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호익 동북아공동체ICT포럼회장/한국디지털융합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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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 주도로 추진 중인 일명 ‘디지털세’에 대한 합의안이 나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G20 참여 139개국 중 아일랜드, 헝가리 등 9개국을 제외한 130개국이 합의안을 지지했다. 합의안은 G20 재무장관회의에서 관련 논의를 거쳐 오는 10월 G20 정상회의에서 디지털세를 최종 합의할 계획이다. 이에 따른 다자 협정 서명은 2022년, 각국에 실제 적용되는 시점은 빠르면 2023년으로 전망된다.

이번 합의안은 세계 곳곳에서 돈을 버는 거대기업에게는 세금도 일정 수준 이상으로, 각국에 나눠 내게 하자는 것이다. 합의안은 ‘필라1’과 ‘필라2’의 양대 원칙으로 하자고 결의했다. ‘필라1’은 글로벌 기업이 매출을 올린 국가에 세금을 내도록 하는 것으로 연간 연결매출액 200억 유로(약 27조원), 이익률 10% 기준을 충족하는 다국적 기업이 본국뿐 아니라 시장 소재지국에도 세금을 내도록 한다. 통상이익률(10%)을 넘는 초과이익을 얻을 경우 이의 20∼30%에 대한 세금을 매출 발생국에 낸다. 다만, 매출액 기준은 시행 7년 후 100억 유로(약 13조원)까지 확대될 수 있다.

‘필라2’는 글로벌 기업의 조세 회피를 막기 위해 최저한세율을 도입하는 것으로 연결매출액 7억 5천만 유로(약 1조원) 이상인 다국적 기업에 최소 15% 이상의 글로벌 최저세율을 부과하는 게 핵심이다. 글로벌 기업이 자국에 본사를 두고 세율이 낮은 다른 나라에 자회사를 설립해 조세를 회피하는 ‘꼼수’를 차단하는 게 목적이다. ‘필라2’가 도입되면 글로벌 기업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 사업하든 최저한세율 이상의 세금은 반드시 납부해야 한다. 이 경우 낮은 세율을 무기로 글로벌 기업을 유치하던 일부 국가는 투자 매력을 상당 부분 잃을 수 있다. 디지털세가 시행돼도 기업 입장에서 총 세금 부담은 큰 변화가 없다. 국제적인 이중과세 방지 조약에 따라, 해외에 세금을 더 냈으면 본국에선 그만큼 공제해 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업 경쟁력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각국의 세금 수입에는 영향이 있을 수 있다. 가령 한국이 걷던 삼성전자의 법인세는 해외로 일부 빠져나가지만, 대신 구글, 아마존 등 해외 기업의 세금을 한국에서 일부 더 걷을 수 있다. 아직 세부 기준이 정해지지 않아 ‘필라1’과 관련한 세수 추정은 어렵지만, ‘필라2’의 경우 시행 초기 세수가 증가할 수 있다. 한국은 법인세율이 ‘필라2’ 기준 최저한의 세율보다 높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 ‘필라1’ 기준을 충족하는 글로벌 기업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는 미국·유럽·중국 등 약 200곳, SK하이닉스는 중국·유럽 등 약 30곳에 판매 및 생산 거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만일 향후 매출액 기준이 13조원으로 내려가면 자동차나 중공업 등의 분야에서도 대상 기업이 나올 수 있다. 디지털세가 도입되면 이들 기업은 국내에 납부하던 법인세 일부를 매출과 이익이 발생A한 해외 국가에 납부해야 한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납부한 법인세는 약 9조 9천억원, SK하이닉스는 1조 4천억원 규모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법인세율이 지방세 포함 최고 27.5%로 다른 나라보다 높은 편이어서 기업에 미치는 파장이 크진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나 국내 기업 중에서도 세율이 낮은 외국에 법인을 둔 경우는 세 부담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또한 디지털세 과세 대상이 당초 취지보다 늘어났다는 문제도 있다.

디지털세는 디지털 서비스 기업의 조세 회피 방지를 위해 논의가 시작됐는데, 합의안을 보면 사실상 모든 업종을 대상으로 조세 회피와 무관한 기업 활동까지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 정부는 국익 차원에서 세부안을 수립해 우리 정부와 기업의 이익을 최대한 반영해 과세 대상과 세율을 협의해야 한다. 아울러 업계도 국제 논의과정을 예의주시하면서 최선의 대응책을 미리 강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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