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머무는 시] ‘순간의 꽃’에서 - 고은

2014-09-25     천지일보

 ‘순간의 꽃’에서

고은(1933~ )


노를 젓다가
노를 놓쳐버렸다

비로소 넓은 물을 돌아보았다.


[시평]
동학 교조 수운 최제우 선생의 가르침에 “우리가 살아가면서 한울님의 은덕을 모르는 것은, 다름 아니라 이 우주 어디에고 한울님 은덕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기 때문이다(不知德之所在 欲言浩而難言)”라는 말씀이 있다. 이는 마치 이 세상이 온통 공기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우리 인간들이 공기의 중요함을 일상의 삶 속에서 절감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너무 많아서, 너무 커서 그 진정한 가치를 모르고 사는 것이 우리의 일상이다.
배에서 노를 짓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노만을 지으며 배를 저어가다 보면, 물이 넓은지 잘 모를 때가 있다. 물이 비록 넓어도, 노만 지으면, 그 물을 건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노를 놓쳐버려, 막막한 심정으로 물을 바라다보면, 아 아 비로소 물이 넓음을, 그래서 막막함을 실감하게 된다.
작은 것 하나, 너무 흔한 것 하나, 많은 것 하나, 너무 큰 것 하나, 모두 우리네 삶에는 적재적소마다 필요하고 긴요한 것들 아님이 없으리라. 이것을 잃었을 때, 이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비로소 깨닫는 것, 이것이 우리 우매한 사람들의 모습 또한 아니겠는가.

윤석산(尹錫山)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