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기 전 신비함 담긴 ‘컬러 유리원판 필름’

2013-12-23     김현진 기자

▲ 정성길 관장이 수집해서 모은 환등기와 여러 유리원판 필름 (사진제공: 정성길 명예관장) ⓒ천지일보(뉴스천지)

원본에 흡사하도록 붓으로 채색, 샌드위치형 제작

[천지일보=김현진 기자] 기록사진은 과거의 역사를 바로알고 옛 문화를 느끼고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1세기 전 합성수지(플라스틱)로 제작된 흑백필름이 나오기 전까지는 유리원판 필름을 사용했다.

유리원판 필름은 인화용으로 사용하는 것이 대중적 인기를 얻었으나 선교사업 목적으로 슬라이드 방식으로 제작된 필름은 소수의 특수한 부류만 이용했다. 슬라이드 방식은 영상 교육용으로 사용하던 필름이다.

특히 신비감을 갖게 하는 것이 컬러 유리원판 필름이다. 당시 필름은 감광도가 매우 낮은 건판으로 0.2mm 유리판에 감광재료를 바른 후 젤라틴 막을 입혀 촬영하면 실상과 반대인 네거티브(음화)로 찍혀지고 이것을 다시 실상과 같은 포지티브(양화)로 반전시킨 후 그 위에 원색에 가까운 칠을 해 컬러 유리 원판으로 만든 것이다.

쉽게 말하면 현품을 찍어 나온 유리로 된 흑백필름에 붓으로 색을 칠한 것이다. 그리고 그 위에 유리를 덧씌워 ‘샌드위치형’으로 만든 것이다. 이같이 만들어진 슬라이드 유리원판 필름은 환등기를 통해 영상자료로 사용됐다.

이 컬러 유리원판 필름에는 특히 고흐, 피카소 등의 명화 작품 뿐 아니라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렘브란트 거장들의 성화 작품이 들어가 있다. 현품과 흡사하게 제작돼 있어 보는 이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이같이 귀중한 작품을 20년간 전 세계를 돌며 3000장이 넘는 숫자를 모아온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은 그 기법에 대해 혀를 내두른다. 정 관장은 “당시 필름은 유리를 사용했다. 유리에 붓을 칠하면 매끄럽기 때문에 밀리게 되어 있는데 정교하게 색이 입혀져 있다. 이는 아주 고도의 기술이자 내가 생각해봐도 제작기법이 미스터리”라며 놀라워했다.

정 관장으로부터 희귀사진 유리원판을 제공받아 지난 2010년 한·러수교20주년 사진전의 실무 역할을 했던 이선종 울산박물관 사진유물담당 학예사는 “유리원판 필름은 우리에게 익숙한 합성수지 필름이 나오면서 하향세를 걸었지만, 특히 컬러 유리원판 필름은 또 다른 화가가 실물과 똑같은 작품 하나를 그렸다고 할 정도로 어려운 기법”이라 설명했다.

이 학예사는 “일본 매체를 통해 유리원판 필름에 대해 본 적은 있었지만, 당시 러시아수교 20주년 사진전 때 현물을 만져본 건 처음이었다. 환등기를 통해 보도록 제작된 유리원판 필름은 문화적으로도 고급문화가 아닐까 싶다”고 당시 감회를 소개했다.

하계훈(박물관학 전공·미술평론가) 단국대 교수는 “정성길 관장님이 갖고 있는 유리원판은 사진으로서 작품성도 있지만, 당시 시대의 역사, 풍속, 정황을 알 수 있어 자료로서 가치도 높다”고 평가했다.

성화전문가 윤성도 교수는 “유리원판 기술은 지금은 소멸됐다. 따라서 그 자체가 지금으로선 쉽게 따라할 수 없는 대단한 기술”이라 말했다.

유리원판 필름을 모아온 정성길 관장은 그 기법을 더 정확히 알아내기 위해 과거 KBS1 TV쇼 진품명품에도 출연했다. 그러나 그 기법에 대해 잘 아는 자가 없어 당시 1회만 출연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3회까지 연장출연하기도 했다.

제작팀은 정 관장 자택에서 열흘간 머물면서 감정한 결과 1세기 전 제작된 유리원판이 맞으며 채색된 작품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다만 감정가는 가격으로 매길 수가 없어 정확히 내리진 못했다.

▲ 정성길 관장이 돋보기로 컬러 유리원판 필름에 담긴 라파엘로 작품을 보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