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방한] ‘요한 바오로2세’ 방한은 대한민국에 무얼 남겼나

2014-08-13     박준성 기자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1984·1989년 두 차례 한국을 방문했다. 사진은 84년 방한 당시 절도산 순교지를 방문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모습.

1984·1989년 방문…“한국, 모국 폴란드와 닮았다”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프란치스코 교황에 앞서 한국 땅을 밟은 교황이 있다. 그가 바로 제264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다. 그는 한국에 남다른 애정을 과시하며 두 번이나 방한한다.

1984년 5월 3일, 요한 바오로 2세가 한국 천주교 창립 200주년 기념식과 순교자 103인 시성식에 참석하기 위해 처음으로 방한했다. 비행기 트랩에서 내리자마자 교황은 공항 바닥에 입을 맞추고 우리말로 “순교자의 땅, 순교자의 땅”이라며 한국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표시해 감동을 선사했다.

교황은 인사말 첫머리에서 “벗이 있어 먼 데서 찾아오면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라는 논어의 구절(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을 한국어로 말해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마무리 역시 한국어로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그리고 한반도의 온 가족에, 평화와 우의와 사랑을 베푸시는 하느님의 축복이 깃들기를 빕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로 대한민국 국민에게 평화의 메시지를 전했다.

◆전쟁 아픔 겪은 교황, 세계평화 호소

요한 바오로 2세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1978년 요한 바오로 1세의 후임자로 카룰 보이티야(Karol Woityla) 추기경(요한 바오로 2세)이 선출됐다. 그의 교황 선출은 대단한 놀라움을 불러일으켰다.

하드리아노 6세 이래 456년 만에 처음으로 비(非)이탈리아 출신의 교황이자, 역사상 최초의 슬라브계 교황이 선출됐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20세기 교황들 가운데 최연소로 즉위한 교황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약 27년 재임한 그는 사상세 번째로 오래 재임한 교황이다.

폴란드 바도비체에서 태어난 요한 바오로 2세는 청년 시절 제2차 세계대전을 몸소 겪었다. 누구보다 전쟁의 참상을 적나라하게 봤다. 그는 생전에 세계평화와 반전을 호소하며 생명의 가치관을 심어주었고, 동유럽의 민주화 운동에 관심을 두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또 재임 기간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세계평화와 종교 간 화해, 갈등과 분쟁을 해소하기 위해 쉼 없는 노력을 기울였다.

전 세계 100개 이상의 나라를 방문했다. 그는 역사상 여행을 가장 많이 한 세계지도자이자 종교지도자들 가운데 한 명으로 기록돼 있다.

◆모국 폴란드와 닮은 한국 평화 기원

교황은 방한 기간 한국 역사책(번역본)을 읽고 감명을 받았다. “혹독한 시련에도 민족의 정통성을 꿋꿋이 지켜온 한국의 역사가 모국 폴란드와 닮았다”는 소감을 남기기도 했다. 교황은 소외된 이웃을 찾아가 위로하고 격려의 시간을 가졌다. 한센병 환자들이 모여 사는 소록도를 찾아가 “예수님께서 친히 고통을 겪으셨기 때문에 여러분과 함께 계신다”고 격려하면서 한센병 환자들의 치유를 기원했다. 이뿐 아니라 한국 종교지도자들을 만나 종교 간 화합에도 힘썼다.

5년 뒤 그는 대한민국을 두 번째로 방문한다. 교황은 1989년 10월 5일부터 3일간 서울에서 열린 제44차 세계성체대회에 참석한 것이다. 그는 65만여 명이 운집한 여의도 광장에서 남북한의 화해를 바라는 평화의 메시지를 낭독했고, 전두환 독재정권의 국가폭력으로 죽거나 부상당한 5.18 광주민중항쟁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국민을 위로했다.

2005년 4월 2일 선종한 요한 바오로 2세는 자유와 평화, 인권을 부르짖으며 소외된 약자와 고통에 신음하는 이웃들의 따뜻한 친구가 됐으며, 이웃종교 대표지도자들을 만나 화해와 평화를 논의하며 세계평화에도 이바지한 인물로 평가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