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커스] 커가는 ‘히잡’ 논란… 억압인가 종교문화인가

2014-10-28     송태복 기자
▲ 커가는 히잡 논란 ⓒ천지일보(뉴스천지)

이란서 ‘히잡 안 썼다’ 강산테러
“여성에 히잡 탈착 결정권 줘야”
유럽선 히잡 금지법 남용해 소송
아시안게임서 히잡 썼다 몰수패도

[천지일보=송태복 기자] 무슬림 여성이 착용하는 머리 스카프 ‘히잡’이 강산(强酸)테러의 빌미가 됐다.

자국 여성뿐 아니라 외국여성에게까지 히잡 착용을 의무화하고 있는 이란에서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여성에게 강산을 뿌린 테러가 잇따라 발생해 공분을 사고 있다.

이번 테러는 이슬람 극단주의자가 저지른 ‘종교적 증오범죄’일 것으로 분석된다. 유사범죄가 이어지면서 시민들이 대책을 촉구하고 나섰고, 수사에 별다른 진척이 없는 상황에서 오히려 테러 관련 사진을 판매한 사진기자가 이란 정보당국에 체포됐다.

여기에 로하니 대통령 등 중도진보세력과 강경보수파 간의 갈등에서 비롯된 현상이라는 지적도 있어 파장이 쉽게 가시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최근 이란 내에서는 여성들 중심으로 ‘히잡 벗을 권리’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반면 유럽에서는 히잡을 썼다는 이유로 직위해제 되거나 강제 퇴학을 당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로 인해 히잡이 억압의 산물인지, 개인이 선택한 문화인지를 두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이란서 히잡 빌미 연쇄 강산테러
이란 전문 독립 매체인 이란와이어는 지난 19일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6명의 여성이 강산테러를 당해 치료 중이라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스파한에서 오토바이를 탄 일당이 여성의 얼굴에 강산성 액체를 주사기로 쏘거나 그릇으로 퍼붓는다는 소문이 돌아 불안해진 이 지역 여성들이 외출을 꺼릴 정도다.

그러나 이번 ‘강산테러’는 종교적, 정치적 이해관계까지 맞물리면서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이 매체는 이런 범죄가 ‘도덕 순찰’을 강화하는 법안을 이란 의회가 통과한 직후 일어났다고 분석했다.

이 법안이 통과되자 이란의 원리주의 무장단체 안사레 헤즈볼라는 가두 활동을 재개하겠다고 밝혔다. 이 단체는 성범죄가 여성의 부적절한 행실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극보수 단체다.

◆“이란 여권신장 발판은 ‘히잡 거부’부터”
이번 이란 강산테러에 빌미가 된 히잡은 무슬림 여성에겐 정조의 상징이다.

무슬림 여성은 이슬람 경전 ‘꾸란’이나 무함마드 언행 ‘순나’에 따라 몸매가 보이지 않도록 하고 손과 발, 얼굴 이외에는 가려야 한다. 특히 이란에서는 이슬람 율법에 따라 내국인뿐 아니라 외국여성에게까지 히잡 착용을 강제하고 있다.

거리를 지나가는 여성들이 히잡을 쓰지 않았거나 약간 헐겁기만 해도 경찰이 현장에서 체포해가는 정도다. 이슬람 율법은 여성의 드러난 머리카락이 남성의 욕정을 자극하고 도덕적으로 타락시키기에 히잡으로 여성의 머리카락을 가려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히잡 관련 율법은 지극히 가부장적이며, 여성이 히잡을 벗고 착용할 자유권마저 박탈하고 있다. 이란 여권 신장의 발판은 ‘히잡 거부’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최근 이란의 젊은 여성을 중심으로 검은색이 아닌 다른 색의 얇은 히잡을 쓰거나 몸매가 드러나는 아바야(이슬람권 여성이 입는 검은 통옷)로 멋을 내기도 한다. 일부에서는 한발 나아가 ‘히잡 벗을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

◆프랑스에선 히잡 금지법 남용해 논란
이란 내에서 여성들이 히잡 벗을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면, 이란 밖에서는 히잡을 강제로 벗게 하는 제도에 반발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프랑스는 2004년 종교적 복장 금지법안을 통과시켜 초중고 공립학교에서 히잡을 비롯한 종교적 복장을 금지하고 있다.

