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전경, 국가 안보와 법질서 확립에 최선 다하다
지난 25일 전투경찰 마지막 기수인 3211기 183명의 합동 전역식이 경찰청 대강당에서 있었다. 1971년 9월에 창설돼 40여 년간 국내 치안의 한 축을 담당했던 제도가 마침표를 찍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날까지 전투경찰(전경)로 군 복무를 마친 사람은 모두 32만 9266명에 달한다. 전경은 후방지역의 해안 경계 등이 주 임무였는데, 시대 상황의 변화에 따라 대(對)간첩업무에서 시국사건의 방어 업무까지로 확대되는 등 전경제도는 숱한 우여곡절을 겪었다.
전경제도는 우리 안보와 관련하여 태동됐으며, 그 계기는 바로 김신조 사건이다. 1968년 1월 21일, 북한 정찰국 소속 124군 부대 무장 게릴라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한 사건은 그 당시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안보문제를 더욱 튼튼히 다지는 일대 변곡점이 됐다. 당시 습격했던 일당 중 유일하게 생포된 김신조는 그 후에 대한민국에 귀순했지만, 이 사건이 교훈이 되어 대간첩업무 이외에도 경찰의 후방 방어업무를 보조하기 위해 전경이 필요했던 것이다.
군 복무 대신 병역의무가 마치게 되는 전경은 창설 초기만 해도 인기를 끌었다. 군 입대를 앞둔 청년들이 새로운 군 복무제도에 관심이 많았던지라 지원자들이 몰려들어 18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1979년 10.26사건을 거치면서 정국이 불안했던 시기인 80년에 법이 개정돼 치안업무의 보조업무를 전경이 수행할 수 있도록 변경됨으로써 전경은 시위대 진압에 투입됐다. 그 후 전경은 헬멧과 방패로 무장됐고, ‘전경’ 이하 하면 떠오르는 것이 아비규환의 시위 현장이었으니 전경의 대명사로 굳어버렸다. 비록 전경제도가 대간첩작전에서 사회혼란을 막는 시위대의 방어로 변질되기도 했지만 그들은 조국의 부름에 당당했다.
이제 화염병과 최루탄으로 상징되던 격동의 시대에도 힘들게 버텨온 전경제도는 숱한 애환을 남기고 명멸
해갔다. 대한민국의 후방을 당당히 지킨다는 국방의무로 자랑스럽게 출발했던 이 땅의 전경들은 42년간의 세월을 거치면서 때로는 위정자들의 방패막이 세월을 보냈다는 회한도 있을 테지만, 사회 안정과 국민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후방방어의 첨예군(群)으로서 기여한 바도 크다. 어쨌거나 조국의 부름을 받고서 공익을 위해 최선을 다했던 전경들이 아닌가. 그래서 마지막 기수들이 받은 전역패는 그 문구처럼 빛날 것이다. “전역패, 귀하는 대한민국의 마지막 전경으로 21개월 복무하는 동안 국가 안보와 법질서 확립에 최선을 다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