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권의 느낌표!] 블랙홀 정치, 이대로는 안 된다
한병권 논설위원
정가 소식통에 따르면 당분간 여야관계나 대화정치 회복은 기대난이다. 민주당은 일단 칼을 빼 들었으니 슬그머니 집어넣어버릴 수 없다. 여권도 내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까지 사실상 대화를 포기한 듯한 상태이다. 각각 대화 상대를 교체키로 한 것 아니냐는 얘기다. 창당 준비를 천명한 무소속 안철수 의원이 변수란다. 그가 만드는 새 정치결사체가 야권의 구심점이 되는지 어떤지 결판 난 후 대화가 재개돼도 될 것 같다는 관측이다. 그렇다면 그 이전엔 ‘정치실종’이라는 말인가. 바닥난 민생은 어쩌라는 것인지 도대체 어이가 없다.
물론 국회만의 잘못은 아니다. 우선 국민 경제의 회복 속도가 너무 더디다. 빈부격차가 커졌다. 잘 사는 사람은 군림하고 못 사는 사람은 굴욕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사회 구조가 고착화돼 간다. 위화감과 상대적 박탈감이 심화되고 있다. 정부는 별 신통한 처방을 내어놓지 못하고 있다. 대선 때 공개리에 약속한 공약(公約)이 허언에 가까운 공약(空約)이 될 조짐이 있다. 박근혜정부는 소통에 둔감하다. ‘정치’는 없고 ‘통치’만 있다. 여기에 검찰 수사가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 국정원 등 국가기관의 선거 개입에 관한 수사가 외부 간섭이 가해진 듯 주춤대면서. 민초들은 어느 특정인이 아니라 정치권 전체를 불신하고 있다.
‘새 정치’ 움직임과 관련해 일단 안 의원과 최근 당론을 넘은 소신 발언을 계속하고 있는 민주당 조경태 최고위원이 시선을 끈다. 정치권부터 기득권을 내려놓게 하겠다는 안 의원의 언급은 신선하다. 하지만 구체적인 콘텐츠나 후속 액션 플랜이 미지수다. 제도 이전에 사람이 중요하다는 말을 한다. 주위에 어떤 사람을 두느냐도 신경써야 할 일이다. 아직 더 두고 봐야 하겠지만 그 나물에 그 밥, 혹은 선무당 사람 잡는 꼴이라면 한숨부터 나온다. 그리고 너무 거북이걸음이다. 특별검사제 주장도 공식 발표 때까지 너무 뜸을 들인 것 같다. 주요 현안에 국가지도자급 결단력과 정치인으로서의 육감적인 순발력이 담긴 메시지로 민심을 사로잡는 매력이 약해 보인다. 잇달아 쓴소리를 계속하는 조 의원은 주가가 높아지고 있는 뉴스메이커다. 그러나 지역구와 표를 의식한 영리한 포석일 뿐이라는 평가절하도 있다.
‘울트라 슈퍼 갑’이라는 국회의원이 이제는 목에 힘을 빼고 섬기는 자세로 전환해야 한다. 국회의원은 대의제민주주의의 한 수단이지 행정집행기관이 아니다. 선거 공약으로 지역 민원 해결을 내거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해관계인들의 청부입법 로비와는 전혀 무관한가. 국감에 기업인을 200명이나 증인으로 호출한 것이 후원금을 모금하거나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간접강제 수단은 아닌가. 120만 원씩 종신 연금을 받는 제도는 무엇인가. 정당 국고보조금도, 불체포 특권도 필수적인가. 비서관도, 특권도 너무 많지 않은가. 꼭 국민세금으로 운전기사를 써야 하는지, 공항과 비행기에서의 특별 대접은 꼭 필요한지도 의구심이 든다.
그러나 여기에서 더 나아가야 한다. 보다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개혁이 필요하지 않은지 따져봐야 할 시점이다. 필요하면 개헌도 해야 한다. 국회해산제는 내각책임제쪽 방식이다. 하지만, ‘뻑’하면 남북대치상황 운운하며 안보를 통치수단으로 우려먹던 시대는 지났다. 대통령제가 민심을 즉각 반영할 수 없는 경직성에 약점이 있다면 이제는 재고해 보자. 상하 양원제, 직능국회, 무보수 명예봉사직 국회의원도 고려해 봐야 한다. 또한 당론 눈치보기 등으로 자유로운 의정 활동을 가로막는 지금의 공천 제도부터 뜯어고쳐야 함은 물론이다.
세간에 돈 없으면 정치를 할 생각 말라는 말이 있다. 무슨 의미인가. 뜻 있는 이, 능력 있는 이들은 많이 있다. 하지만 자금력이라는 큰 벽에 가로막혀 출사를 접고 만다. 현재와 같은 풍토에서는 훌륭한 자질을 지닌 이들을 정치권에 유입시킬 법적 제도적 정치적 결단이 절실하다. 또한 완전한 선거공영제는 끝내 이룰 수 없는 신기루 같은 것인지 궁금하다.
시시비비(是是非非), 정당은 사안별로 정부 정책에 대해 잘 한 것은 잘 했다고 하고 미흡한 것은 미흡하다고 해야 한다. 일방통행 혹은 진영 위주가 아니라 합리적 토론과 대화에 의한 타결이 있어야 한다. 그게 정치다. 그런 점에서 우리 국회는 정치가 아니다. 찬성을 위한 찬성, 반대를 위한 반대를 일삼는 두 거수기 집단 밖에 없는 것 같으니. 정치가 높아진 민도(民度)에 맞게 민심을 제대로 수렴해야 할 텐데, 여야가 시원스런 돌파구를 마련하고 희망을 쏘아 올려줘야 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