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마루」문화재 숲 ‘영월ㆍ정선’

단종의 한 보듬은 ‘영월’, 우리네 한을 노래한 ‘정선’

한민족의 삶을 말할 때 우리는 흔히 한(恨)을 얘기한다. 때론 외세에 짓눌려서, 때론 당파싸움의 희생양으로 더 자주는 가진 자들의 농락에 희생된 우리네 선조들의 거칠고 둔탁한 인생이 그렇게 한을 대물림했다. 우리네 恨과 마주할 곳을 찾아 길을 나섰다. 어린 나이에 수양대군에 의해 왕위를 강탈당하고 열일곱에 세상도 등져야 했던 어린 임금 단종의 흐느낌이 있는 ‘영월’과 그 너머 서민들의 애환을 노랫가락으로 풀어냈던 ‘정선’으로 향했다.

 

비경 중의 비경 ‘동강 어라연’

 

▲ 어라연(漁羅淵)은 국가 지정문화재 명승지 14호이다. 동강 상류에 위치하고 있어 태고적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출처: 영월군청)

 

영월의 자랑은 단연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동강’. 그 가운데서도 상류에 자리 잡은 ‘어라연’은 동강에서 경치가 가장 빼어난 곳으로 손꼽힌다. 깎아지른 듯한 기암괴석 절벽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고 굽이굽이 흐르는 곡류천의 맑은 물이 어우러져 다양한 하천지형이 나타나는 ‘천혜의 보고’다. 금강산이라 불릴 정도의 풍광을 연출하는 비경 중의 비경이기도 하다.

어라연과 영월의 원시 산림을 경험하기 위해 거운분교에서 시작해 잣봉, 어라연 전망대로 이어지는 ‘어라연 트레킹 코스’를 따라 발길을 옮겼다.

어라연 탐방 안내판 옆에서 겸손하게 하늘을 떠받드는 모양의 소나무를 지나 산길에 접어드니 길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개망초’가 탐방객을 반긴다. 유난히 붉은 흙길을 따라 걷노라면 정갈하게 정돈된 고추밭이 마을이 있음을 알린다.

조용한 산속 ‘마차 마을’을 지나 산을 조금 오르니 졸졸졸 흐르던 물소리가 이제는 제법 굵직한 소리를 낸다. 시원한 물소리를 들으며 걷다 보면 가파른 경사와 마주한다. 헉헉거리며 가파른 길을 500m쯤 갔을까. 물소리는 온데간데없고, 하늘을 찌를 듯한 소나무들이 촘촘히 서 있는 능선길이 펼쳐졌다. 오솔길 사이사이 핀 야생화를 구경하고 소나무가 내뿜는 ‘피톤치드’ 향기를 마시며 걷다 보니 첫 번째 전망대가 나온다. 멀찌감치 보이는 어라연의 모습이 만족할 만하지는 못했다.

어라연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을 것 같은 ‘바위전망대’를 향해 다시 걸음을 옮겼다. 좀 더 가니 위험하기는 하지만 전망이 아주 좋은 제2전망대가 나타났다. 이곳을 지나 좁아진 산속 오솔길을 걷다 보니 어느새 벌써 잣봉 정상(537m)에 도착했다. 한눈에 들어오는 맞은편 산에는 이미 여름이 짙푸르게 배어 있다. 며칠간 내린 비로 물이 불어난 동강은 힘차게 절벽을 휘감아 흐른다.

잣봉을 지나 계속해서 어라연 ‘바위전망대’로 향했다. 잣봉을 지나 조금 내려가자 밧줄이 매여 있는 가파른 내리막길이 눈앞에 들어온다. 울퉁불퉁 바위들이 솟아있는 경사길을 따라 20분가량을 내려가 삼거리를 지나자 드디어 ‘동강의 비경’을 훤히 볼 수 있는 바위전망대에 도착했다.

제1전망소 안내판에 “천하절경을 본 사람은 많아도 천하비경을 본 사람은 많지 않다”고 적혀 있던 문구가 떠올랐다. 눈 아래 펼쳐진 어라연의 비경을 보며 시원한 바람을 맞으니 가파른 내리막을 내려오느라 고생했던 게 싹 사라진다.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영월로 유배를 왔다 죽음을 맞이한 어린 단종의 혼령도 이곳의 뛰어난 경치에 반해 여기 머무르며 신선처럼 살고자 했더니 물고기들이 줄을 지어 반기는 바람에 그 일대가 고기 비늘로 덮인 연못처럼 보였다 해 ‘어라연(魚羅淵)’이라 불렀다는 설이 있을 정도다. 눈앞에 보이는 아찔한 절벽에는 마치 조물주가 일부러 꽂아놓은 듯한 푸른 소나무가 어우러져 한 폭의 산수화를 그려냈다. 자연이 그린 산수화를 감상하며 시선을 절벽 아래로 돌리니 옛날 선인들이 내려와 놀던 곳이라 해 ‘삼선암(三仙巖)이라 불리는 암반과 그 사이를 힘차게 흐르는 동강이 보인다.

(글: 이승연 기자 / 사진: 최성애 기자 / 영상: 손성환 기자)

(고품격 문화월간지「글마루」 8월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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