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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의 길을 따라가다 ‘안성’

시월. 정초부터 정신없이 달려왔더라도 아침저녁으로 가을바람을 맞으면 알 수 없는 허무함과 공허감을 비롯해 수만 가지 생각이 드는 달이다. 그간 뜨겁게 달궈왔던 정열이 갑자기 낯설어진 당신. 초심을 잃지 않고 뜻을 이루기 위해 열정을 바친 이들의 삶을 되새겨보는 것은 어떠할까.

“교우들 보아라. 우리 벗아, 생각하고 생각할지어다… (중략)… 부디 서로 우애를 잊지 말고 돕고, 아울러 주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환난을 앗기까지 기다리라. 혹 무슨 일이 있을지라도, 부디 삼가고 극진히 조심하여 위주광영하고 조심을 배로 더하고 더하여라… (중략)… 우리는 미구에 전장(戰場)에 나아갈 터이니 부디 착실히 닦아, 천국에 가 만나자.”

김대건 신부의 마지막 편지(고어체 한글 사본), 절두산 순교 박물관 소장

“거기로 끌려가면 죽은 사람이니 잊으라” 죽산성지

 

안성 죽산성지가 있는 곳의 원래 지명은 ‘이진(夷陳)터’다. 고려 때 몽고군이 침입해 죽주산성을 공략하기 위해 진을 쳤다는 사실에서 유래돼 ‘오랑캐가 진을 친 곳’이라고 불렸다. 하지만 병인박해(1866)를 지나면서 “거기로 끌려가면 죽은 사람이니 잊으라” 해서 ‘잊은 터’로 불리게 된 기구한 사연이 있다.

죽산성지 입구에는 ‘순교자의 피는 그리스도의 씨앗’이라고 적힌 비석이 나뭇가지에 가려져 있다. 문구를 통해 약 2000년간 예수가 가르친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뒤따랐는지 그들의 노고가 가슴으로 그대로 느껴진다. 이곳에 심어진 나무들은 낮고 구부정한데 꼭 순교자들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묵념하는 모양이다.

성지 정면으로는 이곳에서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잃은 무명 순교자의 합동분묘와 이름이 밝혀진 자들의 묘가 함께 자리하고 있다. 그중에는 부자(父子)가 안치된 묘도 있어 순례자와 방문객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한다.

천주교 박해, 정치 세력 다잡기 위한 본보기

한반도의 천주교 탄압 역사는 1785년 을사박해를 시작으로 신해박해(1791), 을묘박해(1795), 을해박해(1815), 정해박해(1827)가 있다. 이후 4대 박해로 불리는 신유박해(1901), 기해박해(1839), 병오박해(1846), 병인박해(1866) 등 네 차례의 박해가 이어졌다.

제사를 지내는 유교와 ‘우상을 섬기지 말라’라는 천주교의 가르침에서 시작된 갈등이 박해의 원인이 되기도 했으나 대부분은 정치적인 이유에서 비롯됐다.

신유박해는 왕조체제의 유지, 왕권의 반대파 제거가 가장 큰 목적이었다. 이로 인해 왕가의 외척인 안동 김씨가 정권을 장악하게 됐다. 기해박해 역시 마찬가지다. 기해년에 풍향 조씨 세력은 천주교 박해를 통해 안동 김씨로부터 권력을 빼앗았다.

가장 박해가 심했다던 병인박해는 어떠할까. 흥선대원군은 러시아의 남하를 견제하기 위해 서양 선교사, 특히 프랑스인 선교사의 힘을 이용하려 했다. 하지만 효과를 보지 못하자 유생들이 사학(천주교)의 포교에 대항해 대원군에게 상소를 올렸다. 이를 계기로 대원군이 프랑스 선교사들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는 등 병인박해가 시작됐다.

예수 그리스도인의 삶을 따르려면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 사람의 아들이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천사들과 함께 올 터인데, 그때에 각자에게 그 행실대로 갚을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기에 서 있는 이들 가운데에는 죽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자기 나라에 오는 것을 볼 사람들이 더러 있다.”  마태오 복음서 16장 24~27절

조선시대 천주교인들이 신앙을 지켰던 이유는 무엇일까. 간단히 언급하면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전파하기 위함이다. 예수의 가르침에 대한 내용을 여기서 써내려 갈 수는 없다. 분명한 것은 그 가르침이 신심을 지켜낸 자양분이 됐다는 점이다.

(영상취재|편집: 손성환 기자 / 글·사진: 김지윤 기자 / 사진: 최성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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