 만남 자체가 일거양득일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의 시선이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만남에 쏠린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김무성 대표의 중국 상하이 ‘개헌 봇물’ 발언과 공무원연금개혁 연내처리에 대한 소극적 입장 등으로 두 사람 관계가 매끄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사람만의 별도 회동은 없었다. 그리고 이렇다 할 대화도 없었다. 그냥 박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가 함께하는 자리였을 뿐이다.
박근혜와 김무성, 전략적 협력관계
그러나 그것으로 모든 일이 정리됐다고 본다면 착각이다. 국회 회동 모습은 내부의 갈등구조를 굳이 겉으로 드러내려 하지 않은 양측의 계산된 결과에 다름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애써 아무 일 없었듯이 의례적인 일정만 소화했다. 특별한 것이 없다는 메시지를 던짐으로써 기존의 역학관계를 그대로 끌고 가겠다는 생각이다. 반면에 김무성 대표도 평소처럼 박근혜 대통령을 만났다. 다소 어색했지만 웃는 얼굴까지 보였다. 더 이상 문제를 확대하고 싶지 않다는 판단을 했을 것이다. 양측 모두 지금은 전략적 협력관계가 좋다고 본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의 관계에는 차기 권력을 둘러싼 냉엄한 갈등구조가 도사리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박 대통령은 차기 권력의 조기 급부상을 끝까지 차단하려 할 것이다. 더 나아가 차기 총선도 박 대통령이 그 중심에 서고 싶어 할 것이다. 여차하면 차기 대선도 자신의 의중에서 벗어나는 구도는 원치 않을 것이다. 그런 구상에서 가장 위협적인 존재가 바로 김무성 대표인 셈이다. 이런 관계에서 지금까지는 박 대통령이 완승한 모습이다. 국회에서의 회동도 박 대통령의 판이었다. 김무성 대표는 잘 보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대로 언제까지 갈 수는 없을 것이다. 상하이 ‘개헌 봇물’ 발언을 통해 김무성 대표는 확실히 깨달았을 것이다. 박 대통령이 결심만 하면 김무성 대표체제도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지금 각을 세우면 크게 다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김무성 대표가 국회 회동에서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았던 것도, 스스로 연내처리가 어렵다고 했던 공무원연금개혁안을 직접 대표 발의해 총대를 멘 것도 그런 배경이다. 그러나 때가되면 상황은 급반전 될 것이다. 그 때가 언제쯤 될 것인가. 그 때까지 김무성 대표는 버텨낼 수 있을 것인가. 내공과 전략, 대의명분에서 김무성 대표는 아직 때가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