외형적으로는 종교에 대한 편견을 막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이슬람에 대한 반감 때문이란 분석이다. 최근 들어 히잡을 벗지 않았다는 이유로 중학생들이 퇴학을 당하거나 근무처에서 해고되는 등의 사례가 잇따르면서 종교탄압 논란으로 확대되고 있다.

지난해 뱅상 페이용 프랑스 교육부 장관은 “종교전쟁 발발 가능성에 대비해 학교들이 내규로 히잡 착용을 금지할 수 있다”며 “교내 히잡 금지 규정이 계속될 것”이라고 재확인했다.

한편 프랑스는 2011년부터 부르카 니캅 히잡 등의 공공장소 착용 금지법안까지 통과시켰다. 지난 19일 AFP 통신은 최근 오페라 공연을 보러온 중동지역 관광객이 니캅을 착용했다는 이유로 파리의 모 극장에서 쫓겨났다고 보도했다.

◆헌법재판소로 간 독일 여교사의 히잡 논쟁
1998년 바덴-뷔르템베르크 주 문화부는 공립학교 교사 페레슈타 루딘(Fereshta Ludin)에 대해, 수업 중 히잡 벗기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직위 해제했다. 면직당한 루딘은 주 정부를 고소했다.

종교와 직업 선택의 자유라는 개인의 기본권을 국가가 침해했다는 이유에서다. 루딘은 히잡을 쓰고자 하는 동기를 ‘종교적 신념’과 ‘개인의 의지’로 설명했다.

주 정부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수업 중에 히잡을 착용하는 것은 국가의 중립성 의무와 정교 분리라는 독일 민주주의 기본 원칙에 위배된다는 논리로 맞섰다. 주 문화부 장관이었던 아네테 샤반은 보수당인 기독교민주당(CDU) 소속이었다.

독일 법정에서 열린 세 번의 재판에서 루딘은 모두 패소했다. 그러자 이 문제를 헌법재판소로 가져갔다. 2003년 9월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교사의 히잡 착용 여부는 각 주에서 자율적으로 결정할 일이라고 판결했다.

루딘의 히잡 논쟁이 독일 사회에 던진 문제는 ‘독일 사회가 낯선 종교를 어디까지 포용할 수 있는가’였다. 여기에는 히잡이 무슬림 여성에게 신앙의 증표로 ‘강요’되는 것이라는 서구인들의 보편적 인식도 들어 있다. 히잡에 대한 독일 사회의 논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억압인가 문화인가 … “여성에게 결정권 줘야”
히잡 논란은 지난 아시안게임에서도 있었다. 사격과 양궁은 물론이고, 과격한 유도 태권도 등 격투기 종목에서도 이슬람 국가 여자 선수들은 히잡을 벗지 않았다.

무슬림인 타지키스탄 비치발리볼 선수들은 땡볕에 비키니를 입지 못하고 일반 운동복으로 몸을 가려야 했다. 농구는 아예 히잡 착용을 금지하는 바람에 카타르 대표팀이 몰수패를 당해 논란이 일었다.

인터뷰에 응한 모 이란 기자는 “선수들이 히잡 착용을 전혀 번거롭게 여기지 않고 오히려 자랑스러워한다”고 말했다. 지난 아시안게임에서 이슬람국가는 전체 참가국의 삼분의 일이나 됐다.

지난 5월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란 여성들이 히잡을 ‘권위적 문화의 상징’으로 규정하고 과감히 벗어 던진 사례를 보도했다. 가디언은 “수천 명의 이란 여성들이 영국 런던에서 활동 중인 이란 저널리스트 매쉬 앨리네자드의 페이스북에 히잡을 벗은 사진을 잇따라 올리며 이란의 권위적 문화에 도전장을 내밀었다”고 보도했다.

사진을 올린 앨리네자드는 “가부장적인 이란 사회에서는 여성이 히잡 탈착 권리를 호소할 공간이 전혀 없었다”며 “히잡을 쓸지 말지는 이란 여성들이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기본적 권리”라고 말했다.

한편 이란의 원로 신학자 호자톨레스람 무함마드는 최근 히잡을 빌미로 자행된 테러와 관련해 ISNA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여성이 아무리 옷을 잘못 입어도 이를 처벌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