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곳간] “액(厄) 쫓고 ‘복(福)’ 선물”… 옛 선조들의 설날 풍습

설빔 입고 조상께 새해 인사
떡국 먹으며 무병장수 기원해
궁중 ‘세화’, 민가에도 전해져

2023-01-22     장수경
풍속화(복조리) (출처: 국립민속박물관) ⓒ천지일보 2023.01.16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언제 들어도 참 듣기 좋은 말이다. ‘복(福)’ 받으라니 좋아하지 않을 이가 누가 있으랴. 새해를 맞아 건네는 인사 한마디에서 우리 조상들의 온정(溫情)이 느껴지는 듯 하다. 

우리나라 최대 명절 중 하나인 설날이 다가오면서 옛 풍습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설날은 음력 정월 초하룻날(음력 1월 1일)로, 묵은 한 해를 보내고 새해 첫 아침을 맞이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한해를 알리는 뜻깊은 날인 만큼 복과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마음을 세시 풍속 안에 담아 놓았다. 

◆고운 설빔 입고 조상께 인사 

설날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 새 옷을 입었는데 이를 ‘설빔’이라고 했다. 고운 설빔을 입고 조상과 이웃에게 새해 인사를 하는데, 다사다난(多事多難)했던 지난해를 떨쳐버리고 새로운 해가 무사하고 길운(吉運)이 함께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냈다.

대표적인 새해 음식은 ‘떡국’이다. 세시풍속집인 ‘동국세시기’에 보면 떡국을 ‘백탕(白湯)’ 또는 ‘병탕(餠湯)’이라고 했다. 겉모양이 희다 해서 ‘백탕’, 떡을 넣고 끓인 탕이라하여 ‘병탕’이라 부른 것이다. 또 “병탕 몇 사발 먹었느냐”라는 데서 유래하여 ‘첨세병(添歲餠)’이라 부르기도 했다. 여기서 ‘첨’은 첨가하다, ‘세’는 나이, ‘병’은 떡을 의미한다. 

이덕무(李德懋, 1741~1793)가 쓴 ‘청장관전서’에는 “세시에 흰떡을 쳐서 만들고 썰어서 떡국을 만들었는데, 추위와 더위에 잘 상하지도 않고 오래 견디고 깨끗함도 더욱 좋다. 풍속에 이 떡국을 먹지 못하면 한 살을 더 먹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이름을 억지로 ‘첨세병’이라 하였다”라고 했다.

희고 기다란 가래떡은 무병장수와 재산이 늘길 바라는 소망을, 떡을 둥글게 써는 것은 엽전 모양의 떡을 먹으며 ‘재복(財福)’을 얻으라는 뜻이 담겨 있다. 

풍속화(연날리기) (출처: 국립민속박물관) ⓒ천지일보 2023.01.16

◆‘복조리’ 살때 가격 흥정 안 해 

새해놀이를 즐기며 복을 기원하기도 했다. 섣달그믐 무렵부터 정월 대보름까지는 ‘연날리기’를 즐겼다. 액연(厄鳶)이라고 부르는데, 연 몸통이나 꼬리 부분에 액을 보낸다는 ‘송액(送厄)’, 액을 보내고 복을 맞이한다는 ‘송액영복(送厄迎福)’ 등의 글자를 써 붙이고 멀리 날려 보냈다.

설날 이른 아침에는 벽에 복조리를 걸어두고 복을 빌었다. 조리는 쌀을 이는 도구인데, ‘한 해의 복이 쌀알처럼 일어나라’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정초에 새로 장만한 조리는 복조리라고 불렀다. 특히 설날 복조리는 장수에게 샀는데, 복을 위한 것이라 가격 흥정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호작도(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천지일보 2023.01.16

◆그림 속에 담긴 ‘복’ 

새해가 되면 복을 담은 그림도 선물했다. 바로 새해 그림은 ‘세화(歲畫)’다. 이는 새해가 됐음을 축하하기 위해 왕과 신하들이 서로 주고받은 그림이다.

세화가 언제부터 전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조선 초기 새해를 축복하기 위한 의미로 궁궐에서 그려져 전해졌다. 조선 영조 때의 실학자 유득공(柳得恭)이 지은 ‘경도잡기’에 보면, 세화에 ‘수성(壽星, 인간의 장수를 맡고 있다는 신), 선녀, ‘직일신자(直日神將, 하루의 날을 담당한 신)’이 그려졌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연결 병풍으로 된 오봉산일월도, 십장생도 등도 그려졌다. 

세화는 처음 궁중 풍속으로 시작됐지만 점차 민가에도 전해졌다. 동국세시기에 보면 “민가의 벽에 닭이나 호랑이 그림을 붙여 재앙과 역병을 물리치고자 한다”라고 했다. 또 신선도나 모란도, 십장생도 등 다양한 그림도 그려졌다.

세화 모란도 (출처: 국립민속박물관) ⓒ천지일보 2023.0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